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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불법촬영 등 젠더 폭력

[단독]이번엔 병원 탈의실… 공용공간 노리는 늑대들의 몰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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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간호사 촬영한 男동료

남녀 직원 함께 쓰는 탈의실서 옷 갈아입는 모습 찍다 적발

진화하는 몰카 기술

물병-액자 등 생활집기형 몰카 확산… 숨김앱-공유앱 써 물증잡기 힘들어

성범죄 디지털 증거분석 의뢰 급증

동아일보

4일 서울 강남의 한 유명 병원 지하 1층 탈의실에서 한 여성 간호사가 스마트폰 한 대를 발견했다. 누군가 깜빡 잊고 두고 간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탈의실 내 사무집기 사이에 교묘히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몰래카메라(몰카)였다. 이곳은 남녀 간호사가 함께 쓰는 ‘공용탈의실’. 전체 100명 가까운 간호사 중 남성은 극히 일부다.

○ 범죄 타깃 된 ‘남녀 공용’ 공간

서울 수서경찰서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카메라 등 이용촬영죄) 위반 혐의로 간호사 A 씨(31·남)를 입건했다고 13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 씨는 스마트폰을 이용해 공용탈의실에서 동료 여성 간호사들이 옷 갈아입는 장면 등을 촬영했다.

A 씨로부터 스마트폰을 압수한 경찰은 영상 등을 분석해 피해자 수와 영상 유포 여부를 확인할 계획이다. A 씨가 오랫동안 병원에서 근무해 피해자가 상당히 많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해당 병원은 뒤늦게 남성 간호사 등을 위한 전용공간을 마련했다.

지난해 공용화장실에서 발생한 ‘강남역 살인사건’ 후 남녀 공용 공간은 잠재적 범죄 현장으로 꼽히고 있다. 공용화장실은 조금씩 개선되고 있지만 탈의실 등은 기업이나 업소 내부의 공간이라는 이유로 사실상 사각지대로 방치되고 있다. 본보 취재진이 10∼13일 서울 강남과 종로 일대 병원과 대형 카페 등 10곳을 확인한 결과 7곳이 공용탈의실을 운영하고 있었다. 동료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의심받지 않고 카메라를 숨길 수 있다. 최근에는 물병이나 액자 등 일상 공간에 비치하는 생활집기를 가장한 몰카가 속출하고 있다. 하지만 업체 측은 비용·공간 문제로 분리된 공간을 만드는 데 소극적이다.

○ 촬영부터 공유까지 진화하는 몰카 기술

이른바 ‘몰카놀로지’(몰카+테크놀로지 합성어)의 수준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최근 몰카를 찍다가 현장에서 적발돼도 겉으로는 흔적이 남지 않아 범행을 발뺌할 수 있는 ‘숨김앱’이 급속히 퍼지고 있다. 숨김앱을 쓰면 몰래 찍은 사진이나 동영상이 스마트폰 갤러리에 남지 않고 나만의 비밀공간에 저장된다. 현장에서 다른 사람은 쉽게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직장인 B 씨(24)는 지난달 서울의 한 다세대주택 밀집지역에서 난간을 딛고 올라가 2층 화장실 창문에 숨김앱이 깔린 스마트폰을 밀어 넣어 목욕하던 여성을 몰래 찍다가 적발됐다. 창문에 불쑥 올라온 카메라를 보고 깜짝 놀란 여성이 신고해 폐쇄회로(CC)TV 추적으로 다음 날 잡힌 B 씨는 범행을 부인했다. 스마트폰 사진첩은 깔끔했고 경찰이 복원을 시도해도 영상이 나오지 않았다.

B 씨의 완전범죄는 경찰이 숨김앱의 존재를 포착하면서 막을 내렸다. 경찰청 사이버안전국은 디지털 포렌식 기법을 통해 B 씨 스마트폰에서 5월경 찍은 52초 분량의 몰카 동영상을 찾아냈다. 지난달 범행 당시 B 씨 스마트폰에서 카메라앱이 2분가량 작동했던 흔적도 포착했다. 경찰이 디지털 증거를 들이밀며 추궁하자 B 씨는 범행을 시인했다.

몰카를 찍자마자 바로 인터넷에 올릴 수 있는 사진 공유앱도 몰카범의 관음증과 과시욕을 충족시키는 도구로 악용되고 있다. 직장인 C 씨(24)는 6월 수도권의 한 유흥가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여성과 술을 마신 뒤 모텔로 가 잠자리를 가졌다. 처음 만난 여성과 당일 성관계를 했다는 사실을 과시하고 싶었던 C 씨는 성관계 직후 침대에 누워 있던 여성의 나체를 스마트폰으로 몰래 찍어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렸다.

C 씨가 사용한 스마트폰 사진공유 앱은 사전에 커뮤니티 주소를 설정해두면 촬영 직후 사진을 올릴 수 있도록 돼 있어 촬영부터 인터넷 게시까지 불과 11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의 그릇된 과시욕은 인터넷 게시글을 본 누리꾼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인터넷주소(IP주소) 추적을 통해 스마트폰 사용자를 특정하고, 여성 사진을 복원하면서 비극으로 막을 내렸다.

스마트폰에 남겨진 디지털 증거가 성범죄 입증의 결정적 증거로 쓰이면서 디지털 분석 수요가 5년 전보다 20배나 증가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성범죄 관련 디지털 증거분석 의뢰 건수는 2012년 541건에 그쳤지만 사이버안전국이 개국한 2014년 3372건으로 늘었고 2016년에는 1만 건을 돌파했다.

김배중 wanted@donga.com·조동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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