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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디자이너의 값싼 옷 … 명품인 듯, 명품 아닌, 명품 같죠

중앙일보 박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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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디자이너의 값싼 옷 … 명품인 듯, 명품 아닌, 명품 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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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대중패션 브랜드 협업 활발
명품 브랜드 디자이너의 옷을 싼 가격에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패션을 좋아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로망’이다.

창조적인 디자인과 고급스런 소재는 매력적이지만 가격 부담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런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새로운 트렌드가 명품과 스트리트패션 브랜드의 컬래버레이션이다. 세계 최정상 디자이너들이 H&M·유니클로 같은 대중적인 브랜드와 손잡고 의류·가방 등을 한정판으로 선보이고 있다. 올 가을·겨울 시즌 컬래버레이션 컬렉션 공개가 잇따르는 가운데 명품과 스트리트패션이 만나는 세계로 들어가 봤다.

왼쪽, 프랑스 명품 브랜드 발망이 패스트패션 브랜드 H&M과 협업한 컬렉션.(큰 사진) 발망 수석디자이너 올리비에 루스텡오른쪽, 유니클로는 에르메스 수석디자이너 출신인 크리스토프 르메르(작은 사진)와 협업해 캐시미어 스웨터 등을 선보였다.

왼쪽, 프랑스 명품 브랜드 발망이 패스트패션 브랜드 H&M과 협업한 컬렉션.(큰 사진) 발망 수석디자이너 올리비에 루스텡
오른쪽, 유니클로는 에르메스 수석디자이너 출신인 크리스토프 르메르(작은 사진)와 협업해 캐시미어 스웨터 등을 선보였다.


#지난 2일 이른 아침 서울 중구 명동에 있는 유니클로 매장. 문 열기 3시간 전부터 매장에 들어가기 위한 대기 인원이 700명을 넘어섰다. 이날은 프랑스 디자이너 브랜드 르메르와 유니클로가 공동 제작한 스웨터·코트 등 ‘유니클로 앤드 르메르’ 컬래버레이션 컬렉션이 전 세계 동시에 공개된 날이었다. 르메르는 프랑스 명품 브랜드인 에르메스 수석 디자이너를 지낸 크리스토프 르메르가 운영하는 브랜드다.

#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의 한 건물에 마련된 패션쇼장. 톱모델들이 강렬한 컬러와 파워풀하고 글래머러스한 ‘발망’ 스타일의 재킷과 팬츠, 드레스 80여 점을 입고 런웨이를 누볐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 발망이 패스트패션 브랜드 H&M과 컬래버레이션한 ‘발망 H&M’ 컬렉션을 세계 최초로 공개하는 자리였다. 셀레브리티 등 참석자 1000여 명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소식을 퍼 날랐고 인터넷 공간은 발망과 H&M으로 시끌벅적했다.

명품 브랜드와 대중 브랜드 간 컬래버레이션이 활발하다. 특히 올 가을·겨울에는 내로라하는 디자이너와 패션계 거물들이 잇따라 스트리트패션 브랜드와 협업한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다. 유니클로는 르메르와의 컬래버레이션에 이어 30일 파리 패션계 아이콘인 카린 로이펠트 전 보그 파리 편집장과 함께 작업한 컬렉션을 공개한다. ‘발망 H&M’ 컬렉션은 다음 달 5일부터 세계 약 250개 매장과 온라인에서 판매될 예정이다.

명품과 대중의 욕구가 만나다

‘유니클로 앤드 르메르’ 컬렉션은 우아하면서 절제된 ‘에르메스 스타일’의 니트·코트·팬츠 등 55점을 선보였다. 가격대는 니트 스웨터 7만원대, 팬츠 6만원대, 코트 20만원대로, 에르메스 제품 가격에서 ‘0’을 한두 개씩 뺀 수준이다. 이 때문에 인기 상품은 판매 시작 반나절 만에 동나기도 했다. 팬들이 열광하는 지점은 바로 에르메스 스타일의 디자인에 유니클로를 닮은 가격이다.


유니클로가 카린 로이펠 트 전 ‘보그 파리’ 편집장과 협업한 코트(왼쪽)와 르메르 카디건

유니클로가 카린 로이펠 트 전 ‘보그 파리’ 편집장과 협업한 코트(왼쪽)와 르메르 카디건


명품과 대중 브랜드의 조합은 디자이너와 의류회사, 고객 3자의 욕구가 탄생시킨 결과물이다. 고객은 명품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옷을 합리적인 가격에 경험할 수 있고 디자이너는 매출을 늘리고 인지도를 높일 수 있다. 스트리트패션 브랜드들은 세련되고 흥미로운 이미지를 덧입는다. 매장 유입 고객이 늘어나는 건 물론이다.

2008년 H&M과 협업한 꼼데가르송의 레이 가와부코는 “우리 옷을 아직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작업이라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발망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올리비에 루스텡은 H&M과의 컬래버레이션에 대해 “인스타그램을 통해 나를 팔로우하는 사람들이 마침내 발망 디자인을 직접 입어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물론 ‘발망 H&M’의 옷은 발망 브랜드는 아니다.

하지만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팬들이 ‘짝퉁’이 아닌, ‘합법적’으로 발망 스타일 옷을 입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의미가 있다. 2006년 협업한 빅터 앤드 롤프는 “패션의 민주화”라고 정의했다.


기존 발망 고객에게도 메시지를 줄 수 있다. 이마뉴엘 디에모즈 발망 최고경영자(CEO)는 뉴요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협업은 발망 고객들에게 ‘발망은 모두가 원하지만 아무나 가질 수 없는 브랜드’라는 사실을 똑똑히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H&M 관계자는 “지갑의 두께나 나이·성별에 관계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철학이 있다. 누구나 동경하는 세계 최고 디자이너의 제품을 누구나 구매할 수 있는 가격으로

살 수 있다는 점에서 뜨거운 환영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2004년 ‘칼 라거펠트와 H&M’이 원조

2004년 칼 라거펠트 샤넬 수석디자이너와 H&M이 협업한 드레스

2004년 칼 라거펠트 샤넬 수석디자이너와 H&M이 협업한 드레스


명품과 대중 브랜드 컬래버레이션의 시작은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크리스마스를 앞


두고 새로운 컬렉션에 대해 논의 하다가 ‘누구나 원하는 유명한 디자이너가 우리 고객을 위해 디자인을 해준다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첫 파트너로 칼 라거펠트 샤넬 수석 디자이너가 선택됐다. H&M은 단지 가격이 싼 브랜드가 아니라 패션으로도 인정받는 브랜드가 되기를 원했다.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기 위해서 첫 파트너는 수퍼스타급 디자이너여야 했다. 라거펠트는 제안을 듣자마자 바로 동의했다. “디자인은 가격의 문제가 아니다. 바로 스타일이다”라는 말과 함께.

도널드 슈나이더 H&M 컨설턴트는 한 패션 전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프로젝트를 설명했을 때) 라거펠트의 첫 질문은 자신이 받게 될 보수에 관한 게 아니었다. 이전에 누가 이런 시도를 한 적이 있느냐고만 물었다”고 회상했다. 라거펠트는 H&M과의 컬래버레이션을 탄생시키면서 패션업계 지형을 바꿔놨다. “10년 전 파리의 패션 애호가들은 H&M 가방을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디올 옷을 입고 H&M 가방을 들고 고급 호텔에 들어서도 전혀 어색하지 않게 됐다.”(슈나이더 H&M 컨설턴트). 저가와 고가 브랜드의 믹스 앤드 매치 등 그간 금기시됐던 것들에 새롭게 문이 열렸다. 이후 H&M은 스텔라 매카트니(2005년)·로베르토 까발리(2007년)·랑방(2010년)·베르사체(2011년)·이자벨 마랑(2013년) 등 유력 디자이너와의 협업 컬렉션을 해마다 선보이고 있다.

모델·포토그래퍼까지 그대로 활용

컬래버레이션의 핵심은 누구나 원하는 디자이너를 선택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주인공을 깜짝 공개하고, 1년 가까이 작업하면서 티저 형식의 정보 공개로 기대감을 끌어올린다. 또 명품 브랜드의 이미지를 광고와 패션쇼에 그대로 활용한다.

발망 특유의 화려하면서 절도있는 스타일을 구현한 ‘발망ⅩH&M’ 컬렉션

발망 특유의 화려하면서 절도있는 스타일을 구현한 ‘발망ⅩH&M’ 컬렉션


디자이너의 특징적인 스타일을 반영하거나 실제 컬렉션에서 내놓은 디자인을 변형하기도 한다. 명품 브랜드의 모델과 포토그래퍼도 그대로 활용한다. ‘발망 H&M’의 경우도 발망 광고를 찍는 사진가 마리오 소렌티가 촬영을 맡고, 발망의 모델인 지지 하디드, 켄델 제너 등이 기용됐다. 슈나이더는 “발망이 H&M이 되는 게 아니라 H&M이 일시적으로나마 발망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발망 고객이 2만 달러(약 2200만원)를 쓸 때 느끼는 만족감을 H&M 고객들이 200달러(약 22만원)를 쓰면서 느낄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30일 판매를 시작하는 ’유니클로 앤드 카린 로이펠트’ 컬렉션은 그간 유니클로에서는 만나볼 수 없었던, 여성미가 극대화된 실루엣과 슬림 핏을 선보인다. 세련된 오피스룩이나 파티 룩으로도 연출할 수 있을 만큼 고급스러운 의상 40여 개 제품으로 구성돼 있다. 턱시도 스타일의 ‘스모킹 재킷’과 날씬하면서 넉넉한 길이의 ‘채스터필드 코트’ 같이 남성적인 아이템을 여성적으로 해석한 아우터웨어가 흥미롭다. 캠페인 이미지는 세계적인 패션 포토그래퍼인 스티븐 마이젤이 촬영해 예술성을 더했다. 다음 달 5일 판매를 시작하는 ‘발망 H&M’ 컬렉션은 글래머러스한 파리지앵의 일상을 테마로, 여성스러우면서도 파워풀한 원피스, 실크 팬츠, 각진 재킷 등 발망의 시그니처 디자인을 대거 선보인다.

글=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사진=각 브랜드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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