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역 흉기난동 사건으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이 법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두고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가해자에게는 거액의 배상 책임이 인정됐지만 정작 현실적으로 돈을 받을 길이 막혔다는 이유에서다. 유족 측은 “손해배상 제도의 취지를 외면한 판결”이라며 항소 의지를 밝혔다.
수원지법 성남지원 민사3부는 최근 ‘서현역 흉기난동’ 가해자 최원종(25)을 상대로 제기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최 씨에게 총 8억 8000여만 원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다만 최 씨의 부모에 대한 책임은 전부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성인으로 독립한 자녀에 대해 부모가 관리·감독 의무를 부담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원고 측이 제기한 부모 책임 부분은 기각했다.
그러나 희생자 유족들은 이 같은 판단이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반발하고 있다. 고(故) 김혜빈 씨 유족과 법률대리인 측은 21일 입장문을 통해 “가해자가 사실상 배상 능력이 없는 상황에서 부모의 책임까지 부정한 것은 피해 회복의 길을 원천 차단한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유족 측은 특히 “가해자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사회와 완전히 격리된 상태이며 8억 8000만 원이라는 금액은 종잣돈조차 없는 수형자가 현실적으로 지급할 수 없는 액수”라며 “결국 피해자에게 돌아오는 돈은 사실상 0원”이라고 지적했다.
또 “피해자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영치금 압류뿐이지만 이 역시 극히 제한적인 수준에 불과하다”며 “반복적인 법적 절차는 유족에게 또 다른 고통을 안길 뿐”이라고 했다.
유족 측은 가해자의 부모가 아들의 정신 이상과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었던 정황이 있었다는 점도 강조했다. 흉기를 소지하고 망상 증세를 보이는 등 위험 신호가 분명했음에도 보호자로서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법률대리인 오지원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손해배상 제도의 핵심인 ‘피해 회복’이라는 목적을 간과한 판단”이라며 “항소심에서는 형식적 법리보다 피해자의 현실을 반영한 판단이 내려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앞서 최 씨는 2023년 8월 3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 인근에서 차량으로 보행자를 들이받은 뒤 인근 백화점으로 이동해 흉기를 휘둘러 2명을 숨지게 하고 12명을 다치게 한 혐의로 기소돼 무기징역을 확정받았다. 사망자 중 한 명인 김 씨는 치료 도중 끝내 숨졌고 또 다른 피해자 역시 병원에서 사망했다.
유족 측은 “이번 판결은 분쟁의 종결이 아니라 사회와 법으로부터 회복의 가능성이 차단됐다는 확인을 받은 것처럼 느껴진다”며 “항소심에서는 손해배상제도의 출발점인 피해 회복의 관점, 구제받아야 할 피해자들의 입장과 관점도 균형적이고 충실하게 고려되기를 강력히 바란다”고 했다.
임혜린 기자 hihilin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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