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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변천사 한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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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변천사 한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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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기록원, 사진 등 공개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은 1883년 3월6일 국기로 제정된 태극기의 변천사를 45건의 동영상·사진·문서·유물 등으로 정리해 17일부터 누리집(www.archives.go.kr)을 통해 공개한다고 16일 밝혔다.

미국인 데니가 소장했던 태극기. 1890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인 데니가 소장했던 태극기. 1890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국가기록원이 정리한 자료를 보면 한국의 국기는 1882년 5월 조미수호통상조약 조인식에서 처음 사용됐지만 정확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1882년 수신사 자격으로 일본으로 가던 박영효가 배 위에서 ‘태극·4괘’ 도안의 기를 만들어 사용했고 고종은 다음해인 1883년 3월 왕명으로 ‘태극·4괘’ 도안의 기를 국기로 제정·공포했다. 하지만 당시 국기 제작 방법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아 태극기는 다양한 형태로 제작됐다.

현재 남아 있는 태극기 중 가장 오래된 것은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1883년 미국 공사 푸트가 조선에 왔을 때 수행했던 주이가 1884년에 입수한 것이다. 국내에 있는 태극기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고종의 외교고문이었던 데니가 소장했던 태극기로 1890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김구 주석이 1941년 미국에 보낸 태극기.

대한민국임시정부 김구 주석이 1941년 미국에 보낸 태극기.


국가기록원은 “태극기는 구한말 이후 독립에 대한 염원과 결의를 보여주는 상징이었다”고 설명했다. 임시정부 김구 주석은 1941년 미국에 있는 한인교포들에게 ‘일본을 타도하고 조국의 독립을 달성하자’는 요지의 글을 태극기에 써서 보내기도 했다.

정부는 태극기의 제작법을 통일하기 위해 1949년 국기시정위원회를 구성해 ‘국기제작법’(문교부 고시 제2호)을 확정했다.

<한대광 기자 chooh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