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피해로 첫 돌도 지나지 않은 딸을 잃은 김대원씨가 15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손해배상 구소송에서 사실상 승소한 뒤 기자들에게 심정을 말하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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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흐드러지게 핀 2011년 5월의 첫날, 김대원(41)씨는 가습기 살균제로 딸을 잃었다. 세상을 본 지 갓 10개월 된 딸 예안이는 돌잔치를 코앞에 두고 자꾸만 마른기침을 했다. ‘감기이겠거니’하고 동네 병원을 찾았는데, 어느새 중환자실에 와 있었다. 예안이는 3주 뒤 숨을 거뒀다. 딸을 가슴에 묻은 지 5년 반, 가해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낸 지 2년 3개월 만에 그는 법원에서 가해 기업의 책임을 인정받았다.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다 숨지거나 다친 피해자들에게 제조업체가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첫 판결이 나왔다. 다만 국가의 배상 책임은 증거가 부족하단 이유로 인정되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0부(재판장 이은희)는 15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 10명이 제조업체 세퓨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세퓨가 피해자 또는 유족에게 각 1000만원~1억원씩 총 5억4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가습기 살균제와 피해자들의 사망 또는 상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피해자가 사망한 경우 부모에게 1억원, 상해를 입은 경우 피해자에게 3000만원, 부모나 배우자에게는 1000만원을 배상하도록 했다. 다만 국가의 관리·감독 소홀로 인한 책임은 “어떤 조사가 진행됐는지 알 수 있는 자료가 없어 증거가 부족하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김씨 등은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세퓨의 가습기 살균제를 구매해 사용한 뒤 폐손상 등 피해를 보았다며 지난 2014년 8월 세퓨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이들은 “제품에 폴리헥사메틸렌구아나딘(PHMG) 등 독성물질이 있는데도 인체에 안전한 성분을 사용한 것처럼 표시했다”고 주장했다. 세퓨는 제품 포장에 아기 사진과 함께 ‘인체에 안전하다’는 문구를 입혀 광고한 바 있다. 재판이 이어지는 동안 세퓨 쪽은 법정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제품 사용과 피해자들의 폐손상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는 내용의 답변서만 한 차례 제출했다. 애초 옥시레킷벤키저, 한빛화학, 롯데쇼핑 등에 대해서도 함께 소송이 제기됐지만 지난해 9월 조정이 이뤄져 판결 선고로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세퓨 피해자들은 막막한 심정이다. 세퓨가 파산해 보상받을 길이 없기 때문이다. 이날 홀로 법정에 나와 선고를 지켜본 김씨는 “세퓨 파산으로 사실상 보상받을 방법이 없지만, 아이 납골당에 판결문이라도 갖다 주고 싶어 법원의 조정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눈물을 보였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세퓨 제품은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낸 옥시 제품에 비해서도 독성이 4배 넘게 강하다. 접수된 피해자 수에 비춰 사망자 수가 상당히 많은데도 회사의 도산으로 배상받을 길이 없다”고 말했다.
김씨는 국가의 책임이 인정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내비쳤다. 그는 “가습기 살균제 국정조사 특위에서 조사한 내용을 제출했는데도 인정받지 못했다”며 “헌법에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고 돼 있지만, 국회와 정부 누구도 국민의 생명을 지켜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항소하겠다고 했다. 국가 책임을 꼭 밝혀내겠다는 것이다. “끝까지 가야죠. 먼저 간 아이에 대한 책임이고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현소은 기자 s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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