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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노담화 검증 보고서’ 파문]‘위안부 문제’ 덧내는 아베… 한·일관계 ‘치명적 악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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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노담화 검증 보고서’ 파문]‘위안부 문제’ 덧내는 아베… 한·일관계 ‘치명적 악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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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화 문구 ‘한·일 협의’에 방점
‘진실 아닌 타협’ 으로 뭉개기
‘담화 부정’ 일 보수 힘 받을 듯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고노(河野)담화 ‘무력화’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 고노담화 검증팀이 내놓은 보고서를 통해 담화가 객관적 근거 없이 만들어졌고, 정치적 타협의 결과물이란 점을 부각시킴으로써 공정성에 치명적인 훼손을 입혔다.

담화 작성과정의 검증을 명분으로 내걸었지만 협의 내용은 물론 양국 대통령에게도 보고됐다는 사실까지 공개한 점은 가뜩이나 악화된 한·일 외교를 회복 불능 상태로 몰아넣을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검증팀이 20일 일본 국회에 제출한 보고서는 담화발표 전날인 1993년 8월3일 일본 외무성, 주일한국대사관, 주한일본대사관과 한국 외무부 사이에 집중적으로 문안조정이 이루어졌다고 밝혔다. 이 과정은 당시 한국의 김영삼 대통령과 일본의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총리에게까지 보고됐다고 했다.

보고서는 또 담화발표 전날 주일한국대사관으로부터 ‘본국의 훈령에 근거해 김영삼 대통령은 일본 측의 안을 평가하며, 한국 정부로서는 그 문안으로 충분하다’는 취지의 연락이 있었다면서, “이것으로 고노담화의 문구에 대한 최종적인 의견 일치를 봤다”고 적었다. 또 협의 과정을 시간 순서로 상세하게 언급하는 등 담화가 정치적 타협에 의해 탄생했다는 부정적 이미지를 강하게 부각시켰다. 담화의 신뢰성과 객관성을 스스로 무너뜨린 것이다.

보고서는 위안부 모집 주체에 대한 담화 문안의 구체적인 표현과 관련, ‘군의 의향(意向)을 받은 업자’로 명기하자는 일본 측과 ‘군의 지시를 받은 업자’로 표기하자는 한국 측이 조정에 나서 ‘군의 요망(要望)을 받은 업자’라고 표기하게 됐다고도 밝혔다.

아베 정권은 그동안 ‘담화를 수정할 생각이 없다’는 뜻을 밝히면서도 검증을 계속해왔다. 이는 고노담화를 사실상 ‘빈껍데기’로 만들겠다는 의도를 갖고 부린 ‘꼼수’라는 것이 외교가의 분석이다.


아베 정권이 당장 담화 내용을 부정하거나 새로운 담화를 발표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이날 기자회견에서 “담화를 승계한다고 하는 정부의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이번 검증 결과는 두고두고 불씨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일본의 보수 우익세력에 담화 폐기를 요구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 셈이 됐기 때문이다. 그동안 담화내용을 지속적으로 부정해온 일본 보수세력들이 이번 결과를 들이밀며 ‘고노담화는 협상의 산물일 뿐 진실이 아니다’라는 식의 주장을 제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럴 경우 ‘고노담화를 승계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 일본 정부 안에서도 담화를 수정하거나 새로운 담화를 발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도쿄대 명예교수는 “한·일 모두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진상을 규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담화를 발표하기 위해서는 협의가 필요했다”며 “이런 과정에서 이루어진 협의는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 | 윤희일 특파원 yhi@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