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카범죄를 사생활 침해로 인식해야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늘어나는 몰카 범죄에 여성들이 불안에 떨고 있지만 나체나 특정 신체 부위를 찍지 않는 한 처벌되지 않는 등 법 규정에 허점이 있다는 지적이 높다.
정부는 지난 18일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고 ‘성폭력 범죄자의 성 충동 약물치료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심의ㆍ의결했다. 의결된 개정안에 따르면 성 충동 약물 치료 대상 범죄에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죄 ▷강도강간 미수죄 ▷아동·청소년 강간 등 상해 치사죄가 추가됐다. 성 충동 약물치료는 성도착증 환자에게 약물을 투여해 성 기능을 일정 기간 약화 또는 정상화하는 치료로 이른바 ‘화학적 거세’로 불린다. 몰카범 역시 죄질이 나쁠 경우 화학적 거세의 대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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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몰카범에 대해 강도높은 제재안을 꺼내 든 것은 각종 단속에도 불구하고 몰카 범죄가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몰카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으로 성폭력 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위반으로 검거된 사례는 2011년 전국 1344건에서 꾸준히 늘어 2015년 7430건으로 급증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몰래 촬영당한 피해자가 기분이 나쁘더라도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특정 신체 부위를 찍지 않고 옷을 입은 몸 전체를 찍을 경우엔 처벌 대상에서 제외돼 논란이 되고 있다. 성폭력처벌법 제14조는 ‘카메라 등을 이용해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신체를 그 의사에 반하여 촬영하거나 그 촬영물을 반포ㆍ판매ㆍ임대ㆍ제공 또는 공공연하게 전시ㆍ상영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난해 1월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까지 따라가 몰래 여성의 상반신을 찍어 기소된 남성에 대해 대법원은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고등법원에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사진 속 여성의 모습이 얼굴과 손 외에는 신체 노출이 없다는 점을 들어 “피해자와 같은 연령대의 일반적인 여성의 관점에서 해당 사진이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이라는 전제 자체가 모호하다는 점이다. 입법조사처는 “형사절차의 엄격한 증명책임 때문에 여성의 특정부위가 형식적으로 유무죄를 결정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은 사회의 성적 관념 및 성문화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데다 당사자의 수치심이 기준이 되는지 사회 통념에 따르는지도 불분명하다.
실제로 지난 9일 한 건물 여자 화장실에서 여성이 용변을 보는 모습을 몰래 촬영했다가 적발돼 유죄가 확정된 전 국회입법보좌관이 해당 조항에 대해 “개념이 모호해 표현과 예술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헌법소원을 냈다. 헌법재판관은 6 대 2로 합헌결정을 했지만 강일원ㆍ조용호 재판관은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이란 표현이 명확치 않아 법관이 자의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위헌 의견을 냈다.
이같은 논란은 현행 법이 몰카 범죄를 새로운 유형의 성범죄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일본ㆍ영국ㆍ미국 역시 성적 만족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타인의 사적행위를 촬영하거나 유포하는 행위를 처벌하지만 그 대상을 나체나 둔부, 가슴 등으로 제한한다.
반면 독일이나 프랑스 등은 몰카 범죄를 사생활의 침해의 일종으로 보고 주거지 등 사적인 공간에 있는 타인의 모습을 찍는 행위 자체를 처벌하고 있다. 캐나다 역시 “사생활 보호를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상황에 놓인 자를 몰래 관찰하거나 촬영한 경우”로 규정해 폭넓게 처벌한다.
입법조사처는 “성적 자기 결정권과 별개로 본인의 의사에 반해 촬영당하지 않고 사생활을 지키는 것을 형사상 보호법익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사생활 침해죄를 별도로 신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현행 성폭력처벌법 제 14조 적용에 있어서도 특정 신체 부위 여부 외에도 촬영각도나 촬영 의도 등 당시 정황을 고려해 처벌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why3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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