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얼굴'에서 영희는 어떻게 '희생양'이 되었는가
[편집자주] 영어 단어 로키(lowkey)는 '사실은' '은근히' '조용히' 등을 뜻합니다. 최근 영미권 MZ세대들 사이에선 '감정을 과장하지 않고 은근히 표현할 때' 쓰입니다. 솔직하되 절제된 글을 쓰겠습니다.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30여 년 전, 전학 간 초등학교에서 그 아이를 만났다. 그 아이는 반 친구들에게 '구더기'라고 불렸다. 어느 날 반에서 몸집이 가장 큰 남자아이가 "구더기, 저리 가라"고 외치며 그 아이를 발로 걷어찼다. 그 아이는 1m쯤 날아가 풀썩 주저앉았다.
반 친구들은 킥킥대고 있었다. 그 아이는 옷에 묻은 먼지를 손으로 털고서 아무렇지 않은 듯 미소를 지었다. 요즘 말로 학교 폭력(학폭)을 당하던 아이였다. '학폭' 또는 '왕따'라는 개념조차 희미하던 시절이었다.
영화 '얼굴' 포스터 |
반 친구들은 킥킥대고 있었다. 그 아이는 옷에 묻은 먼지를 손으로 털고서 아무렇지 않은 듯 미소를 지었다. 요즘 말로 학교 폭력(학폭)을 당하던 아이였다. '학폭' 또는 '왕따'라는 개념조차 희미하던 시절이었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얼굴'(감독 연상호)을 최근 보고서 그 아이가 떠올랐다. 영화의 주무대는 1970년대 청계천 피복 공장이다. 그 아이처럼 괴롭힘을 당하는 여공 정영희가 등장한다. 영희는 도장을 파는 노점상이자 시각장애인 임영규의 아내이다. 영희는 그러나 아들 임동환을 낳아 키우다가 돌연 행방불명됐다.
영화의 줄거리는 성인이 된 아들 동환과 다큐멘터리 PD가 어느 날 백골로 발견된 영희의 과거를 추적하는 것이다. 영희의 친언니들도, 영희와 함께 공장에서 일했던 옛 동료들도, 영희에게 월급을 줬던 사장도 공통된 증언을 한다. "영희는 못생겼다"고. "얼굴이 그 모양이라"고, "괴물 같이 생기고, 멍청했다"고, "주제도 모르고 설치던 못생긴 x"라고 비아냥대고 조롱했다.
하지만 영희는 사장에게 성폭행당한 동료 직원을 위해, 사장을 찾아가 "그러면 안 된다"고 항의했던 유일한 인물이었다. 그런 용기와 정의조차 '못 생긴 여성의 주제넘은 짓'으로 뭉개진다. 힘은 없지만 정의로운 개인은 짓밟히고, 부도덕하지만 힘이 센 권력자는 면죄된다. 그 순간 사장과 직원들, 영희의 남편은 '공범'이 된다.
프랑스 문화인류학자 르네 지라르는 이 같은 현상을 '희생양 메커니즘'이라고 분석했다. 쉽게 말해 공동체(조직) 와해 위기감을 느낄 때 구성원들이 희생양을 찾는다는 이론이다. 구성원 간 갈등과 불안, 폭력적 충동을 특정 희생양에게 쏟아내고 공동체 안정과 질서 유지를 도모한다는 것이다.
희생양의 조건은 폭력과 부조리를 당해도 복수할 힘이 없는 약자여야 하고, 공동체에 속했으나 완전히 편입돼 있지 않은 존재여야 한다. 희생양 메커니즘이 작동하면 피억업자의 희생은 정당화되고 억업자의 권력 구조는 더욱 견고해진다. 중세시대의 마녀사냥도, 유대인의 나치 학살도, 관동대지진 당시 일본의 조선인 학살도 그렇게 이뤄졌다.
피복 공장 사장이 만일 성범죄 혐의로 구속됐다면 어땠을까? 공장은 문을 닫아 직원들은 직장을 잃을 수 있다. 직원들은 사장의 범죄에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영희를 희생양으로 삼기로 한다. 영희는 사실 못 생기지 않았다. 실종된 그는 남편에게 살해된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누구도 그 진실을 규명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에겐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고 살아남는 것이 우선이었으니까. 지라르의 희생양 이론에 따르면 신화나 설화는 살아남은 자(박해자)의 시각으로 쓰인 것이다. 마침내 전각 명인으로 성공해 '살아있는 기적'으로 칭송받는 영규도 철저하게 자신의 시각에서 아내 영희의 죽음을 영희 탓으로 돌린다.
영희가 활동하던 1970년대는 개발도상국이었던 대한민국에서 '한강의 기적'(경제 부흥 현상)이 일어나던 시기였다. 그러나 복지나 인권 의식은 밑바닥에 머물렀다. 영화 '얼굴'은 살아남은 자들이 착취 구조 최하층부에서 가한 선입관과 군중심리의 폭력을 정직하게 보여준다.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영희의 '평범한 얼굴'은 그 시대의 민낯을 역설적으로 고발한다.
30여 년 전, 우리도 초등학교 교실에서 '한강의 기적 당시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해 대한민국이 발전했다'고 배웠다. 그래서 '희생양'을 당연시했던 걸까. 선생님과 학교 시스템이 왕따와 학폭을 구제하지 못하던 시절이었으니까, 학생 인권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으니까, 학생들은 학폭을 일삼는 몸집 큰 아이에게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희생양을 앞에 두고 '킥킥' 대는 것을 선택했다.
이제와 밝히자면 '구더기'라 불렸던 아이는 냄새가 나지 않았고 못생긴 것도 아니었다. 누구도 그 점을 말할 용기가 없었을 뿐이다. 그때나 기자가 된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것은, 진실을 밝히는 데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mrlee@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