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사진 No. 148
이번 주 국내외 정치권에서 주목받은 이미지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의 흑백 포스터, 한동훈 전 대표의 유튜브 사과 영상, 그리고 정청래 대표와 박찬대 의원의 심야 회동 사진까지.
세 장면의 주인공들은 모두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이미지들은 기자의 질문 앞에 선 얼굴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카메라와 플랫폼을 향해 만들어진 얼굴이라는 점에서 닮아 있습니다.
이번 주 백년사진은 이 세 장면을 통해, 정치인의 얼굴이 누가 찍고, 어디에서 먼저 공개되며, 어떤 맥락으로 유통되는지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살펴보려 합니다.
● 장면 1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집권 1년을 나흘 앞둔 16일(현지 시간), 자신의 SNS에 흑백 사진 한 장을 올렸습니다. 워싱턴 백악관 집무실로 보이는 공간에서, 책상 위에 양 주먹을 짚고 정면을 응시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사진 위에는 ‘관세 왕(The Tariff King)’이라는 문구가 함께 적혀 있었습니다.
사진출처 트럼프 트루스소셜 계정. |
정면 응시, 주먹을 짚은 자세는 이 장면이 우연히 포착된 스냅 사진이 아니라 의도를 갖고 만들어진 이미지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무엇보다 사진 위에 메시지가 그대로 얹혀 있다는 점에서, 기자가 현장에서 상황을 설명하고 맥락을 보충하는 보도 사진과는 결이 다릅니다. 화면 오른쪽에서 비추는 인공 조명과 컬러 이미지가 넘쳐나는 시대에 굳이 흑백을 택한 선택 역시 계산된 효과로 읽힙니다.
트럼프는 이 사진이 지지자들 사이에서 저장되고 공유되길 기대했을 것입니다. 이 이미지는 설명을 얻기 위해 찍힌 사진이 아니라 지지지들 사이에 확산되기 위해 설계된 이미지에 가깝습니다.
● 장면 2
한동훈 전 대표는 18일 ‘국민 여러분과 당원들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유튜브 채널등에 2분 5초짜리 짧은 영상을 올렸습니다.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의 제명 처분 이후 친한계와 당권파의 갈등이 정점을 향하던 시점이어서 더 큰 관심을 끌었습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18일 자신의 제명을 불러온 당원게시판 사태를 두고 국민께 송구한 마음이라며 유감을 표명하고 있다. 2026.01.18. 사진=한동훈 전 대표 페이스북 영상 캡처 |
한 전 대표는 당원 게시판 논란의 세부 사실관계를 길게 설명하기보다는 혼란한 상황에 대해 전직 대표이자 정치인으로서 책임을 느낀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지점은 내용뿐 아니라 형식입니다. 유튜브 영상에는 기자회견장의 소음도, 사실관계 해명을 요구하는 기자들의 질문도 없습니다.
정치인은 이 공간에서 카메라와의 거리, 말의 속도, 표정의 톤, 멈춤의 타이밍까지 스스로 통제할 수 있습니다. 한 전 대표 역시 이 영상이 지지자들을 통해 확산되며 자신에게 우호적인 해석으로 재가공되길 기대했을 것입니다.
트럼프의 흑백 포스터와 한 전 대표의 짧은 영상은 형식도 다르고 길이도 다릅니다. 그러나 공통점은 분명합니다. 지지자들을 향한 메시지라는 점, 그리고 더 결정적으로는 기자의 카메라를 통과하지 않은 이미지라는 점입니다. 소스(source)가 달라지면 이미지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만약 트럼프가 기자들 앞에서 관세 정책을 자랑스럽게 설명하며 포즈를 취했다면, 사진기자들은 아마 더 괴팍한 표정의 순간을 기다렸을 것입니다. 정치인이 언론을 불편해하는 이유는 대개 그 지점에 있습니다.
한 전 대표 역시 기자회견 형식으로 유감 표명을 했다면 장면은 훨씬 시끄러워졌을 것이고, 곤혹스러운 질문이 이어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정치인에게 ‘통제되지 않는 순간’이 늘어날수록, 이미지가 달라집니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점점 더 ‘기자의 장면’이 아니라 ‘자신의 장면’을 선택하고 싶어합니다.
● 장면 3
이번 주에는 또 하나의 사례가 있었습니다. 당권을 놓고 경쟁했던 정청래 대표와 박찬대 의원의 심야 회동 소식은, 기자의 단독 사진이 아니라 양문석 의원이 페이스북에 올린 현장 사진을 통해 먼저 알려졌습니다. 게시글에는 “두 형”, “어색함을 푸는 중”, “정담을 나누는 모양이 아름다워 사진 몇 장을 올린다” 같은 표현이 덧붙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박찬대 의원이 16일 회동했다. 양문석 의원 페이스북 |
이 장면은 ‘뉴스 사진’이라기보다, 보기 좋은 화합의 순간으로 먼저 포장돼 유통됐습니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사진이 언론의 현장 기록으로 등장한 것이 아니라 정치권 내부자가 공개한 이미지가 뉴스의 출발점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 다양해진 정치인들의 소통 플랫폼
유권자와 시민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정치인의 플랫폼은 이제 분명히 다양해졌습니다. 그만큼 기자의 역할이 과거에 비해 줄어들고 있는 것도 사실처럼 보입니다. 정치인들은 이 변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기자회견 대신 자신의 카메라로 직접 찍어 플랫폼에 올리고, 알고리즘을 타고 지지자들 사이에서 확산되길 기대합니다. 그 과정에서 지지자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메시지만 반복적으로 접하게 됩니다.
기자들은 본능적으로 고약한 독재자의 몸짓, 우정이 흔들리는 순간, 그리고 곤혹스러운 표정을 포착하려 합니다. 그러나 스튜디오에 들어간 정치인은 자신이 등장하는 장면의 주도권을 쥡니다. 기자의 질문이 사라진 자리에는 셀프 연출이 들어서고, 기록의 윤리보다는 지지자들의 취향이 기준이 됩니다.
이번 주 국내외 권력자들의 이미지를 신문 지면과 인터넷에서 보며, 사진이 넘쳐나는 시대에 사진을 어떤 기준으로 바라보면 좋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래서 우선 세 가지 기준을 잡아봤습니다.
1. 누가 찍은 얼굴인가
(기자가 취재 현장에서 포착한 얼굴인지, 정치인이 직접 연출한 얼굴인지, 홍보담당이 설계한 이미지인지)
2. 최초로 공개된 플랫폼은 어디인가
(신문 지면과 포털 기사인지, 유튜브 영상의 썸네일인지, SNS 피드인지)
3. 어떤 맥락에서 유통되고 있는가
(사실을 전달하기 위한 보도인지, 사과나 해명을 위한 메시지인지, 지지층 결집을 위한 이미지인지, 조롱과 소비를 위한 밈인지)
이 세 가지 질문을 거치고 나면, 위에서 언급한 세 이미지는 더 이상 단순한 장면이 아니라 누군가가 선택한 결과라는 점이 분명해집니다. 그리고 맥락을 읽다보면 진실에 좀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만약 기자의 카메라를 통과한 권력자 이미지가 어떤 것인지 더 궁금하시면 오늘(2026년 1월 26일)자 신문의 1면 사진 등을 보시면 차이를 느끼실 수 있을겁니다.
청문회 현장을 기록한 수천 장의 사진 중 최종 선택된 한 장의 사진인만큼 지금 여론과 기자들의 입장이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종이 신문에선 이혜훈 후보자의 눈빛과 표정이 잘 표현되고 있습니다. 물론 후보자가 원하는 순간은 아닐겁니다.
2026년 1월 24일자 동아일보 1면.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를 듣는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의 눈빛과 표정은 기자들이 선택한 순간이다. |
이미지가 넘쳐나는 시대일수록 이미지를 읽는 기준이 더 중요해지는 게 아닐까요? 오늘은 기자들이 찍는 사진과 권력이 제공하는 이미지의 차이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좋은 댓글로 여러분의 생각을 나눠주시면 좋겠습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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