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경 진(慶珍)은 고려 명종 때 조위총의 난을 평정하여 공을 세웠다. 그 후 중서시랑평장사(정2품 벼슬)를 지냈다. 그의 아들이 유명한 경대승(慶大升)이다. 경진의 후손 경 번(慶蕃)은 고려 고종 때 호부상서와 평장사를 지낸 후 청주에 세거했다. 그의 증손 경복흥(慶復興)은 공민왕 때 문하시중을 역임했으며 청원부원군에 봉군되었다. 그래서 후손들이 경 번을 1세조로 하고 본관을 청주로 하여 세계를 이어왔다. 시조의 묘소는 청주 서산(芧山)에 있으며, 향사는 음력 10월 10일에 한다.
경대승(慶大升,1154-1183)은 청주경씨가 배출한 인물이다. 그는 고려 중기의 무신으로 15세에 음서(蔭敍)로 교위(校尉)에 임명된 뒤 차차 벼슬이 올라 장군이 되었다. 1178년(고려 명종 8) 허 승(許升) 등과 모의하여 집권 무신 정중부와 그의 아들인 정 균과 송유인 등을 죽이고 정권을 장악했다. 그의 집권 동안 도방의 무리라 일컫는 도둑이 횡행하고, 잦은 민란이 발생하는 등 사회가 어지러웠다. 경대승은 집권 5년 여 만에 30세의 젊은 나이에 이인임의 참소로 유배당한 후 청주 고향 땅에서 죽는다.
현대인물은 경규학(경제학박사, 연세대교수), 경규항(이학박사, 세종대교수), 경대수(서울지검검사), 경창헌(주미총영사), 경세호(쌍방울메리야스사장), 경석규(대순진리회총무원장), 경석돈(경남화학사장), 경갑경(초등학교교장), 경석겸(통일주체국민회의대의원), 경석종(향교전교), 경석구(건축설계사무소대표), 경석래(종친회고문), 경관호(종친회장), 경석형(한국공사사장), 경응호(해군대령), 경인호(국민당도봉지구당위원장), 경정호(파주경찰서정), 경광호(평통자문위원), 경만호(병원장), 경광현(청주경씨대종손), 경규화(한국주류협회중앙회장), 경규태(삼부토건전무이사), 경광수(구미병원장), 경기동(대한체육회이사), 경동수(대한통운청주지점장), 경관수(단위농협조합장), 경의현(경기도청식산국장), 경시현(고등학교교장), 경호현(강릉전신전화국장), 경재호(공학박사, 미국대학교수), 경재용(동문건설회사 대표이사), 경창선(인천직할시과장), 경덕현(서림목재상사 전무이사), 경두현(대한통운지점장), 경광현(통일주체국민회의대의원), 경문수(치안본부계장), 경돈수(초등학교교장), 경인수(면장), 경규복(평통자문위원), 경광현(국립보건원연구원), 경익현(한일시멘트 전무이사), 경건호(면장), 경기호(향교장의)씨 등이다.(무순, 전 현직 구분 안 됨)
경대승(慶大升,1154-1183)은 청주경씨가 배출한 인물이다. 그는 고려 중기의 무신으로 15세에 음서(蔭敍)로 교위(校尉)에 임명된 뒤 차차 벼슬이 올라 장군이 되었다. 1178년(고려 명종 8) 허 승(許升) 등과 모의하여 집권 무신 정중부와 그의 아들인 정 균과 송유인 등을 죽이고 정권을 장악했다. 그의 집권 동안 도방의 무리라 일컫는 도둑이 횡행하고, 잦은 민란이 발생하는 등 사회가 어지러웠다. 경대승은 집권 5년 여 만에 30세의 젊은 나이에 이인임의 참소로 유배당한 후 청주 고향 땅에서 죽는다.
현대인물은 경규학(경제학박사, 연세대교수), 경규항(이학박사, 세종대교수), 경대수(서울지검검사), 경창헌(주미총영사), 경세호(쌍방울메리야스사장), 경석규(대순진리회총무원장), 경석돈(경남화학사장), 경갑경(초등학교교장), 경석겸(통일주체국민회의대의원), 경석종(향교전교), 경석구(건축설계사무소대표), 경석래(종친회고문), 경관호(종친회장), 경석형(한국공사사장), 경응호(해군대령), 경인호(국민당도봉지구당위원장), 경정호(파주경찰서정), 경광호(평통자문위원), 경만호(병원장), 경광현(청주경씨대종손), 경규화(한국주류협회중앙회장), 경규태(삼부토건전무이사), 경광수(구미병원장), 경기동(대한체육회이사), 경동수(대한통운청주지점장), 경관수(단위농협조합장), 경의현(경기도청식산국장), 경시현(고등학교교장), 경호현(강릉전신전화국장), 경재호(공학박사, 미국대학교수), 경재용(동문건설회사 대표이사), 경창선(인천직할시과장), 경덕현(서림목재상사 전무이사), 경두현(대한통운지점장), 경광현(통일주체국민회의대의원), 경문수(치안본부계장), 경돈수(초등학교교장), 경인수(면장), 경규복(평통자문위원), 경광현(국립보건원연구원), 경익현(한일시멘트 전무이사), 경건호(면장), 경기호(향교장의)씨 등이다.(무순, 전 현직 구분 안 됨)
1930년 당시에는 경기도 연천군 적성면 답곡리, 경기도 여주군 흥천면 양촌리, 경기도 여주군 흥천면 상백리, 경기도 여주군 흥천면 대당리, 충북 괴산군 소수면 소암리, 충북 괴산군 연풍면 유하리 등지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었다.
1980년대에도 이들 지역에 대대로 세거하고 있다.
주요파는 △징군파 △청안공파 △서봉공파 △교리공파 △월송공파 △적성공파 △도사공파 △경력공파 △아산공파 △제학공파 △칠송공파 △신강공파 △처사공파 △세마공파 △평택공파 △봉화공파 △낭성공파 △진주공파 △보성공파 △병사공파 등이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109명이 있다. 문과 14명, 무과 8명, 사마시 50명, 역과 2명, 의과 15명, 주학 20명이다. 인구는 1985년에 2396가구 9926명, 2000년에 3462가구 1만1128명이다. 15년 만에 1천여 가구, 1000여 명이 늘어났다.
1985년 현재는 서울 3141명, 부산 435명, 대구 203명, 인천 364명, 경기 2216명, 강원 762명, 충북 1329명, 충남 584명, 전북 111명, 전남 86명, 경북 111명, 경남 575명, 제주 7명이다.
2000년 현재는 서울 2919명, 부산 476명, 대구 256명, 인천 622명, 광주 12명, 대전 294명, 울산 83명, 경기 3,301명, 강원 694명, 충북 1264명, 충남 399명, 전북 92명, 전남 50명, 경북 170명, 경남 482명, 제주 14명이다. 경기, 서울, 충북지역에 많이 분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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