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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의해, 인간을 위해 우주로 간 원숭이

머니투데이 테크M 박상은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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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의해, 인간을 위해 우주로 간 원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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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다르지만 98% 같은 인간과 원숭이]

600만 년 전 공통 조상에서 분기된 인간과 유인원의 유전자 차이는 약 2%다. 고릴라와 인간의 유전자는 약 2.3% 다르고, 침팬지와는 1.6% 다르다.

역으로 말하면 인간과 침팬지는 DNA의 98.4%를 공유하는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동물이다. 원숭이는 유인원인 침팬지·고릴라·오랑우탄과는 계통 분류상 또 다른 종류다. 사촌관계 정도로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에게 원숭이는 예부터 꽤 친숙하게 여겨졌다. 신라시대 김유신 장군 묘의 십이지신상 속 원숭이, 조선 궁궐 기와지붕의 추녀마루 위에 놓인 잡상의 무리 중 손행자(손오공), 그리고 이와 관련된 서유기 이야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우리 곁에 함께 있다. 이들은 모두 원숭이를 지혜롭고 다재다능한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실제 원숭이의 가장 큰 특징을 뽑자면 대뇌가 발달한 점이다. 몸에 비해 큰 뇌를 가졌고 높은 지적 능력을 보여준다. 주로 나무 위에서 생활하면서 손이 발달했는데, 자유롭게 손을 사용하면서 다른 포식자와 달리 뇌가 발달하는 진화과정을 겪게 됐다.

미국 워싱턴대와 캐나다 캘거리대 연구팀이 작은 체구에 비해 뇌의 크기가 큰 카푸친 원숭이를 관찰한 결과, 곤충 사냥 과정에서 손과 도구를 정교하게 사용하며 뇌의 기능을 발달시켰고, 곤충의 풍부한 단백질과 지방이 뇌 조직을 만드는 재료로 쓰였을 것으로 추정했다.


원숭이, 사람 닮은 실험대상

원숭이는 뛰어난 지능으로 인간에게 좋은 실험 및 연구 대상으로 여겨졌다. 분야도 유전학, 심리학, 의학, 우주산업 등 다양했다.

먼저 심리학에 있어 대표적인 실험은 1958년에 있었던 해리 할로우의 ‘헝겊 엄마, 철사 엄마’ 실험이다. 애초 연구자들은 어미 없는 원숭이가 필사적으로 이불을 끌어안는 것에 착안해 원숭이의 애착관계는 어미 원숭이가 젖을 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할로우는 한쪽은 철사로 만들어져 있지만 젖병을 끼운 ‘젖을 주는 가짜 어미’와 헝겊으로 만든 ‘따뜻하지만 젖이 없는 가짜 어미’를 새끼 곁에 뒀다.

해리 할로우의 ‘헝겊엄마와 철사엄마’ 실험 모습

해리 할로우의 ‘헝겊엄마와 철사엄마’ 실험 모습


예상과 달리 새끼는 우유를 먹을 때를 제외하곤 헝겊 엄마의 곁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를 통해 아기가 엄마를 좋아하는 이유가 접촉 위안 때문임이 밝혀졌고, 이후 사람의 정서, 인지, 사회적 발달 등에 접촉 위안이 중요하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인간을 위한 원숭이의 노고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의학에서도 원숭이의 역할은 상당하다. 유전자 차이가 적은 탓에 임상시험 대상으로 많이 쓰인다.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황열병 백신 외에도 소아마비 백신, 에이즈인 HIV 바이러스 연구, 최근에는 알츠하이머와 노화 억제 연구 등에도 원숭이가 동원되고 있다.

엘론 머스크가 화성 이주 계획을 꿈꿀 수 있게 된 데도 원숭이가 일조했다. 인간이 우주로 나가기 전 원숭이 여러 마리가 먼저 우주선에 몸을 실었다. 1959년 5월 29일, 원숭이 에이블과 베이커는 미항공우주국(NASA)의 주피터 IRBM AM-18을 타고 우주로 가 지구 중력의 38배에 해당하는 힘을 느끼고 돌아왔다.


1961년에는 NASA 최초의 유인우주선 머큐리 발사에 앞서 비행 안전성 확인을 위해 네 살짜리 침팬지 햄이 우주를 다녀왔다. 최근 러시아는 화성 유인탐사에 앞서 원숭이를 보낼 계획을 세우고 현재 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1961년 유인우주선 머큐리 발사에 앞서 우주여행을 한 침팬지 햄

1961년 유인우주선 머큐리 발사에 앞서 우주여행을 한 침팬지 햄


님 침스키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침팬지 중의 하나다. 저명한 언어학자 노암 촘스키가 언어는 인간에게만 있는 능력이라고 주장하자 이에 반박하기 위해 컬럼비아대학의 허버트 테라스 교수가 침팬지를 일반 가정에서 양육하면서 수화를 사용하도록 가르쳤다.

님 침스키라는 이름도 노암 촘스키를 비틀어서 지은 이름이다. 님은 생후 2개월부터 ‘마신다’, ‘주다’, ‘더 많이’ 등 다양한 수화를 배웠고 TV쇼까지 등장하는 유명인사가 됐다.

하지만 무리한 연구 일정으로 스트레스를 받아 폭력성을 드러냈고 입양된 가정의 순탄치 못한 환경과 연구비용 부담이 겹치면서 프로젝트는 종료됐다. 이후 님은 의학생체실험연구소, 동물보호소 등을 전전하다 2000년 심장폐색으로 죽었다. 님 침스키는 인간의 욕심이 부른 비극적 죽음으로 끝을 맺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이 발표한 ‘영장류 보고서’는 지금의 원숭이가 사람처럼 똑똑한 지능을 가진 종으로 진화할 가능성에 대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 정도로 진화하려면 엄청나게 긴 시간과 수많은 ‘우연한 사건’의 조합이 전제돼야 하기 때문이다.

스페이스 오디세이와 혹성탈출

사람을 닮은 원숭이는 영화 등 예술작품에도 꾸준히 등장했다.

1968년, 원숭이가 중요한 역할을 한 명작 영화 두 편이 탄생했다. 고전 SF물인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와 ‘혹성탈출’이다.

영화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한 장면

영화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한 장면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실험적이고 독특한 연출로 스탠리 큐브릭 감독에게 오스카상을 안긴 영화다. 다른 동물을 때려잡던 영화 속 원숭이는 사냥도구로 사용하던 뼈다귀를 공중으로 던진다. 날아간 뼈다귀는 회전하며 같은 형태의 우주선으로 바뀐다. 원시시대에서 현대로, 인류 진화의 역사를 독창적으로 표현한 장면이다.

영화 속 원숭이는 곧 인류의 진화 전 모습이다. 이후 내용이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것을 볼 때 원숭이는 우리가 ‘원시시대 때부터 이만큼이나 진화, 발전했다’고 느끼게 하는 대상이다. 인간이 사용했던 가장 간단한 도구인 뼈다귀가 야만을 나타낸다면 우주선은 인류가 발전시킨 과학기술의 최정점이다.

혹성탈출 1편은 지구를 떠나 우주를 탐사하던 대원들이 다른 행성에 불시착하는 내용이다. 이들은 행성에서 말을 타고 총을 쏘며 원시 인류를 사냥하는 원숭이들을 만난다. 2000년대에 나온 프리퀄 영화는 원숭이가 어떻게 인간을 지배하게 됐는지 과정을 보여주며 팬들의 궁금증을 채워주었다.

혹성탈출 시리즈의 원숭이는 공포를 자아내는 대상이다. 인류가 동물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동물이 인간을 지배할 수 있다는 영화 속 상상은 공포로 다가온다. 특히 1편의 엔딩은 놀라운 반전이 주는 묵직함으로 충격을 더한다.

영화 혹성탈출의 한 장면

영화 혹성탈출의 한 장면


원숭이를 등장시킨 소설은 프란츠 카프카의 1917년 작 ‘원숭이, 빨간 피터’가 대표적이다. 카프카는 소설에서 원숭이를 통해 인간사회를 비판했다. 피터란 이름을 가진 원숭이는 5년 동안 인간과 지내며 인간의 말을 쓰고, 옷을 입고 마치 인간처럼 행동한다.

긴 시간의 노력 끝에 인간처럼 행동하게 된 것은 피터가 원숭이의 본성을 포기하고 얻은 결과다. 중요한 무언가를 잃어가면서 다른 것을 손에 쥐고자 하는 피터는 곳곳에 널려있고, 나 자신일 수도 있다.

이처럼 원숭이는 영화와 문학에서 다양한 역할로 등장한다. 인간과 동일시돼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진화 이전 인류를 나타내거나 인류를 지배하기도 한다. 때로는 철학적이고 심오하기까지 하다. 다른 동물은 감히 넘볼 수 없는 역할이다. 원숭이만큼 인간과 밀접하고도 닮은, 그래서 인간으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동물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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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M 박상은 인턴기자 hasinta@naver.com, 테크M 김학준 인턴기자 newsroom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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