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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희생자' 7명 70여년만에 신원 밝혀져…도내 2명

뉴스1 고동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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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희생자' 7명 70여년만에 신원 밝혀져…도내 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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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방불명 4·3 희생자 봉환식 및 신원확인 결과 보고회'(자료사진)/뉴스1

'행방불명 4·3 희생자 봉환식 및 신원확인 결과 보고회'(자료사진)/뉴스1


(제주=뉴스1) 고동명 기자 = 제주4·3 유해발굴 및 유전자 감식 사업을 통해 행방불명 4·3희생자 7명의 신원을 새롭게 확인했다.

23일 제주도에 따르면 이번에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는 도외 형무소에서 행방불명된 희생자 5명과 도내에서 행방불명된 희생자 2명이다.

도외 희생자 가운데 3명은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발굴된 유해로 확인됐으며, 경산 코발트광산에서 발굴된 유해에서는 처음으로 대구형무소 희생자 2명의 신원이 밝혀졌다.

도내 희생자 2명은 2007년과 2009년 제주공항에서 발굴된 유해에서 신원이 확인됐다.

신원이 밝혀진 희생자 김사림(당시 25세·제주읍 이호리)은 1949년 2월 한라산에서 피난 생활 중 주정공장수용소에 수감된 이후 형무소로 끌려갔다는 소문을 마지막으로 행방이 묘연해졌다. 조사 결과 대전형무소에 수감된 뒤 대전 골령골 집단학살로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양달효(당시 26세·제주읍 도련리)는 1948년 6월쯤 행방불명된 뒤 주정공장수용소에 수감돼 한 차례 면회를 했다는 기록을 마지막으로 소식이 끊겼다. 대전형무소 수감됐고 골령골 집단학살로 희생된 것으로 보인다.


강두남(당시 25세·제주읍 연동리)은 1948년 10월 한라산에서 피난 중 가족과 연락이 두절됐다. 1949년 7월 대전형무소에 수감됐다. 6·25전쟁 발발 이후 골령골 집단학살로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임태훈(당시 20세·애월면 소길리)은 1948년 12월 경찰에 연행된 뒤 행방불명됐다. 목포형무소를 거쳐 대구형무소로 이감됐다. 경산 코발트광산 집단학살로 희생된 것으로 보인다.

송두선(당시 29세·서귀면 동홍리)은 1949년 봄 경찰에 연행된 뒤 행방불명됐다. 같은 해 7월 대구형무소에 수감됐다. 6·25전쟁 발발 이후 경산 코발트광산에서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도내 희생자인 송태우(당시 17세·제주읍 오라리)는 1948년 11월 한라산에서 피난 중 토벌대에 연행돼 바다에 수장되거나 제주공항에서 희생됐다는 전언만 있었으나, 유해는 제주공항에서 발굴됐다. 강인경(당시 46세·한림면 상명리)은 1950년 6·25전쟁 발발 후 경찰에 연행돼 행방불명됐으며, 모슬포 탄약고에서 희생됐다는 기록과 달리 제주공항 발굴 유해로 신원이 확인됐다.

이번 신원확인은 직계뿐 아니라 방계 유족의 적극적인 채혈 참여로 이뤄졌다. 김사림과 임태훈은 조카의 채혈이, 강두남·강인경·양달효·송두선·송태우는 손자와 외손자의 채혈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번처럼 행방불명 희생자 신원확인하려면 조카, 손자, 증손 등 방계 8촌까지 가족 단위 채혈이 중요해 보다 많은 유족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도는 설명했다.

이번 확인으로 발굴된 유해 426구 가운데 도내 147명과 도외 7명을 포함해 모두 154명의 신원이 확인됐다.

kd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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