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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워서 감기 걸렸다? 알고 보니 ‘착각’ [건강팩트체크]

동아일보 박해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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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워서 감기 걸렸다? 알고 보니 ‘착각’ [건강팩트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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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난방 안 된 차가운 방에서 잤다. 감기 걸렸다.
#겨울비에 젖어 오들오들 떨었다. 감기 걸렸다.
#칼바람 부는 날, 외투 없이 돌아다녔다. 감기 걸렸다.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법한 상황이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추위가 병을 만든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대 과학은 이 생각이 절반만 맞고, 절반은 틀린 신화라고 말한다.

추위 자체가 감기나 독감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대신, 추위는 바이러스가 활동하기 좋은 환경과 몸의 방어력이 약해지는 조건을 만들어 줄 뿐이다.

영국 웨스트민스터대학교 의학생물학자 마날 모하메드(Manal Mohammed) 조교수는 최근 비영리 학술 매체 ‘더컨버세이션’(The Conversation)에 기고한 글에서 관련 연구들을 근거로 “차가운 기온이 병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감염에 취약해지는 조건을 키운다”라고 설명했다.


감기와 독감은 ‘추위’가 아니라 ‘바이러스’가 원인

감기와 독감은 모두 바이러스 감염 질환이다. 감기의 대표적 원인인 라이노바이러스, 독감을 일으키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그리고 코로나바이러스 역시 사람 간 접촉이나 침방울을 통해 전파된다.

즉, 외투를 안 입어서, 찬 공기를 마셔서, 방이 차가워서 병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바이러스에 노출되었기 때문에 병에 걸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추운 겨울에 감기와 독감이 더 잘 걸릴까?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추운 공기, ‘바이러스에 유리한 환경’ 조성

추운 날씨는 바이러스 활동에 매우 유리한 조건을 만든다. 크게 다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차갑고 건조한 공기에서 바이러스 생존력 증가
겨울철 차고 건조한 공기에서는 인플루엔자·코로나바이러스 같은 호흡기 바이러스가 더 오래 살아남고 감염력을 더 오래 유지한다. 또한 건조한 공기에서는 기침·말·숨으로 나오는 작은 침방울(비말)이 빨리 증발해 더 작고 가벼운 입자가 되어 공중에 오래 떠 있게 된다. 이에 따라 다른 사람이 바이러스를 들이마실 가능성이 커진다.


둘째, 찬 공기 → 코·기도 온도 저하 → 면역력 약화
찬 공기를 들이마시면 코와 기도의 온도가 떨어지고 혈관이 수축하면서 국소 면역 반응이 약해진다. 이는 바이러스를 초기에 차단하는 기능을 둔하게 만든다. 하버드 의대의 2022년 연구에 따르면, 콧속 온도가 5℃만 낮아져도 바이러스 퇴치 세포의 50%가 죽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추위는 콧속에 있는 수십억 개의 바이러스 퇴치 세포를 없애버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점액(콧물·가래)의 이동 능력이 떨어져 바이러스를 밖으로 밀어내는 기능도 약해진다. 바꿔 말하면 바이러스가 더 쉽게 몸 안에 자리 잡을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셋째. ‘실내 밀집’으로 인해 바이러스 전파 위험이 증가
겨울에는 사람들이 환기가 부족한 실내에 오래 머물고 밀접 접촉이 늘어난다. 이는 바이러스 전파에 최적의 환경이다.

넷째, 일조량 부족으로 인한 비타민 D 감소
겨울에는 햇빛 노출이 줄어들어 비타민 D 생성이 감소한다. 비타민 D는 우리 몸에서 칼슘과 인의 흡수를 돕는다. 이를 통해 뼈·치아·근육 건강과 함께 면역 기능 개선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수치가 낮을수록 면역 반응이 약해질 수 있다. 태양의 고도가 낮아지는 겨울철, 자기 그림자가 자기 키보다 길면, 비타민 D 합성에 필요한 자외선 B(UVB)는 거의 도달하지 않는다.

질병 관리청에 따르면 한국 성인 10명 중 약 9명이 비타민 D 결핍 상태다.

다섯째, 난방으로 인한 공기 건조
추위를 막으려면 실내 난방은 필수지만 공기를 건조하게 만든다. 건조한 공기는 코·목의 점막을 말려 점액의 기능을 약화한다. 점액은 바이러스를 붙잡아 기도 밖으로 이동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이 시스템이 손상되면 바이러스가 세포를 감염시키기가 훨씬 쉬워진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결론: 추위는 감기·독감의 ‘원인’이 아니라 ‘조력자’

정리하면 이렇다.
△감기와 독감의 원인은 바이러스다.
△ 추위는 바이러스를 만들지는 않는다.
△ 대신, 바이러스가 살아남고 퍼지고 몸의 방어를 뚫기 쉽게 만드는 조건을 강화한다.

모하메드 조교수는 이를 “추위는 병의 원인이 아니라 위험 증폭기”라고 표현했다.

감기나 독감이 걸리는 이유를 이해했다면 효과적인 예방법도 예상할 수 있다.

△겨울에도 환기 자주 하기 △실내 적정 습도(40~60%) 유지 △손 씻기·마스크 같은 기본 위생 △충분한 수면과 영양 △비타민 D 부족하지 않게 관리 △ 사람이 붐비는 밀폐 공간 오래 머무르지 않기 등이다.

감기와 독감을 막는 핵심은 ‘얼마나 따뜻하게 입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바이러스를 차단하느냐’이기 때문이다.

박해식 기자 pistol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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