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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에도 전통과 문화는 존중받아야 한다
● 하지만 모든 군 장비의 존재하는 목적은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신병훈련을 받으면서 고무링을 받았던 기억은 여전히 잊지 못한다. 이 노끈 같은 걸로 뭘 하라는 거지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지급받았던 고무링은 한 주 두 주가 지나 발목이 부어갈수록 느슨해져갔다. 분명 바지 밑단을 잡아주는 것인데, 이렇게 얇은 걸로 되겠어 싶었다. 자대 배치 후 PX로 갈 수 있게 된 후에 보니 좀 굵은 놈이 있었고, 짬이 차서 살 수 있게 된 다음에는 잘 써먹었다.
그러나 이런 저런 이유로 분실하기를 반복하면서 이거 대체할 뭔가 좋은 게 없을까 싶었다. 일단제일 좋은 방법이야 고리를 펜치로 찝어버리는 것이기야 했지만… 전역한 후에 한참 지나 무심결에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X(라고 쓰고 '똥'이라 읽자)도 좋다는 '천조국'에는 고무밴드와 벨크로가 결합된 제품들을 팔고 있었다. 심지어는 군화에 결합되는 모델까지 있어 모양도 확실히 잡아주고 분실의 염려도 없는 것도 있었다. 역시 누가 뭐래도 '천조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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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무링의 발달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애초에 고무링이란 것을 왜 하는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 전쟁시에 군복을 양산하다보면 모든 사람의 다리 길이를 고려하여 기장을 만들어낼 수는 없었다. 결국 허리를 위주로 해서 스몰-미디엄-라지-엑스라지 등으로 나누고 기장은 접어넣는 방식으로 군복을 입었다. 진흙이나 기타 오염물이 바짓단 안으로 안 들어와서 오염을 막는 효과도 있었다.
미군도 그렇게 처음 '고무링'을 쓰기 시작했다. 아 물론 미국에선 이걸 'blousing strap(또는 boot bands, boot blouse 등등)'이라고 부른다. BDU(Battle Dress Uniform, 전투복)이란 걸 처음 입기 시작했을 때부터 함께 하던 물건이니 대략 한국전 때부터 사용되었다. 미군 입장에서도 나름 역사와 전통을 가진 물건이다.
▲미 해병의 고무링 착용법. / 유튜브
그러나 심지어는 우리가 흔히 사 입는 등산복 바지를 보면 바지 기장의 끝단에 고무줄이 내장된다. 즉 고무링이 내장되는 형식이다. 물론 이 경우는 등산시 야외활동에서 바지밑단에 이물질이 끼거나 하는 걸 막는 용도다. 이걸 군복에서도 그대로 활용할 수도 있다. 그래서 2012년부터 지급되는 신형군복에는 이렇게 등산복처럼 밑단에 고무줄을 내장하고 있다. 일선의 요구와 효율성을 따라 개선한 사례로 높이 평가 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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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고무링 논란을 꺼내려는 게 아니다. 고무링이란 존재가 없어져야 한다는 말도 아니다. 여전히 고무링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신형군복이라도 고무링을 활용하여 군복을 깔끔하게 잡는 쪽이 더 편한 사람도 있다. 누가 뭐래도 고무링으로 정리해야 밑단이 깔끔하고, 군인다운 프로정신은 깔끔하고 정돈된 복장에서 나온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위에 소개했던 것 같은 새로운 제품이 많이 개발되어 더 이상 잃어버리는 불편함이 없이 깔끔하게 잘 입었으면 하고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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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생각해보자. 요즘이라면 고무링 자체가 필요할까? 최근 미군이든 영국군,독일군이든 해외에서 실제 전쟁에 참가하는 부대들을 보고 있으면 실제 작전에서는 고무링을 착용하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이 나온다. 목숨을 걸고 전장에서 박박 기고 구르다 보면 고무링이 남아 있을 리가 없다. 그래서 실전에서는 고무링보다 더 좋은 방법을 찾아내고 있다. 아예 새로운 전투복을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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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투복의 변화
대표적인 흐름이 온 것이 바로 정예부대들로부터였다. 애초에 차이나 컬러의 요즘 군복 디자인이 나온 것도 실은 RAID BDU라는 특수부대용 군복 디자인에서 발전한 것이었다. 최근에 미군에서 채용되고 있는 최첨단 군복은 바로 컴뱃셔츠와 컴뱃팬츠다. 애초에 이 설계는 C모사에서 제품화되면서 커다란 인기를 끌었고 미 특수전사령부가 제식으로 채용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정확히 얘기하자면, 일선 부대원들이 필요에 따라 만들어 입던 RAID BDU라는 군복을 업체가 개량해 제품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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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테일을 볼 것 같으면 여러 가지 요구가 모두 포함되었다. 전장터에서 뛰어다니다면서 무릎 쏴 엎드려 쏴 등으로 무릎에 무리가 가는 경우가 많다보니, 1980년대까지만 해도 특수부대원들은 민간용 스케이트보드용 무릎보호대를 착용했었다. 그러나 90년대 중,후반 정도가 되자 군용제품들이 나왔다. 외부에 장착하다 보니 문제가 많았다. 고무가 느슨해졌다. 그래서 바지 안쪽에 충격방지패드가 내장되는 신형 전투복 하의가 나왔다.
보통 전투복 바지에는 4개의 호주머니와 2개의 '건빵주머니'가 있다. 그런데 방탄과 장비조끼 등 전투장비를 모두 착용한 후에는 4개의 호주머니는 손이 닿지 않는다. 그러자 RAID BDU에서는 앞쪽 호주머니 위에 다시 조그만 외부주머니 2개를 달고, 종아리 부분에 또 외부주머니를 각각 달아서 4개의 포켓을 추가했다. 이것이 일종의 표준처럼 되어서 컴뱃팬츠에 적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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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바지의 절개 방식은 움직임을 최대한 고려했다. 움직이는 부위를 감안하여 천조각들을 마치 등산복 만들 듯이 처음부터 완전히 재설계 했다. 많이 헤지는 엉덩이나 무릎부분 등은 천을 덧대었다. RAID BDU에서는 바지 끝단은 천으로 된 줄이 아니라, 단단한 번지코드를 사용하여 고무링과 비교도 안되는 강도를 주었다. 신형 컴뱃팬츠에서는 아예 고무링 방식을 없애버리고, 벨크로 천으로 단단히 잡아주도록 바꾸었다. 펑퍼짐하게 퍼지는 무릎 부분에도 역시 벨크로 천으로 잡아주어, 활동성도 좋아지고 무릎패드가 밀착될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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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뱃셔츠 얘기도 해보자. 최근의 전장은 대게 방탄조끼가 필수다. 그러다보니 방탄조끼가 군복과 닿는 부분은 여름이고 겨울이고 상관없이 엄청나게 땀이 찬다. 일반적인 군복천으로는 땀을 배출할 수가 없다. 그러자 현장에서 아이디어가 나왔다. 보급받은 기능성 셔츠의 몸통에다가 팔에만 RAID BDU를 붙이는 것이다. 마치 요즘 기능성 집업 조끼 모양이 되었다. 방탄조끼와 몸이 닿는 부분에는 아예 기능성 소재의 천을 쓰고, 가슴주머니는 없애는 대신 팔뚝에 커다란 주머니를 달았다. 어차피 방탄조끼를 입으면 안주머니는 쓸래야 쓸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컴뱃셔츠와 컴뱃팬츠는 오직 작전 중에만 입을 수 있다. 평시에 근무할 때 입는 옷은 아니란 말이다. 그러나 최소한 실제 전투임무에 들어갔을 때는, 실용성을 최우선하겠다는 것이 정책과 규정으로 반영되어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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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에 봉사하는 리더십이 중요
고무링에서 신형군복까지 얘기를 장황하게 풀었는데, 얘기하고자 하는 핵심은 이렇다. 절대로 혁신적인 것은 하루아침에 나오지 않는다. 군복만 하더라도 RAID BDU, ACU, 컴뱃셔츠/컴뱃팬츠 등의 과정을 거쳐서 나왔다. 그런데 이런 과정이 공짜로 나왔을까? 절대 아니다. 특수한 임무를 수행하는 부대에게 다양한 전투실험이 가능하도록 허락해주었기 때문에 그 성과가 결국 전군으로 확산될 수 있었던 것이다.
기준이나 방향 없이 누구나 아무렇게나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임무에 따라 스스로 발전할 수 있도록 시험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부여하자. 싸우기 위해서, 이기기 위해서 고민하는 사람에게, 상은 못줄망정, 최소한 그런 노력을 맘껏 펼칠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도록 하자. 이렇게 현장에 봉사하는게 진짜 리더십이다. 그게 우리 군을 실전적으로 유지시키고 전쟁에서 이기는 길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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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조선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수석연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