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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불법촬영 등 젠더 폭력

왁싱숍 살인사건, 왜 여혐살인이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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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이었다면 범행 대상 됐을까?"…강력범죄 피해자 89%가 여성

CBS노컷뉴스 윤지나 기자

노컷뉴스

또 여자라서 죽었다.

가마솥더위의 한복판인 6일 낮 12시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마주한 글귀다. 한 달 전 강남의 미용업소에서 여성 왁싱사(제모사)가 숨진 사건을 '여성 혐오 범죄'라고 보고 이를 공론화하려는 여성들이 모인 자리다.

해당 사건이 여성 혐오에서 비롯된 범죄인지에 대해 논란이 분분한 가운데, '또 여자라서 죽었다'는 문장은 최소한 절반은 맞는 말이다. 피해자가 여성이었던 것은 단순히 범행 대상으로서 손쉽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녀가 범행 대상으로 지목되기까지 분명 성적 대상화 과정이 존재했다. 강남역에 모인 여성들이 일관된 주장이기도 하다.

왁싱샵 살인사건을 벌인 배모(30)씨가 범행 전 봤다는 인터넷 방송에서, BJ는 해당 왁싱샵을 여성 혼자 있는 외진 곳이라 강조한다. "왁싱 도중 섰다"는 자막을 비롯해 피해자를 철저히 성적 대상으로 봤다. 그리고 가해자는 범행 당시 성폭행을 시도하기도 했다.

시위에 참여한 20대 여성은 "자신보다 약하고 열등한 여성을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인식이 팽배한 상황에서, 범행 대상으로서도 여성을 쉽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고 극단적으로 살인의 형태까지 이르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여성은 "만약 왁싱샵 주인이 여성처럼 물리적으로 약한, 그러나 남성이었다고 해도 그렇게 신상이 파헤쳐 지고 범행의 대상이 됐을까"물으면서 "이런 사건이 여혐 범죄가 아니면 도대체 무엇이 여혐 범죄인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강력범죄 피해자의 상당수는 여성이다. 대검찰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5년 강력범죄의 피해를 입은 여성 비율은 88.9%로 2014년 88.7%보다 0.2%p 증가했다. 강력범죄로 인한 여성 피해자는 2000년 6245명에서 2015년 2만7940명으로 15년 새 약 4.5배 증가한 반면, 남성 피해자는 같은 기간 2520명에서 3491명으로 약 1.4배 증가했다.

단순히 '범행에 취약한 약한 상대'로서 여성이 지목됐다고 하기엔, 여성 피해자의 증가폭이 가파르다. 여성을 범행 대상으로 삼는 또다른 사회경제적 배경이 작용했을 것이란 의심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경찰청 관계자는 "여성 혐오 범죄에 대한 개념이 아직 없지만, 일단 경찰은 '여성에 대한 분노가 범죄의 주요 동기인 경우'로 보고 있다"면서 "왁싱샵 사건이나 지난해 강남역 살인사건을 강력 범죄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다만 "여성 피해자 증가에 대한 원인 분석이나 여성 상대 범죄 가해자에 대한 프로파일링 정보가 모이면 여혐 살인에 대한 개념이 잡힐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반적인 여성들이 느끼는 공포의 수준이 높아진 것은 확실하다. 그래서인지 이날 시위에도 "하루에도 수십번을 살아났다 안도한다", "남자면 안전한 나라 여자면 불안전 나라", "치안 좋은 대한민국, 여성에겐 해당없다"는 구호가 끊이지 않았다.

여성혐오에 대한 개념부터 최근 일어난 사건의 여성혐오 범죄 여부까지 논란이 분분한 상황이지만 분명한 것은 강력범죄의 피해자가 대부분이 여성이고, 그들이 전에 없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이다.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폭력적인 시선을 견뎌야 한다는 이들은 마스크와 가면을 썼다. 하지만 목소리는 분명했다. 다시 한번, "여자라서 죽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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