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주간으로 게재하며 K컬처팀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 우리는 왜 '미래'에서 '중세'를 보는가
오늘날 우리는 역사적으로 유례가 없는 첨단 기술을 사용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 클라우드, 알고리즘, 플랫폼, 데이터 센터 등이 만들어 가는 미래 사회는 지금껏 경험했던 기술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세상을 열 것으로 예상된다.
노석준 RPA 건축연구소장 |
◇ 우리는 왜 '미래'에서 '중세'를 보는가
오늘날 우리는 역사적으로 유례가 없는 첨단 기술을 사용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 클라우드, 알고리즘, 플랫폼, 데이터 센터 등이 만들어 가는 미래 사회는 지금껏 경험했던 기술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세상을 열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기술 발전이 만들어 낼 사회는 아마도 지금 우리가 가진 사회 시스템, 정치 시스템과는 다른 환경을 요구할지도 모른다. 이 기술이 형성하는 권력 구조는 새롭고 진취적인 미래적 이상향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오히려 이상할 만큼 낡아 보이기까지 한다.
그렇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이러한 미래 사회에서 예상되는 것은 개인이 생산 수단을 소유하지 못하게 된다는 점이다. 여기서 생산의 의미는 제조업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지적 활동을 통한 지적 생산물도 포함된다. 인공지능이 대부분의 지적 생산물을 만들어 내는 시대다.
일반인의 취미 활동 수준의 지적 생산량은 엄청난 수로 늘어날 수 있겠지만, 어느 정도 가치 있는 지적 생산물은 극히 제한적으로 만들어질 것이다. 인공지능의 개발로 창작 활동 자체는 더욱 수월해질 전망이다. 각 개인 크리에이터나 사업자는 거대 플랫폼에서 활동할 수밖에 없다. 플랫폼의 접근과 활동은 플랫폼이 정한 권한에 의존한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사회의 규칙과 비즈니스 규약은 상호적 계약이라기보다 플랫폼의 재량에 의해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결국 거대 플랫폼이라는 사적인 영지에서 현대판 '농노'는 다른 농노들과 치열한 경쟁을 치르게 된다. 가장 거대하고 영향력 있는 플랫폼에서 어느 정도 규모와 영향력을 가진 상위 계급이 되기 위해, 플랫폼의 규칙을 최대한 따르며 최대의 노력을 기울인다.
그런 방식만이 개인 농노에서 위 계층으로 신분 상승을 노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상층 계급으로의 신분 상승이 이루어지면 경제적 이득도 보장된다. 유튜브에서 구독자 10만 명 달성 시 실버 버튼, 100만 명 달성 시 골드 버튼을 받는다는 것은, 유튜브라는 영지 안에서 신분이 상승했다는 상징이다.
이렇게 구축한 거대 플랫폼의 구조와 규율은 매우 견고하다. 시간이 갈수록 그 장벽은 더 단단해져 비슷한 종류의 새로운 사업자가 시장에 진입하기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동영상 분야에서는 유튜브, 소셜 네트워크에서는 인스타그램과 같이 하나의 거대 플랫폼이 시장을 거의 독식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는 로켓 발사 실험 등을 통해 우주의 시대를 열고 있으며, 그가 보유한 기술은 다른 기업이 쉽게 따라 하기 힘들다. 심지어 미국 정부 기관인 NASA조차도 이 회사 없이는 우주 발사가 쉽지 않은 상황이 현실이 됐다.
거의 모든 빅테크 분야에서 종류는 다르지만, 기술 독점 현상이 나타나고 있고,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 장면이 만들어내는 현실은 미래 자본주의의 민주적·이상적 모습이라기보다 오히려 중세 봉건제 사회의 질서를 떠올리게 한다.
빅테크 기업 |
그래서 결국 질문은 이것이다.
왜 가장 진보한 기술 체계가 가장 전근대적인 권력 형식을 불러오는가?
◇ 기술공화국에서는 정치 사라지고 '최적화'만 남겨
미래에 등장하게 될 기술공화국(technocracy)은 인공지능 발전을 기반으로, 기술이 세상의 모든 가치를 지배하게 되는 완전 자동화·로봇 시대를 뜻한다. 이러한 기술공화국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때 정치적 토론을 통한 합의보다 기술적 효율을 우선시하는 통치 형태로 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인간이 수천 년간의 인본주의적 사고와 실험을 통해 만들어 낸 현대 민주주의의 개념은 그 위상이 크게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기술적 지배의 합리화가 완성되는 지점은 과거 방식의 민주적 '정치'(Politics)가 설 자리를 잃게 되는 순간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은 가치관의 충돌을 전제로 한다. 민주주의는 인간이 정의하는 공정함과 정의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구성된 시스템이다. 본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체계와는 거리가 있다.
이런 개념은 정량화하기 어려운 추상적 개념이기 때문에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과의 토론과 타협이 필수적이다. 이 과정에서 비효율과 비용이 발생하는 것은 피하기 어렵다.
"개인의 자유를 얼마나 제한할 것인가"
"분배를 우선할 것인가"
"성장을 우선할 것인가"
이런 부류의 기존 정치권 내 주요 쟁점, 그리고 그에 따른 좌파·우파라는 구분은 결코 순수한 효율성만으로 답을 낼 수 없다. 이러한 질문은 정답이 없는 문제이며, 그렇기에 치열한 토론과 타협이 필요했다.
기술공화국에서는 모든 사회적 쟁점이 '공학적 문제'로 치환된다. 이들에게는 공학적 방식의 '정답'이 존재한다. 데이터가 가리키는 가장 효율적인 경로, 비용을 최소화하고 산출을 극대화하는 최적값(optimization)이 곧 정답이 된다.
이 사회에서 권력은 '무엇이 옳은가'가 아니라 '무엇이 가장 잘 작동하는가'를 묻는다. 과거 인본주의적 질문이었던 '무엇이 옳고 그른가', '무엇이 정의롭고 공정한가'와 같은 물음은 박물관에 들어갈 유물처럼 취급될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계산과 연산에 의해 결정된다. 인본주의적 사회 토론과 정치는 점점 사라지고, 공학적 결정이 사회 질서를 규정하게 될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중세 시대 성곽 주민의 삶을 담은 삽화 '그리마니 기도서(Grimani Breviary) 10월' |
과거 중세 시대의 농노와 현대 민주사회에서의 시민은 플랫폼 봉건사회에서는 플랫폼 안에서 생산 활동과 소비 활동, 그 밖의 모든 디지털 행위를 수행하는 서비스 제공자와 사용자로 재구성된다. 이 중 플랫폼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생산자는 봉건 영주 밑의 기사 계급이나 상공인 계급에 비유할 수 있다.
사실상 단순 서비스 사용자는 농노에 가까운 역할을 하게 된 지도 오래됐다. 봉건 영주의 영지 내에서 일정 노동을 제공하고 식량을 배급받으며 영주와 기사 계급 아래에서 안위를 보장받던 삶과 매우 유사한 구조다.
중세 봉건사회에서 봉건 영주와 농노의 관계는 권리와 의무를 규정한 계약이나 법으로 정해졌고, 문서로 남았다. 오늘날에는 이렇게 무겁고 진중했던 계약 관계가 플랫폼 영지 내에서는 '이용약관'이라는 이름으로, 읽기 어려운 작은 글씨로 가득한 하나의 페이지에 담겨 있다.
여기서 '동의'에 체크해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개인은 이를 하나의 가벼운 절차처럼 넘기지만, 사실상 서비스 이용을 위해 강제적으로 수락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거부하면 플랫폼 접근 자체가 차단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통치가 더 이상 공적 제도를 통해 이루어지지 않는다. 시스템 설계와 알고리즘 그 자체가 통치의 규율이 된다. (3편에서 계속)
노석준 RPA 건축연구소 소장
▲ 메타버스 및 가상현실 전문가 ▲ 미국 컬럼비아대ㆍ오하이오주립대ㆍ뉴욕 파슨스 건축학교 초빙교수 역임 ▲ 고려대 겸임교수 역임 ▲ 현대자동차그룹 서산 모빌리티 도시개발 도시 컨설팅 및 기획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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