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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슨의 직류, 100년 만에 전기 판도 뒤집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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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슨의 직류, 100년 만에 전기 판도 뒤집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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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점 개선하고 영역 넓혀가는 직류
토머스 에디슨

토머스 에디슨

테슬라의 교류 승리
더 싸고 편리한 송전 가능
20세기 산업화 주도

스마트 시대는 직류
스마트기기·지하철 전기
직류로 변환해 사용… 과학자들 관심 고조도

안전·효율이냐 비용이냐
직류 송전 기술 발달
中싼샤댐도 수천㎞ 공급
전압·전류 변하는 교류
인체에 더 해롭지만 아직 비용면에서 유리


1900년 4월 10일은 우리나라에서 전기가 민간에 처음 보급된 날이다. 이날 서울 종로거리를 밝히기 시작한 뒤 이후 약 50년 동안 우리 산업화를 이끌어온 건 교류 전기다. 전기 보급이 우리보다 50년 이상 앞선 서양도 마찬가지다. 20세기 '전류전쟁'에서 교류 사용을 주장했던 미국의 전기공학자 니콜라 테슬라가 직류를 고집했던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을 이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원한 승자는 없다고 했던가. 이제 과학자들은 테슬라의 시대가 저물고 에디슨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내다본다. 단 언제일 지는 확신할 수 없다. 비용과 안전, 효율 중 어느 것 하나 쉽게 포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 유럽 등 대부분의 나라는 전기를 교류(AC) 형태로 생산, 보급하고 있다. 화력이나 수력, 원자력 등 터빈을 돌려 전기를 만드는 전통적 발전 방식으로는 처음부터 교류 전기가 나온다. 가정이나 사무실의 콘센트를 통해 들어오는 전기도 그래서 교류다.

전기는 교류 아니면 직류(DC)다. 교류는 시간에 따라 크기와 방향이 주기적으로 변하지만, 직류는 일정하다. 시간(가로축)에 따른 전류와 전압 값(세로축)을 그래프로 그려보면 교류는 일정한 너비와 폭이 반복되는 파동 모양이 되는데 반해 직류는 평평한 일직선으로 나타난다. 이 같은 물리적 특성 때문에 교류와 직류 전기는 전송할 때 차이가 생긴다.

발전소에서 전선을 통해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 전기를 보낼 때 전선의 저항 때문에 전기의 일부가 손실된다. 전선이 뜨거워지는 것은 전기가 열 형태로 손실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잃어버리는 양까지 감안해 송전하려면 전압을 높여야 한다. 교류는 전압을 올리기가 쉽다. 변압기 안에 들어 있는 코일만 바꿔주면 된다. 하지만 직류는 전압을 올릴 때 크고 비싼 변환장치가 필요하고 관련 기술도 복잡하다.

에디슨은 사형 집행용 전기 의자에 교류를 쓰게 하는 등 교류의 이미지를 깎아 내리면서까지 직류를 보급하려 했지만 넓은 지역에 더 싸고 편리하게 전기를 공급할 수 있다는 교류의 장점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20세기 이후 대부분의 나라에서 테슬라가 제안한 교류 시스템이 표준 송전 방식으로 자리잡았다.


그런데 100년 남짓 지난 요즘 컴퓨터와 스마트폰 같은 전자기기가 보편화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이들 전자기기의 메모리와 반도체 같은 내부 회로는 대개 직류로 작동한다. 때문에 가정이나 사무실에서 콘센트에 전자기기를 연결하면 콘센트를 통해 들어온 교류 전기를 전자기기가 내부에서 직류로 바꾼다. 이뿐 아니다. 지하철을 움직이는 전기 역시 직류로 변환해 사용된다. 지하철이 출발할 때 모터가 순간적으로 힘을 확 내야 하는데, 이때 교류 방식의 모터보다 직류 방식이 더 유리하다.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리는 인터넷 데이터 센터를 직류 시스템으로 바꾸면 에너지 사용 효율과 공간 이용률, 통신 신뢰성 등이 향상될 수 있다는 보고도 있다.

장거리 송전의 결정적 단점이었던 직류의 전압 조절 기술도 시간이 지나면서 크게 발전했다. 첨단 반도체가 들어 있는 변환장치를 이용하면 고전압 직류 전기도 얼마든 송전할 수 있다. 실제로 현재 육지에서 생산된 교류 전기를 제주도로 보낼 때는 직류로 바꾼 다음 해저 케이블을 통해 전송하는데 제주도에 도착한 직류 전기는 다시 교류로 변환돼 도내에 보급된다. 박경엽 한국전기연구원 선임연구본부장은 "지금의 기술로 바다 밑에선 거리가 40~50㎞, 육지에선 수천㎞ 이상이면 교류보다 직류 송전이 (효율이나 비용 면에서) 유리하다고 알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좋은 예가 바로 중국 싼샤댐이다. 중국 전력당국은 이곳에서 생산한 전기를 초고압 직류로 만들어 수천㎞ 떨어진 지역에 공급하고 있다.

과학자들이 직류로 눈을 돌리는 또 다른 이유는 인체에 미치는 영향 때문이다. 박 본부장은 "전압과 전류가 수시로 변하는 교류가 그렇지 않은 직류보다 인체에 더 해롭다는 것은 이미 학계에서 증명된 사실"이라고 말했다.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신재생에너지 발전이 전통적인 발전 방식과 달리 처음부터 직류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는 점도 최근 직류 송전 방식에 다시 관심이 쏠리는 중요한 이유다.

이런 여러 이유들로 과학자들은 가정이나 사무실에서 곧바로 직류 전기를 받아 쓰는 게 장기적으로 보면 교류 시스템보다 전력 손실이 줄어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안전성이나 효율성에서 결국 에디슨이 꿈꾸던 직류 시스템이 단계적으로 현실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일부 전문가는 2025년쯤이면 세계적으로 전체 전력의 32% 정도가 직류로 보급될 거라고 예측한다.

그러나 100년 넘게 유지돼 온 교류 시스템을 하루 아침에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수천 ㎞ 정도로 먼 거리가 아니면 비용 면에서 아직은 교류 송전을 유지하는 게 유리하다는 견해가 만만치 않다. 또 같은 전자기기라도 냉장고나 세탁기처럼 모터로 작동하는 가전제품은 여전히 교류 전기를 써야 하는 경우가 많다. 박 본부장은 "당장 시급한 문제는 아니지만 교체나 유지 비용, 인체와 환경에 미칠 영향, 전력 손실 정도와 효율성 등을 따져 직류 송전이 더 유리한 부분이 있는지를 체계적으로 연구해볼 만한 시점"이라고 제안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니콜라 테슬라

니콜라 테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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