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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저주3] 딜도 파는 페미니스트 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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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저주3] 딜도 파는 페미니스트 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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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남자가 들어와 허리가 구부정한 채 진열대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잠시 눈치를 보더니 점원이 젊은 여자인 걸 발견하고는 내 몸을 위아래로 쓱 훑어보고는 살짝 미소를 띠었다. 그리고는 나를 ‘아가씨’라고 부르더니 왜 이런 데에서 일하는지 물었다. 또 그 질문인가? 여자가 성인용품점에서 일하지 말란 법 있냐고!

전직 성인용품점 계약직 직원 랭(25)을 만났다. 세상을 저주하는 구체적인 이유를 가진 청년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세 번째 시간. 페미니스트 활동가인 랭은 특유의 전투력으로 남성 중심적인 한국 사회의 면면을 성토했다.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마초 꼰대에 대한 랭의 규탄은 판사 교수 등 상대를 가리지 않고 신랄하다.



-페미니스트가 왜 성인용품점에서 일했어요?

그냥 해 보고 싶었어요. 재미있잖아요. 하다 보니 나중에 여성들을 위한 섹스숍을 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지금 있는 섹스숍은 거의 남자들이 많이 가거든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매장에 들어가면 남성의 시각적인 성욕이 발화한 상품이 많아요. 포르노에 나온 언니들 사진이 막 붙어있고 실리콘으로 된 질 모형들도 많고요. 여자들이 들어갔을 때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죠. 저는 여자들을 위한 섹스숍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여성전용 성인용품점이 없어요?

없어요. 일본이나 유럽 같은 데에는 상당히 있는 편인데 한국은 거의 불모지죠. 여성전용이라고 이름을 내건 건 한두 군데 있는데 여성 물품만 파는 곳은 아예 없어요. 여성이 섹스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그게 성 해방이라고들 이야기하는 수준인데 본격적으로 여성을 위한 섹스 시장이 만들어질 정도의 토양이 아닌 거죠.


-여성전용 성인용품점 창업을 생각했다니, 직접 일하면서 연구를 많이 했겠네요?

일단 제가 원가로 많이 공급을 받았죠. 제가 써 보고 좋은 물건을 팔고 싶거든요. 거의 40만 원 정도 하는 물건들을 절반 정도의 원가에 받아오기도 하고요. 제가 설명을 잘 해주니까 가끔 여자 손님들이 왔을 때 작은 기구 하나 사러 왔다가 거의 10만 원 짜리 딜도를 사가기도 하고 그랬죠. (웃음) 어떤 경로로 물건을 받아 오고 얼마나 남기는지부터 어떤 걸 팔아야 여성이 좋아할지 같은 것을 많이 연구했죠.

-그런데 왜 그만둔 거에요?


사장이 저한테 ‘꼰대질’을 많이 하더라고요. ‘아버지가 뭐 하시길래 이런 데서 딸이 일하도록 두느냐’부터 시작해서 ‘애인은 무슨 일을 하느냐’, ‘여기서 번 돈으로 뭘 하려고 하는 거냐?’ 같은 질문들을 해대는 게 어이없었죠. 저는 거기서 일하면서 재미있고 어떤 게 있는지 궁금하고 그랬는데 사장이 꼬치꼬치 물어보고 그래서 한 달 정도 일하고 그만뒀어요. 제가 잘 설명해서 많이 팔면 되게 뿌듯하고 즐거웠는데.

음대생 랭, 인기 교양강좌 폐강 운동에 뛰어들다...‘마초 꼰대’ 교수와의 투쟁기

-대학 다니면서 ‘마초 꼰대’ 교수를 학내외에 고발하면서 교양강좌를 폐강시킨 전력이 있죠?

<성의 이해> 폐강 운동이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그 강좌가 애초부터 총체적 난국이었어요. 한양대에서 16년 동안 해 오던 교양강좌였는데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문제제기가 안 됐는지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처음부터 폐강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에요. 1학년 때 궁금해서 애들 따라가서 들었을 때는 난감한 수업이라는 생각만 했었죠. 진짜 분노를 참을 수 없었던 건 3학년 말쯤에 개정판으로 나온 그 수업 교재를 우연찮게 직접 보고나서죠. 화가 나서 수업을 청강하게 되었어요.


트위터로 고발한 강좌 내용. 정기적인 업데이트로 트위터러들의 RT와 공분을 이끌어내 공론화에 성공했다.


-<성의 이해> 강좌 내용이나 교재에 문제가 있었나요?

‘성폭력은 남성의 고유한 본능이다’는 문구를 교재에서 봤는데 이게 대체 뭔가 싶었다니까요. 그런데 그런 문제가 있는 내용이나 발언이 한두 개가 아니더라고요. ‘에이즈는 많이 해서 걸리는 병이다’거나 ‘아주 많이 했으면 아주머니고 할 만큼 했으면 할머니다’라는 발언 같은 건 얕은 수준이고요. 진짜 엄청난 발언이 쏟아졌어요.

-학생들이 많이 듣는 강좌였어요?

수강신청기간에 광속의 클릭질을 해야 들을 수 있는 인기 교양 강좌였어요. 그 수업을 들어야지 진정한 남자가 된다면서 남자 선배들이 남자애들 끌고 가서 듣는 그런 수업 분위기였달까. 한 학기에 천 명 정도가 듣는 대형 강좌니까 당연히 여자도 많았죠. 강사가 직접 쓴 교재와 PPT로 하는 수업이었는데 교재를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진짜 어이가 없었어요. 한두 개가 아니니까 그것만 지정해서 강사한테 항의 메일을 보낼 그럴 수준이 아니더라고요.

랭이 개설한 <성의 이해> 반대 카페. 수업에 쓰인 PPT 자료와 교재 발췌 사진, 강사 발언 녹취록 등이 올라와 있다.


-그러면 바로 학교 안팎으로 폐강 공론화에 뛰어든 거에요?

네. 일단 책의 잘못된 부분을 캡쳐해서 트위터랑 카페에 올렸어요. 아까 말한 것 같은 이상한 발언들도 녹음해서 올렸죠. 그렇게 한 학기 동안 모은 것들을 정리해서 여기저기 여성단체에 보냈어요. 그때 성폭력상담소에 계시던 분이 한양대를 졸업하신 분인데 '개'분노를 하시더라고요. 자기가 10년 전에 이 수업을 들었는데 아직도 이 수업이 있느냐고 하시면서요. 그래서 그분이랑 다른 분들한테 이야기하고 <한겨레신문>에 제보했는데 기사가 사회면 머리에 나갔어요. 그리고 바로 모든 포털에 1위로 떴어요. 자극적으로 뜨긴 했지만.

-전투력이 진짜 남다르시네요. 그리고 바로 폐강된 건가요?

아뇨. 진짜 웃기는 게 학기 중인 3월쯤에 38개 여성단체가 모여서 그 수업 폐강시켜야 한다고 성명서를 냈는데 학교에서 미동도 안 하는 거에요. 그러다가 포털 메인 뉴스에도 몇 번 뜨고 1인 시위를 한다고 하니까 학교에서 일이 커진다고 생각했나 봐요. 한양대 나온 김조광수 영화감독이 1인 시위를 시작하기로 계획을 다 짜놨거든요. 그리고 인권위 제소를 하겠다고 총장 비서실과 여기저기에 문제 발언들과 자료들을 간략하게 정리해서 보내니까 폐강하겠다고 하더라고요. 2~3일 만에.

-정신없이 전투사를 듣다 보니 어떤 분인지도 안 물어봤네요. 평소에 어떤 일을 하시나요?

악기 불어요. 오보에 전공인데 지금 4학년이고 휴학 중이에요. 음식점 아르바이트도 하고 여성단체 ‘언니네트워크’에서 글 쓰고 활동하면서 편집팀 회의에도 참석하고 그렇죠. 얼마 전부터는 세종호텔 노조 파업 같은 투쟁 현장 다니면서 노래하고 연주하는 ‘랭이디갸갸’ 그룹 활동을 해요. 일요일에는 교회 가서 연주 아르바이트하고요. 그러면서 목사 설교에 마초 꼰대 같은 내용 있으면 트위터에다가 올리고 그런 거 하죠. (웃음)

-성차별적인 목사 설교를 고발하는 거네요?

네. 듣다 보면 화가 나는 발언들이 있거든요. 주로 가정에 관한 발언들이요. ‘여자가 바로 서야 가정이 선다’거나 ‘(예전에는) 어머니가 따뜻한 밥을 해 주셨는데 지금은 (밥 해주는) 아내한테 잘 해줘야 한다’거나 그런 얘기요. 특히 엄마가 어떻게 해야 하고 엄마가 이래서 필요하고… 그런 식으로 엄마를 신성화해서 얻어지는 억압이나 효과를 생각하면 상당히 거슬리죠. 특히 목사님들이 많이 그러시는 것 같아요. 그런 것 들으면 짜증이 나죠.

-언제부터 그렇게 열혈 페미니스트였나요? 계기가 있나요?

무슨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원래부터 페미니스트였던 것 같아요. ‘모태 페미니스트’랄까. (웃음) 어릴 때부터 클래식 음악을 해오면서 음악계의 여성 억압적인 분위기를 많이 불편하게 생각했던 것도 있었던 것 같고요. 클래식 음악계가 되게 보수적이면서 성차별적 발언이 아무렇지도 않게 오가거든요.

-예중, 예고, 음대를 거쳐온 게 페미니스트가 되는 데 영향을 줬다고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여성스러움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강하거든요. 연주해야 하는데 그렇게 머리가 짧으면 어떻게 머리를 올리느냐고 야단치는 것을 보면서 뭔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여자 연주자에 대해서 고착된 인식이 되게 강하다고 느꼈어요. 머리를 올리고 드레스를 입어야 하며 또 화장은 어떻게 해야 한다는 식으로 정형화한 인식이 존재했죠. 음대에 보통 여자가 많아서 별로 안 그럴 것 같지만 가부장적인 문화 같은 게 강해요.

-페미니스트라서 예민하게 보는 것 아니에요? 음대가 그렇게 가부장적이라는 게 어떤 면에서 그렇죠?

음대 안을 보면 음대 회장을 하거나 어떤 직위를 맡는 것은 다 남자예요. 음대에 굉장히 여자가 많은 데도 말이죠. 남자애들 자신도 ‘학교는 우리가 지킨다’는 말을 할 정도라니까요. 이런 촌스러운 말을 하는 게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져요. 그리고 ‘사실 여자들은 대충 음악을 하다가 시집을 가면 되지만 남자들은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말도 공공연하게 해요. 교수들도요. 가정을 꾸리고 먹고 살아야 한다는 게 이유죠. 여자애들이 음악을 하는 것을 전혀 프로페셔널하게 안 보는 거죠.

전 남친 섹스 망동 고발하던 페미니스트 블로거, ‘유해매체’로 차단되기까지

-연애할 때 상대가 랭의 여성주의 활동이나 생각을 많이 이해해 주는 편인가요?

지금은 잘 이해하는 사람과 만나고 있는데 예전에는 황당한 남자들 많았죠. 모 유명 공대 다니는 애를 만났을 때는 ‘여자랑 북어는 때려야 한다’는 말 같지 않은 말들도 들었어요. 제가 너무 편협하다거나 뭐 그런 반응들도 있었죠. 그런 웃기는 남자를 만났을 때 경험한 것들을 한 번씩 블로그에 올리는데 반응이 괜찮아요. (웃음)

-블로그에 전(前) 남친 망언록을 올리는 거에요?

망언록은 트위터에 한 번씩 올렸고요. 그런 마초적인 전남친과의 섹스 후기를 섹스칼럼으로 연재하려고 했는데 잡지사들에 넣었는데 다 까이고 그래서 칼럼으로 정리해서 블로그에 올렸죠. 이전 섹스경험에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남자, 심지어는 자신과 만난 지 얼마 안 돼서 섹스했다며 "원래 ‘그런 여자’였냐"고 묻는 남자… 그런 웃기는 것들을 올리는 거죠. 자위할 때 어떤 섹스판타지를 가졌는지 물어봐서 열심히 설명해주면 “네가 그렇게 ‘까진’ 여자인 줄은 몰랐다”고 한다든지 그런 이야기들을 써요. 남성 독자들에게 ‘이렇게 하지 마라’ 하고 알려주는 글이랄까. (웃음)

-칼럼에 대한 사람들 반응이 어때요?

재미있어하더라고요. 한 번은 이글루스 메인에 떴는데 누가 신고하는 바람에 제 블로그가 완전히 차단된 적도 있어요. 청소년 유해매체라고 했던가. (웃음) 유해하다고 그래서 잘리고 외국 사이트로 옮겼어요. 구글 블로그를 쓰는데 거기에서는 안 자르더라고요. 예를 들어 딜도 사진을 올려도 우리나라 사이트에서는 그게 안 된대요. 외국 블로그를 쓰고부터는 글이나 사진을 자유롭게 올리죠.

-향후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요?

학교 안에서 제가 만들고 있는 반성폭력 반성차별 모임이 잘 됐으면 좋겠어요. (대학이) <성의 이해> 같은 수업 이외에도 성폭력이나 성차별에 많이 노출된 환경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월담’이라는 이름으로 모임을 만들어서 성차별에 대한 인식이나 성 소수자 문제 같은 젠더 이슈에 대한 관심이 더 확산될 수 있게 세미나나 여러 가지 활동을 기획할 생각이에요. 월담에서 올해 하려고 하는 일이 여성운동 아카이브 행사라고 해서 한양대에서 했던 여성운동의 모든 활동 기록을 모아서 박물관에 전시하려고 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2주에 한 번 정도 관련된 모임을 하고 있어요. <성의 이해> 폐강운동 하면서도 많이 느꼈지만, 교내 여성운동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후지다고 생각하거든요. 월담이 기획하고 있는 아카이브 행사나 관련 모임들이 그런 것들을 변화시키는 데 일조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두 시간여의 인터뷰를 마친 랭은 섹스칼럼에 필요한 비즈니스 제휴를 하러 자리를 떴다. 상대는 성인용품업계 사장님들. 성인용품을 원가로 공급받고 여심을 사로잡을 후기를 구매사이트에 올리는 비즈니스를 구상하고 있다고 했다. 며칠 후 랭이 보내온 기쁨의 카톡!

"후후 다음 주부터 업체 한 곳에서 일주일에 물건 하나씩 협찬받기로 했답니당! 내일 계약서 쓰러 가요>_<"

여성 쾌락의 선봉장이 될 랭의 장래가 밝음을 느낄 수 있는 문자. 랭을 통해 눈이 번쩍 뜨인 저주무당의 여가 생활에도 혁명적인 정보공급이 이뤄질 것이라는 생각이 물씬. 랭의 계약을 축하한다. ‘여성들을 위한 섹스숍’을 열기 위한 랭의 성인용품업계 탐방은 계속된다. 랭이 꿈꾸는 곳은 ‘감수성이 있는 여성전용 가게, 주체적인 섹스와 자위에 대한 세미나도 하는 성인용품숍’. 한국 여성의 주체적 쾌락 찾기에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기대된다.



마무리 전 업데이트. 계약을 성사시킨 랭이 해당 성인용품샵 사장님의 제안으로 '여성 전용 성인용품샵DAY'를 세 달 동안 매주 1회 진행할 것이라는 희소식. 강남의 한 성인용품점에서 일요일마다 여성들을 위한 성인용품샵을 꾸밀 랭은 한 달에 한 번 관련 세미나를 함께 진행할 계획이다. 여성섹스 해방에 어떤 의미를 가져올 지 유정보살도 한 번 들를 생각.

저주무당 유정보살 (상담문의 sunmudang444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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