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속으로] 관심 끄는 은평 한옥마을
![]() |
서울 은평구 북한산자락엔 156채 규모의 은평 한옥마을이 조성 중이다. 전통 한옥마을과 달리 개인이 땅을 분양받아 취향에 따라 한옥을 짓는다. 대부분 개량한옥으로 내부는 아파트와 다르지 않다. [조문규 기자] |
서울의 북서쪽 끝자락인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 여기서 아파트촌인 은평뉴타운을 끼고 북한산을 향해 자동차로 10분 정도 달리다 보면 전통미가 물씬 풍기는 표지판이 보인다. ‘은평 한옥마을’을 알리는 이정표다.
우리나라 5대 명산의 하나인 북한산이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다. 이 마을엔 한옥 20여 채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지금도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어서 망치질 소리가 요란하다. 드라마 촬영을 위한 세트장을 짓는 줄 착각할 정도다. 이미 일곱 가구가 완공된 집에서 살고 있다. 올 연말까지 34가구가 들어선다.
마을을 지나는 사람들이 관광지인 줄 알고 종종 대문을 열어본다고 한다. 그만큼 정겹고, 옛 향기가 마을 전체를 감싸고 있다. 아직은 집보다 빈 땅이 많지만 그래도 제법 전통의 멋이 묻어난다.
2012년 9월 SH공사가 한옥마을 부지 분양을 시작할 때만 해도 이곳은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럴 만도 했다. 2008년 발생한 금융위기 한파로 주택시장이 꽁꽁 얼어 있을 때였다. 자고 일어나면 아파트값이 뚝뚝 떨어지던 시기에 단독주택을, 그것도 한옥만 지을 수 있는 땅이 주인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지지부진하던 계약률이 오르기 시작한 건 2013년 8월 한옥마을 조성 계획이 변경되면서다. 서울시와 SH공사는 각 필지 크기를 330㎡가 넘는 대형에서 231㎡ 이하 중소형 중심으로 줄였다. 덩치가 작아지면서 자금 부담이 줄자 찾는 사람이 늘었다. 지난해 11월 155개 필지가 모두 팔렸다. 저렴한 가격도 큰 역할을 했다. 빈 땅에 집을 지으려면 기반공사(토지 조성)가 필요하다. SH공사는 3.3㎡당 920만원을 들여 조성한 이 부지를 3.3㎡당 평균 730만원에 내놓았다. 서울 은평구 문화관광과 김소희 주무관은 “땅 크기를 줄이고 3.3㎡당 가격을 낮추자 매수를 주저하던 사람들이 계약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주택시장 변화도 한몫 거들었다. 집에 대한 인식이 재테크에서 ‘사는 곳’으로 바뀌면서 쾌적한 주거환경을 찾는 수요가 몰렸다. 대부분 아파트에 싫증을 느낀 이들이다. 은평 한옥마을 입주민 강석목(50)씨는 “아파트에서 20년을 살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답답하고 층간 소음에 신경 쓰기도 지쳐 이곳으로 왔다”고 말했다.
물론 도심 아파트를 벗어나는 일이 쉽지 않다. 직장까지 출퇴근과 자녀 통학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다행히 은평 한옥마을 주변엔 기반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입주민 배윤목(49)씨는 “고등학생인 아들은 은평뉴타운 내 학교로 걸어서 통학하고, 나는 광화문에 있는 직장까지 30분이면 출근할 수 있다”며 “3호선 구파발·연신내역, 은평뉴타운, 연신내 역세권 상업지구가 가까워 생활이 불편하지 않다”고 말했다.
![]() |
은평 한옥마을 한옥체험관 ‘화경당(和敬堂)’의 1층(왼쪽)과 2층 내부 투시도. |
이곳의 한옥은 전통한옥과 좀 다르다. 전통 방식에 신기술을 더한 이른바 퓨전 한옥이다. 둥근 곡선의 기와, 부드러움이 돋보이는 처마, 탁 트인 대청마루 등 한옥의 멋은 그대로지만 실내는 아파트와 다르지 않다. 대개 거실, 방 3개, 주방, 화장실 2개 형태다.
기술 발달로 관리비 부담이 생각만큼 크지 않다. 일반 아파트보다 한 달에 5만~10만원 정도 더 지출하면 된다. 벽 사이에 진흙 대신 고성능 단열재를 넣고 나무와 나무 사이 틈을 없앤 통벽으로 단열효과가 높아진 덕이다. 개량 한옥 전문업체인 하루한옥 박재원 대표는 “밀착력이 우수한 시스템 창호와 전통 창호를 적절히 섞어 짓고, 천장을 높여 지붕을 통해 전달되는 복사열의 영향을 줄였다. 냉난방 효과가 극대화됐다”고 설명했다.
배씨는 “전에 124㎡(이하 전용면적) 아파트에 살았을 때와 대지면적 280㎡에 90㎡ 집 짓고 사는 지금의 관리비는 큰 차이가 없다”고 전했다.
이곳 상가도 한옥이다. 집만 지을 수 있는 단독형(135~410㎡) 141개 필지를 뺀 14개는 상가를 같이 지을 수 있는 근린생활형(195~405㎡)이다. 이미 완공된 첫 근린생활형 한옥의 1층엔 카페가 들어섰다. 북한산에서 산행을 즐긴 등산객이 독특한 외관에 이끌려 삼삼오오 찾는다.
한옥 건축 비용은 만만치 않다. 3.3㎡당 800만~1500만원 선이다. 아파트 건축비는 대개 3.3㎡당 500만~600만원 선이다. 기술 개발로 건축비가 싸졌지만 아직까지 3.3㎡ 평균 1000만원이 필요하다. 땅 165㎡를 사서 84㎡ 크기의 한옥을 지으려면 7억원 이상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비슷한 크기의 인근 아파트보다 1억5000만원 넘게 비싸다. 은평뉴타운 내 84㎡형 아파트(입주 6년차)는 5억~5억4000만원에 매물이 나온다.
그런데도 한옥을 찾는 사람이 꾸준하다. 대개 40~50대다. 아직 실제 거래가 이뤄지진 않았지만 시세는 오름세다. 뉴타운딸기공인(서울 은평구 진관동) 김형구 사장은 “토지 분양가보다 3000만원 정도 웃돈을 내더라도 매입하겠다는 대기수요가 꾸준하지만 매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전했다.
입주민 강씨는 “아파트에 살 때처럼 시세에 연연하지 않는다”며 “서울에서 아침에 이렇게 상쾌한 공기와 그윽한 나무 향을 맡으며 눈을 뜰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주거 만족도는 최고”라고 말했다.
[S Box] 사랑채·툇마루·창살 … 아파트 인테리어도 한옥 바람
아파트의 편리함과 한옥의 전통미가 만나면 어떨까. 요즘 이런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2013년 완공된 전남 목포시 옥암동 우미파렌하이트도 그런 곳이다. 피데스개발은 이 아파트 집 안에 사랑채와 툇마루를 꾸몄다. 현관문을 열면 바로 사랑채로 연결돼 손님이 올 때 가족이 누리는 공간을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 최상층 일부 가구는 한옥 처마를 본뜬 계단식 천장 인테리어를 더해 운치를 살렸다. 분양 당시 계약자 10명 중 9명이 사랑채가 있는 평면을 선택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한옥 바람은 서울 도심 아파트에도 불고 있다. GS건설이 지난해 10월 서울 종로구 교남동에 분양한 경희궁자이 아파트엔 마당과 마루가 있다. 각 동으로 진입하는 공동 현관 앞에 대청마루 역할을 하는 마당형 동 출입구를 만든다. 입주민의 사랑방인 셈이다. 아파트 외관은 한옥의 창살과 돌담을 본뜬 디자인을 적용해 운치를 살린다.
단지 안에 ‘진짜’ 한옥을 들이기도 한다. 2014년 7월 완공한 서울 마포구 용강동 마포 래미안 리버웰 단지 안엔 전통 한옥이 있다. 이전 아파트 부지에 있던 한옥을 없애지 않고 복원했다. 안채·사랑채·문간채를 갖춰 입주민을 위한 커뮤니티와 게스트 하우스로 활용하고 있다.
글=최현주 기자 chj80@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최현주.조문규 기자 chomg@joongang.co.kr
▶SNS에서 만나는 중앙일보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당신이 꼭 알아야 할 7개의 뉴스 [타임7 뉴스레터]
ⓒ 중앙일보: DramaHouse & J Content Hub Co.,Lt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서울 은평구 북한산자락엔 156채 규모의 은평 한옥마을이 조성 중이다. 전통 한옥마을과 달리 개인이 땅을 분양받아 취향에 따라 한옥을 짓는다. 대부분 개량한옥으로 내부는 아파트와 다르지 않다. [조문규 기자]](http://static.news.zumst.com/images/2/2016/01/09/18da7342daeb40baaf9854cd3fc2aec5.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