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런던올림픽 앞두고 모습 드러낸 관련 유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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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런던 올림픽에 출전한 사이클 선수인 황산웅(왼쪽)과 권익현이 런던에서 찍은 사진. 이 사진은 고 황산웅 선생의 아들인 황덕수 서울대(생명과학부) 교수가 소장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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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원순 선생이 직접 만들었던 여행 증명서의 일부. 지난달 등록문화재 제 491-1호로 등재됐다. [사진 문화재청] |
대한민국을 런던 올림픽으로 보내준 여행증명서는 고 이원순(1890~1993) 선생의 유품이다. 사실 이 여행증명서는 이원순 선생이 직접 만든 ‘사제(私製) 여권’이었다.
1945년 광복 후 체육계의 가장 큰 관심은 올림픽 출전이었다. 그러나 당시 남한은 정부가 수립되지 않은 신생 독립국 처지였다. 48년 런던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선 국내에 올림픽 기구를 구성해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승인을 얻어야 했다. 46년 7월 구성된 올림픽대책위원회는 당시 IOC 부위원장이던 에버리 브런디지(Avery Brundage)를 만나는 등 외교적 노력 끝에 올림픽 참가를 위한 ‘가(假)승인’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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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런던으로 가는 동안 거쳤던 국가들의 스탬프가 여러 개 찍혀 있는 ‘황산웅 여행증명서’. [사진 황덕수 교수] |
이원순의 노력 덕에 가슴에 커다란 태극마크를 달고 런던 올림픽 사이클에 출전한 선수가 고 황산웅(1924~2012) 선생이었다. 당시 한국 사이클 선수단은 임원 1명(장일홍)에 선수 2명(황산웅, 권익현)으로 구성됐다. 비록 황산웅이 출전한 사이클 종목에선 입상하지 못했으나 복싱에서 한수안, 역도에서 김성집이 동메달을 획득했다.
서울에서 런던까지 18일간의 여정이 그대로 드러난 ‘황산웅 여행증명서’는 런던 올림픽 선수단의 런던 입성 장도를 증명해 주고 있다. 일본에서 시작해 홍콩·인도·이집트 등에 입국하며 찍은 스탬프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런던 올림픽에 참가한 임원 및 선수들의 명단과 예방접종 증명서 등도 첨부돼 당시의 힘든 여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원순 여행증명서’는 지난달 문화재청이 등록문화재로 지정해 보존 처리 작업을 하고 있다. 런던 올림픽 때 황산웅 선생이 입었던 사이클복도 등록문화재 지정을 기다리고 있다.
64년 전 67명(임원 15명, 선수 52명)이었던 선수단 규모는 올해 350여 명으로 6배 가까이 커졌다. 목표도 금메달 10개, 종합순위 10위로 크게 높아졌다. 그 출발점은 1948년 가난한 신생국이라는 힘든 현실 속에서도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도록 이끈 선각자와 그 올림픽에 출전해 나라의 위상을 높인 사람들이었다. 올해 7월 28일(한국시간) 런던 올림픽 개막식 때 한국 선수단이 입을 단복은 1948년 당시 이원순이 입었던 단복을 재현한 것이다.
정종훈 기자
정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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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원순 선생이 직접 만들었던 여행 증명서의 일부. 지난달 등록문화재 제 491-1호로 등재됐다. [사진 문화재청]](http://static.news.zum.com/images/2/2012/05/29/htm_201205291134030103011.jpg)
![한국에서 런던으로 가는 동안 거쳤던 국가들의 스탬프가 여러 개 찍혀 있는 ‘황산웅 여행증명서’. [사진 황덕수 교수]](http://static.news.zum.com/images/2/2012/05/29/htm_20120529113443010301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