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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학→취업' 대신 '취업→진학'이 뜬다

이데일리 유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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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학→취업' 대신 '취업→진학'이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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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일·학습 병행 근로자 지원 확대
"고졸 출신에 대한 차별과 편견 없애야"
[이데일리 유재희 기자] . 2년 전 서울 소재 중상위권 대학을 졸업한 한명숙(27·여)씨. 취업 삼수생인 그는 대학 2학년 때부터 학점·어학 점수 관리는 물론 국내외 봉사활동, 기업 인턴십 참여 등 취업 준비에만 집중했다. 4학년 때는 졸업을 미루면서까지 해외 어학연수를 다녀오기도 했다. 그러나 졸업과 동시에 그에게는 ‘청년 백수’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백수 기간이 길어질수록 딸자식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으신 부모님을 뵐 면목이 없다.

. 특성화 고등학교 졸업 후 IT 관련 중견기업에 근무 중인 차희정(27·여)씨. 그는 벌써 직장 8년 차다. 직장 생활 3년 후 산업체 특별전형으로 입학한 야간 대학도 지난해 무사히 졸업했다. 주경야독의 생활이 쉽지는 않았지만, 업무 관련 전공을 선택했던 만큼 학업이 업무에 많은 도움이 됐다. 또래 친구들이 대학 등록금 때문에 부모님께 손을 벌리거나, 수천만원씩 학자금 대출을 받는 것을 보면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는 생각이 든다.

학력·스펙 중심 사회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가속화되면서 고졸 취업이 고용시장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청년 고용률이 39.7%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고, 우리나라 20~24세 고용률(2012년 기준 43.2%)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55.2%)에도 크게 못 미치는 이유 중 하나가 과도할 정도로 높은 대학 진학률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대졸자가 양산되면서 취업 ‘미스매치’가 발생하고 있다는 판단이다. 최근 정부는 이 같은 문제 해결을 위해 ‘선취업·후진학’ 정책을 꺼내 들었다.

◇일하면서 공부하는 ‘선취업·후진학’

지난해 특성화고(전문계고)를 졸업한 학생들의 취업률은 35.4%로 2004년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교육업체 이투스청솔이 최근 집계한 ‘2013 전문계고 진학률 및 취업률 분석’ 자료를 보면 특성화고 졸업생들의 대학 진학률은 2000년 42%에서 2009년 73.5%까지 치솟았다가 2010년부터 하락 반전, 지난해 47.4%까지 떨어졌다. 반면 2009년 16.7%까지 떨어졌던 취업률은 정부 지원에 힘입어 지난해 35.4%로 두 배 가까이 높아졌다.

이는 특성화고 졸업생에 대한 정부의 취업 지원이나 기업체의 고졸 직원 채용 확대 등에 힘입어 ‘선취업’ 분위기가 확산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는 선취업·후진학 제도를 더욱 활성화하기 위해 일과 학습을 병행하는 근로자에게 학비를 지원하거나 소득공제 혜택을 주는 방안, 재직자 특별전형 규모를 확대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특히 산업 현장에서 실무 훈련을 받는 동시에 학교 등 외부 교육훈련기관을 통해 이론 학습을 받을 수 있는 ‘일·학습 병행제’ 참여 기업을 오는 2017년까지 1만개로 확대할 계획이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따르면 특성화고 졸업자의 기대생애소득은 7억443만원으로, 상위 10개 대학(8억1574만원)을 제외한 일반대학 졸업자(6억1372만원)와 전문대학 졸업자(5억9255만원)보다 앞섰다. 기대생애소득은 23~50세까지의 소득 흐름에서 대학교육의 기회비용을 공제한 값이다.

특성화고 졸업자의 기대생애소득이 높은 것은 최근 많은 기업이 학력보다는 숙련도에 대한 보상을 중요시하면서 고졸과 대졸 취업자 간 임금 격차가 줄고 있는데다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취업해 벌어들이는 소득이 영향을 준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김상호 박사는 “고졸 취업은 확률적으로 상당히 유리한 진로 선택이 될 것”이라며 “청년들이 대출까지 받아가며 대학에 다니는 실정이지만, 일류대학 졸업장이 안정된 직장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고 지적했다.

◇ “승진·임금체계 따로”… 사회적 차별이 걸림돌

고졸 채용 문화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키기 위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우리 사회에 여전히 존재하는 학력 중시 문화와 고졸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다.

취업포털 ‘고졸공채’가 대학 진학을 하지 않고 일자리를 찾는 고등학생 28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95.1%(271명)가 ‘고졸 학력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있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능력과 무관하게 고졸과 대졸 직원의 임금 및 승진 체계를 다르게 운영하는 등 고졸 직원에 대한 차별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고졸사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경력직원의 조기 퇴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기업에도 손해라는 지적이 많다.

유기홍 민주당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받은 ‘특성화고 졸업자 취업 유지 현황’ 자료를 보면 작년 1월 특성화고 졸업생 6041명 중 3154명(52.2%)이 취업했으며, 7개월 후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취업 유지자는 1651명(52.3%)에 불과했다.

김향아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원은 “고졸 채용 문화가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처우 개선과 대졸자와의 차별 금지 등 취업의 질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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