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아시아투데이 언론사 이미지

[인터뷰]표창원 박사, '잠긴 문' 앞 경찰의 '두 모습'

아시아투데이 정필재 기자
원문보기

[인터뷰]표창원 박사, '잠긴 문' 앞 경찰의 '두 모습'

서울맑음 / -3.9 °


*국민 신뢰 없이 警 수사권 독립·공권력 강화 안돼…정치? "세상일 몰라"

아시아투데이 정필재 기자 = 대선 열기가 달아오르던 2012년 12월. 국정원 직원이 특정 후보를 비판하는 댓글을 달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경찰이 즉각 수사에 나섰고 국민들의 시선도 모아졌다. 수사당국은 논란의 직원 오피스텔 앞까지 찾아갔지만 잠긴 문 앞에서 발만 굴렀다.

이 광경을 본 한 경찰 관계자는 인터넷에 글을 올렸다.

“경찰은 결단력 있게 즉각적으로 진입, 수사에 임해 결과를 공개해야 한다. 보수주의의 핵심이며 근간이며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인 ‘법질서’를 훼손해선 안된다.”

경찰대 교수였던 이 공직자의 트윗에 인터넷은 술렁였다. 경찰이 정치색을 드러냈다는 비판부터 경찰로서 옳은 말을 했다는 의견이 충돌했다.

트윗의 주인공인 표창원 박사(당시 경찰대 교수)는 이후 개인적인 발언이 ‘경찰대 교수의 입을 통해 경찰의 뜻을 반영한 것으로 비춰져 학생들과 졸업생들, 또 경찰들에게 영향을 줄 것’이라는 걱정 끝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가 제출한 사직서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가 제출한 사직서


국내 최초로 영국에서 경찰학 박사학위를 받은 경찰, 국내 최초의 프로파일러, 경찰대 교수 등 다양한 타이틀을 가진 인물은 그렇게 경찰 조직을 떠났다.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하며 살고 싶다’며 경찰을 떠난 표 박사를 11일 서울의 한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벌써 1년이 넘었네요. 오히려 홀가분합니다. 정신없이 바쁘다가도 때로는 여유가 넘치죠. 집에 들어와서 바로 쓰려져 잘 때도 있고 잠이 안와 뒤척이는 순간도 많습니다. 그래도 만족해요. 마음껏 하고 싶은 이야기도 할 수 있으니까요.”

사직에 대한 후회는 없다고 자신하는 표 박사였지만 ‘경찰’이야기를 시작하자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경찰이 국민의 신뢰를 잃고 있다”며 한숨 쉬었다.


“경찰이 불신 받던 시절이 있었죠. ‘정권의 하수’, ‘권력의 시녀’로 불렸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경찰들의 노력으로 국민의 신뢰를 쌓아갔죠. 하지만 그 마저도 무너진 상황입니다.”

표 박사는 정권과 전혀 관계가 없어야 할 경찰이 눈치를 보고 있다는 사실에 혀끝을 찼다.

“국정원 댓글사건과 철도파업을 보면 경찰이 정권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이 명백히 드러납니다. 정권이 불편해 하는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에서 경찰은 잠긴 문을 열고 들어가지 못했죠. 반면 정권이 해결하고 싶어 하던 철도파업에서 경찰은 주동자를 체포하기 위해 잠긴 문을 부수고 들어갔습니다.”


표 박사는 조현오 전 경찰청장의 이야기를 예로 들며 비판을 이어갔다.

“조 전 청장을 봐도 그렇죠. 용산에서 철거민과 경찰이 죽었을 때,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사자 명예훼손 발언을 했을 때, 또 천안함 유족을 향해 소·돼지처럼 울부짖었다는 표현을 했을 때 책임지라는 여론이 끓었어도 머리를 세웠던 사람입니다. 다 정권을 위해 했던 일이기에 여론이 나빠져도 버틸 수 있었죠. 하지만 수원에서 오원춘 사건이 발생했을 때 조 청장은 사직합니다. 국민들이 정부에 분노했기 때문에 정부에서도 어쩔수 없이 책임을 문 꼴이죠.”

목이 탄 듯 음료를 벌컥 들이킨 표 박사는 말을 이어갔다.

“경찰이 왜 눈치를 봅니까. 왜 공정하지 못할까요. 박지성, 차범근 보고 골을 넣지 말라고 하는 꼴입니다. 일본에게 경제적 도움을 받았다고 한일전에서 져주라는 것이죠. 국민의 신뢰를 갖고 공정하게 수사해야 할 경찰에게, 또 이를 사명으로 알고 현장에서 뛰는 일선 경찰들에게 미안한 일이죠.”

경찰 승진 구조에 대한 문제점도 지적했다.

“누가 더 진급을 빨리 할까요? 국민의 신뢰를 얻은 경찰관과 정권의 마음을 뺏은 경찰관. 진급은 당연히 후자가 빠릅니다. 시험도 없이 오로지 위에서 정하는 그대로 승진이 이뤄지죠. 경찰청장이면 뭐합니까. 치안감 같은 최고위직은커녕 총경 진급도 마음대로 못시키는데…. 경찰이 진급을 위해 국민보다 청와대만 쳐다보고 있는 구조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승진 앞에서 경찰청장도 참 불쌍한 사람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경찰을 꿈꾸는 사람부터 제복을 입고 현장을 누비는 사람들까지 모두 경찰청장을 우러러 봅니다. 경찰의 최정상에 있는 사람이니까요. 이룬 것 다 이룬 사람이 왜 눈치를 봐야 합니까. 인사도 마음대로 못하고 법 집행에도 정치권의 눈치를 살피고…. 이런 행태가 가슴 아프고 불쌍합니다. 이러니 국민이 경찰을 믿겠습니까.”

경찰의 수사권 독립과 공권력 강화에 대해서는 동의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수사권 독립은 제가 늘 주장해 오던 것이었습니다. 수사권 독립은 검찰이 갖는 권력을 나누자는 것이 아니고 국민과 사법정의를 위함이죠. 수사권에 검찰에만 있으니 검찰을 잡으면 모든 못할 게 없는 세상입니다.”

하지만 국민의 신뢰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누구한테는 엄하고 누구한테는 관대한 경찰이라면 수사권 독립은 절대 안돼죠. 이는 공권력과도 연결됩니다. 공권력이 약하다고들 하는데 힘없는 사람들도 과연 그렇게 느낄까요? 누구에게나 공정하고 국민의 신뢰를 얻을 때, 그때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이뤄질 겁니다.”
표창원 박사. /사진=다산북스

표창원 박사. /사진=다산북스


누구보다 경찰조직에 대한 애착과 사명감을 갖고 일하던 자부심이 묻어나는 표 박사는 경찰과 한 발 떨어져 있지만 ‘경찰은 반드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목표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찰의 방향를 제시한 표 박사의 2014년 개인적인 꿈을 물었다.

“프로파일러 혹은 전 교수란 타이틀 보다 작가라는 호칭을 갖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책을 열심히 써야죠. 올 해는 4권의 책을 쓰는 것이 목표입니다. 책을 통해 독자들로 ‘창원이 형’, ‘창원이 오빠’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편한 사람도 되고 싶고요.”

책 쓰는 일 말고도 다른 쪽에 관심이 있는지 물었다. 다시 잠시 생각에 잠긴 표 박사는 묘한 여운을 남겼다. 그리고 인터뷰는 끝났다.

“직접 나서서 세상을 바꾸기 보다 잘못된 부분에 있어서 변할 수 있도록 가이드를 제시해 주는 일이 제가 할 수 있는 충분한 일입니다. 일단 그 부분에 충실하려고요. 그래도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면…. 글쎄요, 세상일은 모르는 것이니까요.”

ⓒ "젊은 파워, 모바일 넘버원 아시아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