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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가습기살균제 참사, 마르지 않은 오천 명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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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고도예 기자] 유해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숨지거나 병을 얻은 피해자 수가 지난해 5000명을 넘어섰다. 살균제 제조사 임직원들에 대한 형사처벌이 이뤄졌지만, 5000명 피해자의 울분을 풀어주기에는 남은 과제가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 지난해까지 신고된 피해자 수 5000명↑ = 환경보건시민센터는 29일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신고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수가 모두 5341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사망자는 1112명, 생존해 있는 환자는 4229명이다.

피해자들은 수도권 지역에 몰려있었다. 경기 지역에서 신고된 피해자 수가 1608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았다. 특히 고양과 수원, 성남, 남양주, 용인 등에서 100명이 넘는 피해자 신고가 잇달았다. 두 번째로 피해자가 많았던 곳은 1194명의 피해 신고가 접수된 서울이었다.

지역별 피해자 수는 ▲인천 392명 ▲부산 288명 ▲대구 247명 ▲경남 231명 ▲경북 203명 ▲대전 200명 ▲전북 163명 ▲충남 158명 ▲충북 148명 ▲광주 139명 ▲강원 123명 ▲전남 108명 ▲울산 66명 ▲세종 31명 ▲제주 28명 순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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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조사·임직원들 최고 징역 7년형··· 피해자들 반발= 법원은 지난 6일 유해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판매한 관계자들에게 법정 최고형인 징역 7년을 선고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공론화된지 5년 5개월만의 일이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부장 최창영)는 “제조 판매 당시 살균제 성분이 호흡기 등에 들어가 상해와 사망을 일으키는 것을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안전성을 검증하지 않았다”며 신현우(70) 옥시레킷벤키저 전 대표에게 징역 7년을 내렸다.

그러나 재판부가 신 전 대표에 대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를 무죄로 판단하면서 신 전 대표의 형량은 검찰 구형량인 징역 20년에서 7년으로 크게 줄었다.

신 전 대표에 이어 옥시를 이끈 존리(49) 전 대표에게도 “보고관계에 있던 전직 외국인 임원에 대한 조사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일부 직원들의 추측성 진술만으로 죄를 물을 수 없다”며 무죄가 선고됐다.

선고가 끝난 뒤 일부 피해자들은 “옥시 제품에 있던 ‘아이에게도 안심’이라는 문구 때문에 아이를 잃었는데 관련자에게 무죄라니 말도 안된다”며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 3·4단계 피해자 배상 좌우할 특별법 통과 = 보상에서 제외된 3·4단계 피해자를 구제하는 것도 남은 과제다.

폐섬유화가 아닌 천식, 비염 등을 앓는 3·4단계 피해자는 사실상 정부와 기업의 모든 보상에서 제외돼있다.

지난달 29일 국회 상임위를 통과한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법 개정안(가습기 특별법)’에는 이들 3·4단계 피해자들에게 구제급여를 지원하는 방안이 담겨있다. 가습기살균제와 원료물질 사업자들에게 분담금을 걷어 최대 2000억원 규모의 특별구제계정을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3·4단계 피해자를 지원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3·4단계 피해자 수가 지난해 말 기준 5314명에서 계속 늘어나고 있어 충분한 지원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제조업체 중 상당수가 책임을 인정하고 있지 않아 분담금이 모일지도 불투명하다.

◆SK·애경 등 추가 수사 =SK와 애경 등 유해 가습기살균제를 만들어 판매한 다른 업체들에 대한 수사도 미완의 숙제 중 하나다.

지난해 8월 시민단체는 가습기메이트를 만든 SK케미칼과 판매업체 애경을 검찰에 고발했지만, 검찰은 과학적 근거가 없다며 수사를 유보해왔다. 검찰은 지난 2011년 질병관리본부에서 가습기메이트의 주요 성분인 CMIT·MIT와 폐섬유화의 인과관계를 부정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지난 5월 구성된 정부의 ‘폐 이외 질환 검토위원회’는 안전성평가연구소에 CMIT·MIT에 대한 추가 실험을 의뢰했다. 실험에서 해당 물질과 폐 섬유화 간 인과관계가 입증되면 검찰이 이 성분이 들어간 제품을 만들고 판매한 업체들을 수사할 명분이 생긴다.

◆옥시·롯데·홈플러스 배상 제대로 이뤄지나= 폐섬유화를 앓는 1·2단계 피해자들이 옥시와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가해기업으로부터 약속된 금액을 배상받는지도 지켜볼 대목이다.

옥시는 지난해 성인 피해자들에게 최대 3억 5000만원의 위자료를, 영유아나 어린이 피해자의 경우 위자료를 포함한 10억원을 일괄 배상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위자료만 11억원 이상으로 산정한 대법원논의안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또다른 가해기업인 롯데마트와 홈플러스는 공개배상 대신 피해자들과 개별 물밑 접촉을 해 정확한 배상액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 재발 방지 위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 고의적으로 소비자에 피해를 입힌 기업에게 실제 손해액의 3배 책임을 묻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논의도 이뤄지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5일 업무보고에서 연내 제조물책임법을 이같은 방향으로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정치권에서 관련 법안을 발의한 적은 있지만 정부가 도입 계획을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다. 공정위는 피해자의 입증 책임도 완화하겠다고 했다. 피해자는 제품을 정상적으로 사용한 사실과 자신이 입은 손해가 제품 결함이 아니고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만 입증하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위헌소지가 있는 만큼 입법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는 법조계 지적이 나온다. 당초 ‘가습기살균제 특별법’에는 ‘제조업체가 손해액의 10배를 배상토록 한다’는 문구가 포함돼있었지만, 최종적으로는 이같은 문구가 빠졌다. 상임위에서는 지나간 행위를 새로 법을 만들어 처벌하는 ‘소급입법’이 위헌소지가 있다는 의견이 우세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yea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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