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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렌터카 사업 잇따라 확장 왜?…중기 적합업종 되기 전에 ‘빨리빨리’

매경이코노미 박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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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렌터카 사업 잇따라 확장 왜?…중기 적합업종 되기 전에 ‘빨리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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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터카 시장 선점을 위한 대기업들 간 기싸움이 치열하다. 한 고객이 AJ렌터카를 찾아 상담을 받고 있는 모습. 이 사진은 기사 방향과 관계 없음. <매경DB>

렌터카 시장 선점을 위한 대기업들 간 기싸움이 치열하다. 한 고객이 AJ렌터카를 찾아 상담을 받고 있는 모습. 이 사진은 기사 방향과 관계 없음. <매경DB>



현대자동차 법인판촉팀 직원들은 요즘 부쩍 KB캐피탈, JB우리캐피탈 등 금융회사를 자주 방문한다. 쉐보레, 르노삼성은 물론 수입차 업체들도 사정은 별반 다를 바 없다. 각 업체들이 렌터카용 차량을 대량 구매하려는 움직임이 어느 때보다 거세기 때문이란 후문이다.

렌터카 시장은 업계 1위 KT렌탈을 비롯, AJ렌터카, 현대캐피탈, SK네트웍스, 동부익스프레스, 레드캡투어, 삼성카드, 아마존카, 오릭스캐피탈코리아 등 대기업 계열만 십여 곳이 이미 진출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신규 진출 혹은 진출을 검토하는 곳도 부지기수다. JB우리캐피탈과 KB캐피탈이 지난해 이 시장에 뛰어든 데 이어 메리츠캐피탈, 아주캐피탈은 상반기 중에 영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지난해 4월에 사업을 시작한 KB캐피탈은 연말까지 600대를 채우더니 올 1분기에만 또 400여대 가까이 늘리며 급속도로 사업을 확장하는 중이다. 잠시 사업을 접었던 하나캐피탈은 올해 1월부터 영업을 재개하고 보유대수를 본격적으로 늘리겠다며 나섰다.

최근엔 신한카드가 미래사업팀 주도로 렌터카 사업에 뛰어들겠다고 나서 업계에서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카드업계에선 이미 삼성카드가 약 1만대가량 법인 렌터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 이 사이를 비집고 신한카드, 메리츠캐피탈 같은 여신전문금융회사들이 들어온다는 건 그만큼 이 시장이 ‘돈이 된다’는 걸 방증한다.

전국렌터카사업조합연합회 자료에 따르면 국내 렌터카 시장은 2000년만 해도 5만6000대, 약 5000억원대 규모였다. 2010년 처음으로 2조원 시장(25만5000대)을 돌파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3조2000억원(37만2000대)으로 급증했다. 최근 3년간 연평균 13.6% 성장한 꼴이다. 업계에서는 올해 3조7000억원(40만대 시장), 내년에는 4조2000억원대(48만대)로 커질 것이라 예상한다.


이지용 신한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한국도 선진국처럼 자동차 소비욕구가 ‘구매’에서 ‘이용’으로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 자동차 구매패턴이 렌트, 리스 등 다양하게 바뀌고 있는 것이다”라고 진단한 뒤 “국내 시장은 9개사가 경쟁했던 과거와 달리 미국처럼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상위 3사가 전체 등록대수의 47.3%를 차지하는 과점 시장으로 재편돼 나가는 분위기다. 이 같은 상황에서 후발업체들이 저마다 점유율을 빼앗기지 않으려다 보니 치열한 이전투구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며 현장 분위기를 귀띔한다.


진출 문턱이 비교적 낮다는 점도 신규 사업자들이 우후죽순 늘어나는 배경이다.

렌터카 사업은 등록대수 50대, 보유차고지만 갖추면 누구든지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상 대여 사업으로 담당기관인 국토해양부에 신고하면 된다. 유사한 사업 형태인 오토리스가 자본금 200억원에 금융감독원 인가를 받아야 하는 것에 비하면 한결 간편한 절차다.

잇따른 대기업 계열 회사들의 진출에 죽어나는 곳은 중소업체들이다. 전국 렌터카 사업자 중 500대 미만 중소 규모 영세 사업자 비율은 95%에 달하지만 전체 점유율은 30%대에 불과한 게 현실. 자본력이나 마케팅 능력에서 열세인 이들은 최근 조직적으로 움직이면서 대기업 추가 진출이나 확장을 경계하는 눈치다.


전국렌터카사업조합연합회는 지난해 생존 위기를 호소하며 동반성장위원회에 렌터카를 중기 적합업종으로 지정해달라고 요청했다. 동반성장위는 올해 3월 기자회견을 열고 자동차 임대업(렌터카) 지정을 예고했다.

동반성장위 관계자는 “현재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6차 회의를 통해 지정 여부를 조율하고 있다. 올해 하반기면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 렌터카 업체 A사장은 “업계에서는 대기업들이 신규로 진출하거나 혹은 종전 물량을 늘리려 난리인 이유 중 하나가 7월경 중기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 더 이상 추가 증차나 신규 진출이 어렵기 때문이란 소문이 파다하다”고 얘기한다. “렌터카 담당자들이 7월 전까지 최대한 물량을 늘려야 한다며 수시로 드나든다”는 한 수입차 업계 관계자 말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는 내용이다.


중기 적합업종 지정 관련 전국렌터카사업조합연합회가 무조건 대기업 진출을 반대하는 건 아니다. 렌터카 업계에는 장기대차, 단기대차, 보험대차 등 여러 분야가 있는데 중소업체 매출 비중이 절대적인 보험대차 사업에서만이라도 중기 적합업종으로 지정해달라는 요청이다.

동반위 “대기업 독과점 경계”

보험대차란 차량 사고가 났을 때 피해자가 수리기간 동안 보험사를 통해 렌터카 차량을 이용하는 서비스다. 이 시장은 손해보험사의 렌터카 요금 지급 현황을 통해 시장 규모를 추산할 수 있다. 2004년 기준 사고 피해로 인한 렌터카 요금 지급 건수는 29만4000건(687억원)이었지만 2012년엔 77만4000건(3521억원)으로 163% 증가했다. 2012년 렌터카 전체 시장을 약 3조원으로 봤을 때 10% 내외가 보험대차 시장이란 말이다. 이 시장의 대부분을 중소 업체들이 차지했는데 2009년부터 대기업들이 우후죽순 치고 들어오면서 중소 업체들의 반발이 거세진 모양새다.

대기업 계열 렌터카들은 자신들의 보험대차 시장 진출이 시장 투명성을 제고한다고 주장한다.

“보험회사가 렌트비를 ‘통상의 요금’을 기준으로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통상의 요금’을 그동안 중소 렌터카 회사가 최고가로 책정, 보험사에 청구하다 보니 보험사와 법정까지 가는 등 잦은 마찰이 생겼다. 이건 금융당국도 수시로 지적하는 사항이다. 이럴 경우 보험 가입자의 보험료가 할증되고 전체 가입자의 보험료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 계열 회사들은 대법원 판례를 준수, 렌터카 업체의 회원 대여요금을 표준 대여요금으로 설정해 혼탁한 시장에 자정작용 역할을 하는 순기능을 하고 있다. 또 국내 대기업들의 진출을 막는다고 하면 당장 해외 렌터카 강자들이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영업할 텐데 이를 방지할 대책이 없다는 것도 문제”라는 항변이다.


이와 관련 또 다른 중소 렌터카 업체 사장 B씨는 “금융당국이 제도 악용하는 사례가 많아지자 규정을 개선하기로 했다. 잘못된 건 법으로 고치면 되는 것이지 일부 중소 업체의 잘못 때문에 생존권 자체를 위협하는 일을 대기업들이 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등 양측 주장은 평행선을 달린다.

“대기업들이 ‘규모의 경제’를 내세우며 결국 소비자에겐 이득 아니냐는 논리를 펼치는데 장기적으로 차등화 즉 체급을 구분하지 않고 무한경쟁을 시키면 종국에는 독과점이 발생해 소비자 복리가 훼손될 수 있다. 렌터카 사업은 근본적인 혁신이 필요한 사업이 아닌 만큼, 독과점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서둘러 동반위가 현 시장점유율 수준으로 대기업 진출을 묶을 수 있도록 결단을 내려야 한다.”

일련의 논란에 대한 김문겸 숭실대 교수의 관전평은 의미심장하다.

[박수호 기자 suhoz@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752호(04.09~04.1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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