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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의 고독’ 낳은 마을, 노란 나비가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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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의 고독’ 낳은 마을, 노란 나비가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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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마르케스의 발자취를 찾아서 (1)

천일전쟁 전후 7세대 걸친 대서사시

‘백년의 고독’ 잉태한 곳 아라카타카

노란 나비떼가 ‘마술적 사건’이라지만

나비가 ‘사실’이고 문명은 ‘마술’일지도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어린 시절 실제 살았던 아라카타카의 집. 사진 우석균 교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어린 시절 실제 살았던 아라카타카의 집. 사진 우석균 교수


여름휴가철을 맞아 우석균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 교수의 카리브해 문학기행을 2회에 걸쳐 싣는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마술적 사실주의 작가로 유명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1927~2014)의 <백년의 고독>을 낳은 작은 마을 아라카타카, 작가가 젊은 시절을 보낸 바랑키야 등 중요한 장소에 대한 이야기와 중남미 근대사·문화유산을 함께 살핀다. 우석균 교수는 <라틴아메리카를 찾아서>(공저) <바람의 노래 혁명의 노래> 등의 저서와 <사랑과 다른 악마들>(가르시아 마르케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야만스러운 탐정들>(로베르토 볼라뇨) 등의 역서를 냈으며 <지구적 세계문학>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콜롬비아 카리브 해안지대의 7월은 견디기 힘들었다. 한낮 기온은 섭씨 37도를 넘나들고 습하기까지 하니 말 그대로 찜통더위였다. 이를 무릅쓰고 바랑키야, 아라카타카, 산타마르타, 카르타헤나 등 여러 곳을 둘러보게 된 것은 순전히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1927~2014) 때문이다. 198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마술적 사실주의의 대표적인 작가인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상상력의 원천을 더듬어본 여행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그가 외조부모 슬하에서 유년기를 보낸 집이 있는 아라카타카 여행이 가장 설레었다. 대표작 <백년의 고독>(1967)의 무대인 허구적 공간 마콘도가 배태된 곳이기 때문이다.

<백년의 고독> 속 노란 나비는 마콘도의 수많은 마술적 사건 중 하나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죽었을 때 사람들은 종이로 노란 나비를 접어 조의를 표했다. 그림은 <마르케스: 가보의 마법 같은 삶과 백년 동안의 고독>(오스카르 판토하 지음, 미겔 부스토스·펠리페 카마르고 로하스·타티아나 코르도바 그림, 유아가다 옮김, 2015) 가운데 한 장면.  푸른지식 제공

<백년의 고독> 속 노란 나비는 마콘도의 수많은 마술적 사건 중 하나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죽었을 때 사람들은 종이로 노란 나비를 접어 조의를 표했다. 그림은 <마르케스: 가보의 마법 같은 삶과 백년 동안의 고독>(오스카르 판토하 지음, 미겔 부스토스·펠리페 카마르고 로하스·타티아나 코르도바 그림, 유아가다 옮김, 2015) 가운데 한 장면. 푸른지식 제공


<백년의 고독>이 보수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의 내전이었던 천일전쟁(1899~1902)을 전후하여 부엔디아 가문의 7세대에 걸친 이야기를 다루는 만큼 현재의 아라카타카가 소설 속 마콘도와 동일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도 바나나농장 대신 야자나무농장이 즐비했다. 신식민주의의 상징과도 같았던 유나이티드 프루트 사(社)의 수탈은 이미 과거지사가 된 것이다. 바나나 특수로 한때 흥청망청했다는 아라카타카의 번영도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하기 힘들었다. 2010년 복원되어 문학관이 된 외조부모의 집도 너무 산뜻해서 소설 속의 마술적 분위기와 거리가 멀 수밖에 없었다. 하긴 상상의 공간 마콘도를 현실에서 느낀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소득이 훨씬 더 컸다.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유년기를 보낸 집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 <백년의 고독>의 많은 대목이 확실하게 뇌리에 박혔다. 일부 친척들도 같이 살았다는 점을 참작하면 그리 집이 크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어린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눈에 그 집은 분명 대저택으로 비쳤을 것이다. 긴 복도를 따라 좌우로 방과 기타 용도의 공간이 도열해 있고, 마당의 아름드리나무는 신비로울 정도로 짙은 그늘을 자아내고 있으니 말이다. 소설 속에서 아우렐리아노 대령이 황금물고기를 만들었다 녹였다 하던 세공실이 실제로 존재하고 병자용 방도 있으니 호기심을 잔뜩 느끼며 기웃거렸을 어린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마술과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노란 나비들이 날아다니는 모습이 보였던 것이다.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죽었을 때 사람들은 종이로 노란 나비를 접어 조의를 표했다. 마콘도의 수많은 마술적 사건 중 하나가 한 청년을 항상 따라다니던 노란 나비 떼였던 것을 기억한 것이다. 그런데 노란 나비가 아라카타카에는 흔했던 것이다. 외부 독자에게 마술적 일로 비친 일이 사실은 현실에 기초하고 있었던 셈이다.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유년기를 보낸 작은 마을 아라카타카. <백년의 고독> 마콘도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작가의 집은 현재 가르시아 마르케스 문학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사진 우석균 교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유년기를 보낸 작은 마을 아라카타카. <백년의 고독> 마콘도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작가의 집은 현재 가르시아 마르케스 문학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사진 우석균 교수


<백년의 고독>은 총살형 집행 대원들 앞에 선 아우렐리아노 대령의 회고로 시작된다. 주로 장돌뱅이 집시들이 마콘도에 망원경 등 문명의 이기를 들여오기 시작할 때의 기억들이다. 그중에 얼음이 있었다. 돈을 내고 얼음에 처음 손을 댄 순간 아우렐리아노는 깜짝 놀라며 “펄펄 끓고 있어요”라고 외치고, 그의 아버지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이건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야”라고 선언한다. 즉, 마콘도 주민에게는 노란 나비가 사실이고, 문명이 마술이다. 그래서 문명의 빛에 열광한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가 자석, 천문학, 도로 건설 계획 등에 골몰했을 때 이웃 사람들은 그가 특이한 마법에 걸렸다고 생각했다. 편의상 주술이나 미신이 자아내는 마술을 흑마술, 문명이 자아내는 경이로움을 백마술로 규정한다면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백마술에 홀린 것이다.

카르타헤나에 있는 가르시아 마르케스 집 바로 옆 호텔 벽면. 사진 우석균 교수

카르타헤나에 있는 가르시아 마르케스 집 바로 옆 호텔 벽면. 사진 우석균 교수


세월이 흐르면서 마콘도에 본격적으로 문명의 빛이 전수된다. 철도가 대표적이다. 실제로 아라카타카에는 일찌감치 1908년에 철도가 연결되었다. 그런데 아라카타카 같은 작은 마을이 20세기 초에 이런 수혜를 보게 된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흔히 콜롬비아는 노새 시대에서 항공 시대로 갑자기 도약해 버렸다고 평가한다. 안데스산맥이 국토를 서부, 동부, 카리브 연안 일대로 삼등분하고 있어서 교통 인프라 구축이 용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고타와 제2의 도시 메데인 사이도 1930년대까지 철도로 연결되지 못했을 정도였다. <백년의 고독>에서는 아우렐리아노 대령의 혼외 아들 중 한 사람인 아우렐리아노 트리스테가 마콘도에 정착해서 세운 얼음공장의 현대화를 위해 기차를 끌고 온 것으로 되어 있다. 철도가 연결되자 마콘도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다. 외지인이 넘치고 덕분에 경기가 살아난다. 나아가 유나이티드 프루트 사가 들어와 마콘도를 작은 마을에서 도시로 성장시킨다. 마콘도 주민들은 철도가 연결된 데에 감사하게 된다. 이제 거의 모든 주민이 문명의 이기를 찬양하게 된 것이다.

우석균 서울대학교 라틴아메리카연구소 교수

우석균 서울대학교 라틴아메리카연구소 교수

사실 이 철도는 소설과 달리 바나나 수송을 위해 부설된 것이었다. 항구도시 산타마르타가 종착역이었고, 그다음에는 선박을 이용해 바나나를 수출하였다. 아라카타카가 작은 마을임에도 불구하고 바나나 특수 덕분에 세계와 접속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접속은 끔찍한 결과를 야기했다. <백년의 고독>에는 바나나농장 노동자 학살 이야기가 등장한다. 삼천 명의 노동자를 학살한 뒤 시신을 기차로 몰래 운반해 유기했다는 내용이다. 이 일화는 인근의 시에나가라는 곳에서 1928년 실제로 일어난 사건에 근거하고 있다. 다만 사망자 규모는 수십 명, 혹은 많아야 수백 명이었다. 소설 속에서는 이 사건이 일어난 뒤 4년 11개월 2일 동안 비가 내린다. 또 바나나회사는 철수하고 마콘도의 번영은 하루아침에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백마술에 홀린 대가는 너무나 컸던 것이다. (계속)


글·사진 우석균 서울대학교 라틴아메리카연구소 교수, 그림 푸른지식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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