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권오창이 그린 "영친왕비". <사진 제공=돌베개> |
"세상에서 가장 깊은 것이 무엇이냐?"
다른 처녀들은 산이 깊다거나 물이 깊다고 했지만 정순왕후는 "인심(人心)이 가장 깊다"고 답했다. 세자비를 간택하는 일은 왕대비와 대왕대비 일이었다. 그런데 영조는 자신이 직접 간택을 자청했다.
이번엔 영조가 가장 아름다운 꽃이 무엇인지 물었다. 정순왕후는 "목화꽃은 비록 멋과 향기는 빼어나지 않으나 실을 짜 백성들을 따뜻하게 해주는 꽃이니 가장 아름답다"고 답했다. 15세 어린 나이에도 백성을 위하는 갸륵한 마음씨는 영조의 마음을 흔들었고 정순왕후는 왕비로 간택될 수 있었다.
조선시대 왕의 결혼은 국혼이었다. 왕비 간택이 국가지대사인 것은 당연했다. 자유연애가 허락되지 않던 조선시대 왕비는 공모를 통해 선발됐다. 왕실은 전국에 광고를 내 후보 신청을 받았다.
왕비 간택령이 내려지면 전국에는 금혼령이 내려졌다. 15~20세 양반가 처녀가 대상. 이들은 성씨와 본관, 사주 등을 기록한 단자를 제출해야 했다. 그런데 왕비가 국모로 떠받들어졌음에도 정작 부모들은 왕을 사위로 맞아들이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각 가정에서는 딸을 숨기거나 나이를 늘리고 줄이는 등 갖은 방법을 동원해 단자를 제출하지 않으려 했다. 인조 16년에는 딸을 숨기려다 발각된 전ㆍ현직 관료들을 잡아다가 추문하기도 했을 정도다. 이렇게 거둬들인 처녀 단자는 많아야 25장 내외였다.
초간택, 재간택, 삼간택을 거치면서 후보는 3명으로 최종 압축됐다. 간택 기준은 외모나 성품보다는 어느 가문 딸인지가 더 큰 영향을 미쳤다. 혼인을 통해 고위 관료 집단과 혈연관계를 맺어 왕의 지위를 강화하는 게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조선의 왕비로 살아가기'는 조선시대 왕비가 간택되는 과정부터 궁궐 내에서 일상과 문화ㆍ정치적 지위와 성격까지 생생하게 되살려낸 책이다. 왕조실록에 출생부터 서거까지 일거수일투족이 기록됐던 왕과 달리 왕비는 사대부가 여식으로 태어나 간택 이전까지는 평범한 양반가의 딸로 자랐다. 왕비 일생을 추측하려면 궁중생활 기록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사와 한문학을 전공한 전문 연구자 7명이 매달려 복원해낸 왕비의 삶은 백과사전을 보듯 촘촘하다. 맛깔나는 문장을 기대할 순 없지만 방대한 정보량에 있어서는 박수를 보낼 만하다.
그렇다면 이렇게 어렵게 간택된 왕비의 삶은 어떠했을까. 경복궁 교태전과 창덕궁 대조전은 왕비가 머물던 침소다. 왕비 침전은 왕 침전 위에 있었다. 구중궁궐 중심에 있었기 때문에 왕비 침전은 '중전'이라 불렀다. 크고 화려한 곳에 살았던 조선의 왕비는 국모라는 지위에 있었지만 궁중 여인으로서 생활이 늘 평탄하지는 않았다.
![]() |
후궁과 궁녀 등 궁중에서 품계를 받은 여인들을 이르는 내명부와 궐 밖에 사는 관료의 배우자, 종친의 부인 등을 아우르는 외명부. 왕비는 내명부와 외명부 수장으로 국가의 중요한 의례에 참석했다. 특히 외척이 든든한 후원자로 조정에 있을 때 왕비의 정치적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 내명부는 엄격한 위계가 확립돼 있기도 했다. 정1품인 빈부터 정5품인 상궁, 종9품인 주변궁까지 18등급 편제가 확립돼 있었다.
왕비의 가장 중요한 책무는 적자 출산. 조선시대 왕 27명 가운데 적장자(嫡長子)로 왕위에 오른 군주는 문종, 단종, 연산군, 인종, 현종, 숙종, 순종 등 7명에 불과했다. 상당수 왕은 적자가 아닌 서자였다.
왕비들이 임신 7개월에 이르면 궁에는 산실청이 설치됐다. 출산을 주관하는 권초관은 정2품 이상 관직자 중에서 선발될 정도로 출산에 국가적인 관심이 쏟아졌다. 하지만 출산 이후 육아에서는 왕비 역할이 크지 않았다.
왕비는 왕통의 후계자를 낳았기에 수렴청정을 통해 정치에 직접 관여할 수도 있었다. 섭정권을 행사한 왕비는 세조비 정희왕후, 중종비 문정왕후, 명종비 인순왕후, 영조비 정순왕후, 순조비 순원왕후, 익종비 신정왕후까지 모두 6명이다. 아들인 경원대군을 왕위에 올리고 섭정을 선포한 문정왕후는 죽을 때까지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왕비가 친정에서 데리고 들어온 사노비를 본방나인이라 불렀다. 왕비 속옷을 빨았고, 아이를 낳을 때 옆에서 시중을 들었으며, 왕비가 유일하게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존재는 본방나인뿐이었다.
갈무리하자면 왕비란 정치를 할 수는 없으나 정치력은 가져야 했던 여인이었다. 화려했지만 궁궐에 갇혀 엄격한 법도에 따라 살아야 했던 그 여인의 삶이 행복했을지 불행했을지 쉽지 않은 질문을 던져보게 하는 책이다.
[김슬기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