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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의 재구성] ‘농약 사이다 사건’ 범인의 ‘네가지’ 그림자

헤럴드경제 서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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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의 재구성] ‘농약 사이다 사건’ 범인의 ‘네가지’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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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서경원 기자]경북 상주시 공성면 금계1리. 조용하고 평화로웠던 이 시골마을이 독극물 사건으로 발칵 뒤집힌 지 벌써 사흘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고의 범행자가 있는지 등에 대한 정확한 사건 경위가 밝혀지지 않고 있어 대부분이 노인인 이곳 주민들은 진실이 밝혀지기만을 바라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있습니다.

사건은 시작은 지난 13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초복이었던 이날 마을 주민 25명 정도가 마을회관에서 잔치를 벌입니다.

웃음과 대화로 왁자지껄하며 흥겨웠던 잔치가 끝날 무렵 장소를 정리하면서 남은 사이다 음료수 병을 회관 냉장고에 넣어 놓게 됩니다.

이 사이다는 마을 이장이 인근 슈퍼에서 사온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할머니 일곱 분이 보통 때처럼 회관에 나오셨습니다.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었고 마침 어제 남은 사이다를 보고 한분을 제외한 여섯분의 할머니가 나눠 마시게 된 것입니다.


색깔이 다른 자양강장제(박카스) 뚜껑으로 닫혀 있었지만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습니다. 마신 후 증상은 곧바로 나타났고 하나둘씩 의식을 잃고 쓰러지고 맙니다.

안타깝게도 끝내 할머니 한 분은 병원에서 숨을 거두셨고, 4명은 아직 중태, 나머지 1명은 의식을 회복해 치료 중에 있습니다.

성분 분석 결과 할머니들이 마신 사이다 안엔 해충 방제에 쓰이는 고독성 살충제가 들어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경찰은 누군가 고의로 이 살충제를 탔을 것으로 보고 조사에 착수하게 됩니다. 하지만 회관에 CCTV가 없어 범행 시기로 추정되는 13일 밤부터 14일 낮 사이에 누가 드나들었는지 파악이 어렵습니다. 탐문해봐도 이때 수상한 외부인을 봤다는 주민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마을 입구엔 CCTV가 있는데 낯선 차량이나 사람은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주민 중 몇명을 소환해 조사도 벌여봤지만 단서가 될 만한 진술은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경찰은 음료수를 마시지 않았던 한 분의 할머니와 마신 후 회복된 할머니의 진술 간에 차이가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애초 사이다를 입에 대지 않았던 할머니는 집에서 마시고 왔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는데, 회복된 할머니는 다소 이와 다른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경찰은 여러가지 정황상 이번 사건을 단순 실수나 사고에 의한 것이 아닌, 치밀하게 계획된 범죄로 보고 있습니다.

일단 회관 냉장고에 음료수를 넣어두면 마실 개연성이 높다는 점을 범인이 알았을 것이란 추측 때문입니다.

이 회관은 수도시설이 없어 물이 귀했기 때문에 이런 사실을 평소 알고 있던 범인이 일부러 냉장고 속 음료수에 독극물을 타 놓았다는 것이죠.

또 사이다 뚜껑도 의심스러운 부분입니다. 혹 피의자가 자신만 알 수 있는 일종의 ‘표식’이 아니었냐는 것입니다.

사이다 병에 특별한 지문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도 이상합니다. 무심코 농약을 섞은 것이었다면 음료수병을 잡았을 때 어떻게든 지문이 남았을 텐데 말입니다.

이 때문에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했던 치밀한 범행이었을 가능성에 힘을 실어줍니다.

여기에 사이다에 들어간 살충제는 왜 하필 아무 맛이나 냄새가 나지 않는 성분이었을까요.

농약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최대한 거부감 없이 마실 수 있도록 의도한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입니다.

gi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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