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아빠의 육아휴직기] < 48주차 > 육아 판타지와 다른 현실 속 아이 키우기
딸이 난입한 지 3분만에 난장판이 된 안방 바닥. 어린 아이 키우는 집 방바닥은 이게 기본이다. 언제나 깔끔하게 정리된 육아 예능프로그램 속 집안 풍경을 믿을 수 없는 이유다. /사진=최우영 기자 |
흔히 드라마에서 이상적인 회사 환경을 보여주는 걸 '직장인 포르노'라고 일컫는다. 실제 직장 생활의 고통과 노력은 숨긴 채 사람들이 꿈꾸던 판타지만 극대화해 쾌락을 느끼게 만드는 탓이다. 본질을 가리고 자극적인 환상만 제공한다는 점에서 '포르노'라는 극단적 표현이 쓰이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는 연예인들의 육아는 가히 '육아 포르노'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화보처럼 평화롭고 세련된 육아 풍경, 적재적소에서 등장하는 신상 육아템, 감동과 웃음만 흘러 넘치는 분위기는 실제 육아와 간극이 너무나도 크다.
'직장인 포르노'는 일반 회사원들이 대리만족이라도 하는 장점이 있다. 현실과 다르다는 걸 누구나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육아 포르노'는 그 폐해가 크다. 집집마다 고립된 환경에서 진행되는 육아 특성 상 '현실 속 나의 육아'와 TV 속 육아를 비교하며 자괴감과 우울함에 쉽게 빠질 수 있어서다.
━
24시간 예쁜 아이는 없다
━
식빵을 더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울고 있는 아이. 육아 시간의 대부분은 아이와의 실랑이, 뒤치다꺼리로 채워진다. /사진=최우영 기자 |
방송의 핵심은 '편집'이다. 연예인들도 자기 자식 키우면서 분명히 힘든 순간들도 있고 짜증도 날 것이다. 하지만 예능프로그램은 아이와 부모 모두 활짝 웃으며 행복한 순간들만을 잘라서 시청자들에게 보여준다. 현실 육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부모의 '멍때리기'나 '울컥'은 존재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사운드를 채우는 연예인 부모, 이모, 삼촌의 해사한 얼굴만 비친다.
사실 아이와 함께 있다 보면 긴장하거나 화날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자칫 한눈팔면 집안에서도 충분히 위험한 상황에 놓일 때가 많다. 아이들은 말도 잘 듣지 않는다. 그런데 TV 속 연예인 부모들은 긴장도 화도 보이지 않는다. 이해는 간다. 방송을 위해 집안에 이미 수많은 카메라와 스태프들이 빼곡하게 들어선 상황이다.
현실 육아에서 맞닥뜨리는 '더러움'도 방송에서는 보기 힘들다. 아기 기저귀를 갈다가 얼굴에 '오줌 공격'을 당하는 부모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찾을 수 없다. 피곤에 절어 머리도 못 감은 부모, 이유식 찌꺼기로 더럽혀진 방바닥과 아기 의자, 아이가 하도 잡아당겨 목 늘어난 티셔츠도 없다. 온갖 협찬과 PPL(간접광고)이 분명한 신상 육아용품 사이에서 깔끔하게 차려입고 머리를 왁스로 고정한 연예인 부모만 있다. 아이 키우는 집이 그렇게 깨끗할 수가 없다.
━
연예인만큼 못해도 '나쁜 부모' 아니다
━
이러한 '육아 포르노'를 보다가 화면을 끄면 박탈감과 자책이 밀려올 수 있다. 영상 속 육아 환경은 넓은 집안에서 값비싼 장난감들과 세련된 인테리어로 채워져 있는데 반해 전원이 꺼진 TV의 검은 스크린에 비춘 내 집안 풍경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왜 나는 저렇게 못 할까" "왜 우리 애는 저렇게 웃지 않을까" "내가 아이를 잘못 키우고 있나" 같은 파괴적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이럴 땐 맘카페나 커뮤니티 사이트를 통한 다른 부모와의 소통이 큰 도움이 된다. TV 속 환상과 달리 주변 또래 부모들의 실제 육아가 '나와 다르지 않다'는 걸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불안감이 상당 부분 해소된다. 아이를 키우면서 "우리 애가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만큼이나 "내가, 우리집이 다른 부모나 다른 집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정말 큰 힘이 된다.
또래 아이를 키우는 다른 집을 자주 방문하는 것도 좋다. 아이 키우는 부모 입장에선 손님 온다고 집안 치우고 깔끔 떠는 것도 한계가 있다. 특히 아무리 치워놔도 집안을 금세 원상복구 시키는 아이들이 있지 않은가. 많은 경험을 거쳐 "현실 육아는 예능 프로그램과 확연히 다르다"는 걸 깨달을 수 있다. 마치 실제 주택 내부와 모델하우스가 다르듯이 말이다.
━
육아 예능보다는 '내 아이 눈'을 더 자주 바라보자
━
알수 없는 이유로 소리 지르며 방바닥에서 난리법석 브레이킹댄스를 추고 있는 딸. 원인을 파악하려는 욕심은 애초에 버렸다. 그저 난리굿이 끝날 때까지 옆에서 기다릴 뿐이다. /사진=최우영 기자 |
아이를 직접 키워본 사람들은 안다. 육아의 대부분은 아이를 위한 부모의 희생, 무의미한 듯 매일 같이 반복되는 노동, 어디 쓴지도 모르게 어느새 비어가는 통장 잔고로 이뤄진다. 예능에 나오는 5~10분의 '예쁜 육아'는 그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뿐이다.
물론 실제 육아에서도 힘든 시간 틈틈이 기쁨과 환희, 아이가 예쁜 순간들이 분명히 찾아온다. 다만 이런 순간들이 더욱 빛을 발하는 건 육아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시간에 흘린 땀과 눈물 덕분이다. 어설픈 육아 예능이 아닌, 카메라가 없는 곳에서 아이에게 쏟은 부모의 사랑과 관심이 아이를 키운다.
100여년 전 영국 정신과 의사 도널드 위니컷은 "완벽한 부모 대신 '충분히 좋은 부모'면 된다"고 했다. 아이에게 필요한 모든 걸 완벽하게 제공하는 부모가 될 필요까지는 없고 좀 서툴고 부족해도 끝까지 옆에 있어 주는 '적당히 괜찮은 부모'면 된다는 뜻이다. 넓은 집에서 아이에게 깨끗하고 비싼 것만 줄 것도 없다. 피곤하고 지친 상태로도 아이 눈을 보며 한 번만 더 웃어줄 수 있으면 된다. 육아 포르노 속 '잇템' 유모차가 아이의 승차감을 올려줄 때 현실 부모의 눈맞춤과 스킨십은 아이에게 진정 필요한 자존감을 높여준다. 대다수의 애 아빠 엄마들이 다들 그렇게 산다. 박제된 육아 포르노에 휘둘리지 않고 아이 옆에서 꾸준히 버티는 이들이 최고의 부모다.
최우영 기자 young@mt.co.kr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