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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시행된 ‘노란봉투법’…법원 先적용에 기업 패닉 [이슈&뷰]

헤럴드경제 박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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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시행된 ‘노란봉투법’…법원 先적용에 기업 패닉 [이슈&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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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중앙군사위 장유샤 부주석·류전리 위원, 기율위반 조사"
법 시행 전인데 법원 기조 급변
‘실질적 지배력’ 변화 판결 잇따라
노동계, 벌써부터 파업 준비 돌입
“불법파견될라” 기업들 조마조마



“사실상 법원에선 이미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 법률)을 시행 중입니다.”

노동 분야를 전문으로 하는 국내 한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는 헤럴드경제와의 통화에서 작년 말부터 법원이 노동조합법상 ‘실질적 지배력’을 확대해 내린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노란봉투법은 아직 공식적인 시행에 들어가지 않았다. 오는 3월 적용을 앞두고 정부가 시행령 등 정비에 한창이지만 사법부에서는 이미 이 법의 취지와 궤를 같이 하는 판결을 내리기 시작함으로써 미처 대응 준비를 마치지 못한 산업계·노동계가 큰 혼란에 빠지게 됐다는 분석이다.

노란봉투법은 교섭 상대방이 되는 사용자의 범위를 넓히고, 교섭 대상인 노동쟁의의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 골자다. 대기업이 직접 고용한 근로자가 아닌, 하청 혹은 협력 회사라도 단체 교섭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국내 모든 기업들의 노사 관계를 전면 바꿔놓을 수 있을 정도의 파급력이 있는 법이다.

▶JDC·노조 다툼, 1년만에 정반대 판결=노란봉투법이 가져올 것으로 보이는 최대 논란은 원청 지배력의 범위다. 노란봉투법은 원청과 교섭할 수 있는 대상을 하청으로 명시하는 대신 원청의 실질적 지배력 하에 있는 근로자라 정하고 있다. 회사의 사업구조나 노동 형태 등에 따라 교섭 대상이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다.

특히 ‘실질적 지배력’에 대한 기준이 크게 바뀌었다. 백화점 및 면세점 입점 업체 판매직의 단체교섭 권리를 인정한 판결이 대표적이다.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와 JDC에 입점한 판매직 노조는 2023년부터 다툼을 벌여왔다. 노조는 그 해 1월부터 8월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연장영업을 제한하고 명절 휴식 등을 보장하는 내용의 단체교섭을 JDC에 요구했다. 하지만 JDC가 이에 응하지 않자 노조는 이듬해 3월 제주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 구제 신청했고, 실질적 지배력 부재 사유로 기각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서울행정법원은 노조가 JDC에 단체교섭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인정했다. 1년 만에 정반대 내용의 판결이 나온 것이다. 법원은 “근로계약이 없더라도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자는 노조법상 사용자”라고 밝혔다.

노조가 요구한 의제 중 하나인 ‘휴식권’에 대해 JDC 측은 판매직들의 근무조 편성이나 개인별 근무시간은 입점업체가 정하므로 본인들은 권한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 역시 “면세점의 영업시간 범위 내에서 결정된다”며 면세점과 입점업체가 모두 실질적 지배력을 가지고 있다고 봤다. 면세점이 직접적으로 판매직의 근무 시간을 정하는 건 아니지만, 면세점 영업시간이 큰 틀에서 영향을 미치므로 지배력이 있다는 이야기다.


▶“이럴 거면 노란봉투법도 필요 없던 것 아닌가”=이처럼 노란봉투법 시행 전 사실상 이 법에 준하는 판결이 나오는 것에 대해 법조계는 우려 시선을 보내고 있다. 김종수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JDC 판결에 대해 “구체적인 교섭 절차는 시행령으로 정해나가야 하는 부분인데 그 절차는 현재 빈칸이라 기업으로선 난감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애초에 현행법만으로 지배력 인정이 가능한 것이었다면 애초에 노란봉투법도 필요가 없었던 것 아니냐”며 “법원이 먼저 판결을 내리고, 이를 국회가 받아서 입법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구자형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도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에도 절차에 대해선 오랜 합의가 필요한데 기업이 이 준비단계 없이 교섭 의무만 받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계도 이미 시행된 것처럼 파업 준비 돌입=JDC 판결은 노동계를 더 자극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소속 한화오션 하청노동자들(이하 한화오션 하청 노조)는 현재 쟁의 찬반 투표를 준비 중이다. 현대제철은 이미 지난 13일 투표를 실시해 찬성률 80%를 기록했다.

양사 하청노조는 지난 2022년부터 원청과 교섭을 요구해왔다. 이에 대해 2022년 중앙노동위원회는 원청이 단체교섭에 응하되, 법적 효력을 갖는 협약을 만들 필요는 없다고 판정했다. 지난해 7월 서울행정법원도 이 결정을 뒷받침했다. 다만 양사가 아직 하청노조 교섭에 응하지 않아, 노조도 파업 태세에 들어간 것이다.

재계에선 한화오션과 현대제철 하청노조 사례를 따라, 원청에 단체교섭을 요구하는 하청 파업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민주노총 한 관계자는 “면세점 노조 판결처럼, 원청과 하청 영향 관계가 간접적이더라도 앞으로는 지배력이 인정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원·하청 관계가 아니더라도, 협력 관계에 있는 회사들 사이의 법적 다툼도 늘어날 전망이다. 예를 들어 지난해 8월 서울행정법원은 항만하역 회사 근로자들로 구성된 지역단위노조가 항만하역협회 산하 지방협회와 소속 회사들에 요구한 단체교섭 요구를 기각했다. 해당 회사들과 노조 간에 근로계약은 물론 아무런 근로관계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물론 위 사례에선 단체교섭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재계에선 앞으로 이같은 조정 신청이 빗발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또 항만하역협회 사례를 보면 대기업이 아니더라도 협력사를 많이 거느리고 있는 제조업 중견기업 등도 노란봉투법에 따른 ‘사용자’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다.

중견기업 한 관계자는 “법원에서 판례가 충분히 축적되기 전까지는 기업들도 소용 비용 부담에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갑자기 불법파견 회사 될까…기업들 ‘조마조마’=기업들은 노란봉투법 대비에 한창이지만, 현재로서는 어떤 회사나 조직이 어떤 내용의 단체교섭을 요구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불안감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법무법인 등에 개별 세미나 혹은 컨설팅을 요구하고 있는 수준이 전부다.

대기업의 한 노무 담당자는 최근 한 법무법인과의 세미나에서 ‘실질적 지배력이 있으면 그게 불법파견인가요’라고 물었다고 한다. 이처럼 기업들 사이에서는 불법파견에 대한 범위가 초미의 관심이다.

원래는 법률상 불법파견이란, 도급이나 용역 계약을 맺고 실제로는 사용자의 지배력 아래 종속적으로 일하는 것을 이른다. 따라서 노란봉투법 시행으로 사용자의 실질적 지배력 확대시 일반적이었던 파견들이 돌연 위법 행위로 바뀌어 혐의로 인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는 노란봉투법 지침에 ‘노동안전 교섭에 응하고 합의를 이행했다고 해서 불법파견 징표는 아니다’라는 내용을 담았지만, 법원 판단이 반드시 정부 지침 안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게 문제다. 한 법무법인 관계자는 “구체적인 시행 방안 이전에 아직까지 실질적 지배력에 대한 정의나, 어디와 교섭을 해야하는지 같은 기본적인 문의가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박혜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