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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 “신의칙 기준 마련해야…중대한 경영상 어려움 판단 모호"

이데일리 노재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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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 “신의칙 기준 마련해야…중대한 경영상 어려움 판단 모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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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칙 적용, 기업 순익 아닌 기존 노사합의 존중해야
노사합의 우선 대원칙 아래 통상임금 기준 법제화 주장
[이데일리 노재웅 기자] ‘신의 성실의 원칙(신의칙)’을 받아들이지 않은 기아자동차(000270) 통상임금 소송의 1심 판결을 두고 학계가 유감을 표했다. 통상임금과 신의칙 적용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마련해 입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함께 내놨다.

31일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데일리와 통화를 통해 “아직 1심 판결이기 때문에 대법원까지 지켜봐야겠지만, 2013년 대법원이 내린 통상임금 요건 판례를 비춰봤을 때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야 한다고 판결한 데 대해선 큰 이견이 없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하지만 “과거에 잘 나갔던 실적을 가지고 미래 분까지 신의칙을 무시하고 판단한 부분은 다소 아쉽다”며 “대법원도 노사 모두 객관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세부적이고 안정적인 신의칙 판단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과거와 현재의 혼란을 없애고 통상임금에 관한 법적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광택 국민대학교 법과대학 명예교수(한국ILO협회 부회장/산업사회연구소 소장)도 “신의칙의 적용 요건은 대법원 전원합의체판결에서 이미 정리했다. 다만 소수 의견으로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이나 ‘기업 존립의 위태’는 판단 기준이 모호하다.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서둘러 입법화하고 신의칙을 적용하는 방향으로 정리해야 하는 이유”라고 통상임금 기준 법제화에 목소리를 더했다.

법원은 이날 기아차 근로자들에게 지급된 정기상여금과 중식비를 통상임금으로 인정했다. 이에 따라 법원은 사측이 근로자들에게 3년치 4223억원의 밀린 임금을 추가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기아차 측은 노조 측의 추가 수당 요구가 회사의 경영에 어려움을 가져와 신의칙에 위반된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기아차가 2008년부터 2015년 사이에 상당한 당기순이익을 거뒀고, 또 같은 기간 매년 1조에서 16조원의 이익을 거둔 점을 지적하며 사측이 주장한 경영상의 어려움에 대해선 이를 인정할 근거가 없다고 봤다.

김희성 강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에 대한 판단 시점과 기준이 모호하다”며 “법원이 과연 기업 경영 및 재무 구조에 대해 정확한 진단을 할 수 있을지, 또 그렇게 하는 게 바람직한지에도 의구심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어 “통상임금에 관해 대법원이 확립한 기준을 법제화해서 소모적인 소송을 방지하되, 통상임금의 범위에 대해서는 노사가 대등한 지위에서 자유롭게 합의하여 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해법을 제시했다.


임금액이나 구성, 수당 산정을 위한 기준임금의 결정은 노사의 자율적 판단 영역이라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노사합의를 우선한다는 대원칙 아래, 사회통념상 명백히 불합리한 경우에 한해서만 법률에 정한 바에 따라서 개입하면 된다는 것이다.

박기성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 역시 “근로기준법에 통상임금에 대한 정의규정이 없어 그 판단이 사법부에 맡기다 보니 이로 말미암은 사회경제적 손실과 갈등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통상임금 범위 확대에 따른 피고용자 보수는 2015년 기준 693조2883억원에서 707조1541억원이 되는 것으로 추산된다”며 “이는 연 경제성장률을 0.13%포인트 낮추는 효과로 이어진다. 특히 경제성장률의 하락은 매년 누적해서 영향을 줘, 2016년부터 5년 동안 국내총생산이 32조6784억원 감소한다”고 예상했다.


그는 이어 “통상임금 범위 확대로 인한 국내총생산의 이러한 감소는 사회 후생의 순손실”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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