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체 세퓨 폐업으로 실제 배상 어려워
항소심서 국가 배상 책임 등 쟁점될 듯
향후 위자료 현실화 등 제도 개선 목소리
【서울=뉴시스】강진아 기자 =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의 피해자들에 대한 제조업체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첫 판결이 나오면서 향후 관련 민사 소송에서 피해자들이 법적으로 배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하지만 이번 판결의 대상인 제조업체 세퓨는 이미 폐업을 해 피해자들이 실제 배상을 받기는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15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0부(부장판사 이은희)는 최모씨 등 10명이 세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피해자들에게 총 5억4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의 고통의 정도, 세퓨의 과실 정도 등을 고려해 사망한 피해자의 유가족에게 각 1억원, 상해를 입은 피해자에게 3000만원, 그 가족들에게 1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단했다.
당초 피해자들은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의 최대 가해자로 지목된 옥시레킷벤키저를 비롯해 제조판매업체인 한빛화학, 용마산업, 롯데쇼핑을 상대로도 소송을 냈지만 지난해 9월 조정이 성립됐다.
하지만 세퓨 측은 제품을 만든 버터플라이이펙트가 지난 2011년 폐업해 사라졌고,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 후 회사 대표가 구속되면서 사실상 배상을 위한 조정에 나서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세퓨 측은 2년여간의 소송 과정에서 "가습기 살균제 사용과 피해자들의 폐손상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는 취지의 답변서만 한 차례 제출했을 뿐, 법원에 출석해 적극적으로 소송에 임하지 않았다.
다른 가습기 살균제 피해 민사 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정호진 변호사는 "제조업체에 대한 책임을 법적으로 인정한 판결로서 의미가 있지만 세퓨가 이미 도산한 상황에서 실질적으로 피해 회복을 받기는 불가능하다"며 "때문에 현실적으로도 국가에 대한 피해 배상 책임을 물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은 이날 가습기 살균제 피해에 대한 국가 배상은 인정하지 않았다. 피해자들이 증거로 제출한 신문기사나 보도자료만으로는 국가 책임을 인정하기에 어렵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항소심에서 추가 증거를 보완해 다시 다툴 가능성이 높다. 재판부는 이날 "항소심에서 국가의 책임을 묻는 증거조사가 다시 이뤄진다면 추가 판단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 관련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며, 현재 재판 중인 옥시 등 제조·판매업체에 대한 형사사건도 12월께 선고될 예정으로 1심 판결 후 형사기록을 바탕으로 추가 공방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판결은 향후 다른 가습기 살균제 민사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현재 서울중앙지법에는 10여건의 소송이 진행 중이다.
일각에서는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으로 오랜 기간 고통을 받아온 피해자들에 대한 위자료 금액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행 위자료 산정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금액이 낮게 설정돼 있어 위자료를 현실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계속됐다. 또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처럼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거나 기업의 불법성이 심각한 경우 업체의 불법행위에 책임을 가중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돼 왔다.
법원 관계자는 "법원 내부의 위자료 현실화 논의에 대해 재판부도 잘 알고 있고 이번 판결 과정에서 함께 검토했다"며 "다만 피해자들이 청구한 금액을 넘어 위자료를 인정할 수는 없으며 이번 사건에서 청구한 금액 전액은 모두 인용됐다"고 설명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 김한규 회장은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과 같은 기업의 반사회적인 불법행위에 대해 법원이 전향적인 방향을 제시한 만큼 과거보다 훨씬 증액된 손해배상액이 인정됐어야 한다"며 "위자료 산정을 체계화하는 등 향후 손해배상 제도에 대한 개선의 필요성이 제기된다"고 밝혔다.
akang@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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