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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신각종을 만든 장인의 역사는 대한민국 범종의 역사입니다. 중요 무형문화재 112호 원광식 선생님. 우리나라 명장입니다. 고희를 넘긴 나이에 그는 여전히 범종 역사의 한가운데 서 있습니다. 뜨겁게 달궈진 청동의 기운처럼, 지금도 열정적으로 은은한 울림을 탄생시킵니다. 그가 범종을 만난 건 1963년입니다. 50년이 넘었습니다. 당시 스물을 갓 넘긴 나이였으니, 처음엔 무슨 종이냐며 함께 해보자는 8촌 형님의 제안을 뿌리치고 입대했습니다. 형님의 제안이 종의 울림처럼 그의 가슴 속에 남아 있던 걸까요. 전역한 청년은 범종 만들기에 빠졌고, 1973년 지금의 ‘성종사’를 인수했습니다. 그리고 세월을 견디며 명장이 됐습니다. 범종 수천 개를 만들어냈습니다. 대한민국 범종의 70%를 출산했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수많은 자식 가운데, 어느 종소리가 가장 아름답게 들리는지 우문을 던졌습니다. “다 아름답게 들리죠”가 현답일 줄 알았는데,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습니다. 대답 전 한참의 침묵이 흘렀습니다. 고개를 갸우뚱, 쉽게 입을 열지 못했습니다. 고민 끝의 한 마디는, 아직 마음에 드는 소리가 없다는 대답이었습니다. 없어요, 아직 없어요… 애착이 가는 종소리도 없다고 했습니다. 보신각종을 만든 이도 그 소리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서울 종로의 시끌벅적한 소음이 종소리를 묻어버리는 것을 무척 아쉬워하는 듯 했습니다. 대한민국 범종의 장인은 아름다운 소리에 대한 50년의 고민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는 “아직도 수수께끼를 푸는 중”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우리 종소리가 얼마나 미묘한지 드러내는 한 마디입니다.
풀지 못한 수수께끼는 이른바 맥놀이 현상과 관련있습니다. 맥(脈)은 한자고, 놀이는 순우리말입니다. ‘맥’은 ‘맥박’이라고 할 때의 그 맥입니다. 주기적인 파동입니다. 주기적인 파동이 자유롭게 노는 것처럼 소리가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보신각종이야 도심 한복판에 있어서 차분하게 듣기 힘들지만, 산 속 절에서 울리는 범종 소리를 들어보면 맥놀이 현상을 몸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종을 치고 조금만 기다리면 웅~ 웅~ 웅~ 마치 사람이 슬프게 우는 것처럼 주기적인 울림이 느껴집니다. 무척 낮은 음이어서, 귀보다는 몸으로 듣는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습니다. 보신각종도 요즘 날마다 정오에 타종식을 하는데, 가까이에서 들어보면 이런 맥놀이 현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종의 미세한 진동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종은 육중한 몸뚱이를 부르르 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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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웅~ 한 다음에 다음번 웅~ 할 때까지의 주기가 중요합니다. 맥놀이 주기가 너무 짧으면 종소리의 깊고 은은한 맛이 안 나고 촐싹거리는 것처럼 들릴 테고, 주기가 너무 길면 종이 울리는지 안 울리는지, 울림의 맛이 사라질 것 같습니다. 범종의 명장은 이 맥놀이 주기가 3초 정도면 소리가 가장 아름답게 들린다고 했습니다. 한국인은 그 소리를 가장 사랑한다고 합니다. 2003년 마지막 타종을 했던 성덕대왕 신종, 즉 에밀레종의 맥놀이 주기가 3초 정도 됩니다. 우리 범종 소리의 아름다움을 얘기할 때, 이 맥놀이가 빠지지 않는데, 맥놀이를 어떻게 아름답게 만들어낼 것이냐가 아직 풀지 못한 그의 수수께끼라는 것입니다.
한 가지 단서는 종의 어디를 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른바 ‘당좌’라고 부르는 부분입니다. 운이 좋게도, 명장의 작업장에는 중국식 종도 걸려 있었습니다. 중국에서 주문이 들어와 만들어놓은 종이라고, 원 선생님은 설명했습니다. 중국 종의 당좌는 가장 아래 부분입니다. 종의 밑동을 때리는 식입니다. 딩~ 하고 종을 치면 소리는 천천히 가라앉습니다. 반면 우리 종은 소리가 사그라지는 것처럼 시늉을 하다가도, 다시 살아나서 울고, 이걸 여러 번 반복합니다. 귀에 들리는 소리만 1분 가까이 가고, 몸에 들리는 소리까지 2분 가까이 이어집니다. 맥놀이가 제대로 연출되면, 소리가 멀리 가기도 합니다. 조선 시대 보신각종 소리는 그래서 반경 3km 안의 사대문 안을 가득 채웠을 것입니다. 이런 소리를 내려면 종 밑에서 3분의 1정도 지점을 쳐야 합니다. 당좌의 위치입니다. 에밀레종도 바로 여기를 칩니다. 이 지점을 기준으로, 종의 위와 아래의 무게는 같습니다.
다른 단서는 종의 두께입니다. 중국 종은 위로 올라갈수록 두께가 급격하게 얇아집니다. 그러니까 종의 아래를 상대적으로 두껍고 무겁게 만들어놓고, 그 부분을 때리는 겁니다. 중국 종 아래에 손을 넣어보면 두께가 금세 얇아지는 게 한 손바닥 크기에서 느껴질 정도입니다. 반면 우리 종은 위로 올라갈수록 두께가 얇아지는 정도가 크지 않습니다. 범종의 밑동 두께는 보통 20cm가 넘는데 이 정도 두께가 서서히 얇아집니다. 높이 3.75m의 에밀레종은 25cm에서 11cm까지 천천히 얇아집니다. 그래서 같은 크기면 우리 종이 중국 것보다 무겁습니다. 에밀레종은 18.9톤, 보신각종도 19.66톤에 달합니다. 겉으로 보이지 않는 이런 내면도 맥놀이의 수수께끼를 푸는 단서 가운데 하나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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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종에 새긴 무늬입니다. 에밀레종 맥놀이를 연구해온 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이 바로 올록볼록한 무늬입니다. 좌우가 정확한 대칭인 것처럼 보이는 범종이 사실 아슬아슬한 비대칭을 이뤄 맥놀이를 만들어낸다는 분석입니다.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김양한 교수는 이걸 고무줄로 보여줍니다. 고무줄 중간에 찰흙을 붙여 좌우를 살짝 비대칭으로 만든 뒤 튕겨보면, 진동이 거의 없어졌다가 신기하게도 다시 살아납니다. 표면에 무늬가 없이 매끈한 서양의 종소리는 다릅니다. 딸랑딸랑 교회 종소리에는 맥놀이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중국 종의 표면에도 이런 무늬가 새겨져 있습니다. 부처의 형상이나 연꽃, 동물, 산과 강이 들어가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소리를 유심히 들어보면 맥놀이 현상을 조금 느낄 수 있습니다. 결국 무늬와 당좌의 위치, 종의 두께 등이 오묘하게 결합해야 사람의 마음을 울리고 감동을 주는 종소리를 탄생시킬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 똑 떨어지는 방정식이 있을 리 없으니, 난해한 수수께끼라고 하는 것입니다.
장인의 작업장에는 올해 강원도 양구로 향할 범종 하나가 걸려 있었습니다. 아직 약품 처리를 하지 않아 종에서는 노란 금빛이 났습니다. 조만간 한 교수가 소리를 ‘잡으러’ 찾아온다고 했습니다. 범종의 이곳저곳을 꼼꼼하게 쳐보면 유독 떨리지 않는 곳이 있다는 겁니다. 그 무진동의 영역을 찾아내, 종의 표면을 살짝 갈고 진동을 만들어줍니다. 그렇게 만든 종은 10년 정도 지나야 듣기 좋은 소리가 난다고 했습니다. 장인은 그걸 “쇠가 풀린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렇게 쇠가 풀리길 기다리는 종 가운데 낙산사 종도 포함돼 있습니다. 2005년 화재로 망가진 낙산사 종을 다시 만들어줄 때, 하나 더 만들어둔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습니다. 주문 없는 제작, 종에 대한 사랑 때문입니다. 그 사랑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지, 충북 진천에는 벌써 종 박물관이 세워져 그가 기증한 수많은 범종이 화음을 내고 있습니다.
지금의 범종 제작 기술은 보신각종을 새로 만들던 1985년보다 한층 나아졌습니다. (옛날 보신각종은 지금 박물관에 있습니다.) 거대한 범종의 일부를 따로 따로 조각해 전체를 맞춰나가는 기술이라고 합니다. 6년 전엔 특허도 냈습니다. 어렵사리 기술을 전수해 놓으면 쪼르르 나가 따로 사업을 차리는 악순환이 반복돼서 어쩔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기술은 나아졌지만, 진화를 계속할 수 있을지 불투명합니다. ‘성종사’ 직원은 10명이 조금 넘습니다. 막내는 50대고, 40대도 없습니다. 60대가 청년회장 한다는 시골 마을 같습니다. 범종 하나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은 1년 정도입니다. 그 1년 동안 동시에 3개 정도 만들어야 회사가 돌아갑니다. 최근에는 중국이나 대만에서 고가의 주문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다행히 회사 운영에 큰 걱정은 없고, 장인도 수수께끼를 연구하며 재미있다고 했지만, 예전 같지 않은 체력은 어쩔 수 없습니다. 수수께끼는 누가 풀어낼 수 있을지. 우리 범종 맥놀이의 맥이 언제 끊겨도 이상하지 않을 날이 조금씩 다가오고 있는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박세용 기자 psy05@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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