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22일, 전북 익산시의 한 경찰서로 A양(당시 17세)이 살고 있는 B보육원에서 자해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경찰은 A양를 응급 처치한 뒤 병원으로 이송했다. 그로부터 2년이 채 지나지 않은 지난해 12월8일 오후 1시37분, 경찰에 신고가 접수됐다. 또 B보육원이었다. 보호 아동인 C양(당시 18세)이 자해를 하며 난동을 부린다고 했다. C양은 수갑이 채워져 병원으로 옮겨졌다.
두 해에 걸쳐 같은 보육원에서 나온 두 차례 자해 신고. 이 기간 A양과 C양은 각각 17차례와 2차례의 자해·자살 시도를 했다. 경향신문은 B보육원의 보육일지 등을 입수해 이들이 자해를 멈추지 않은 이유를 좇았다. 이들의 몸에 새겨진 상처가 짙어지는 동안 보육원과 지자체가 개입한 흔적은 희미했다.
보호 없는 보육원, 아이는 ‘약’으로 통제됐다
자해가 반복될 때 B보육원은 상담이나 관계 형성이 아니라 입원을 택했다. A양은 2024년 한 해 동안 총 11번 병원에 입원했다. 모두 자해로 인한 입원이었다. A양이 우울증과 기분장애를 진단받은 것은 2024년이었는데 보육원 측에서 A양에게 자해 행위와 관련해 상담을 한 것은 같은 해 2월22일 단 한 번에 불과했다. 당시 상담일지에는 자해 상황만 나열됐을 뿐 자해를 반복하는 원인이나 심리 상태에 대한 분석은 없었다. 상담 시간도 30분 정도였다.
A양뿐 아니라 보육원의 다른 아동·청소년들도 정신과 문제를 겪지만 제대로 된 상담 치료를 받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2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익산시청과 B보육원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B보육원에 입소한 아동·청소년 29명 중 13명(45%)이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기분장애·우울증 등으로 정신과 약물을 복용하고 있었다. 이중엔 만 8~10세 아동도 포함됐으며 약물을 3년 이상 장기 복용한 아동이 8명으로 절반이 넘었다.
상담과 관계 형성이라는 기본 처방 없이 진행된 장기 투약은 치료보다 통제에 가까웠다. 이러한 태도는 시설 내 지침과도 어긋났다. B보육원의 ‘자해 아동 발생 시 대응 지침’을 보면 자해 발생 이후엔 ‘심리적 개입 및 사후 관리’를 해야한다. 이 지침에서 B보육원은 “자해는 단순한 행동이 아니라 ‘도움을 요청하는 신호’로 파악해야 한다”, “자해의 근본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집중 상담을 진행하고 다른 아동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집단 상담을 병행한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정작 A양이 11차례 자해를 한 2024년 한 해 동안 상담은 한 차례만 진행했다.
B보육원 측은 “(A양이) 병원 입원과 퇴원 후 원가정에서 생활해 상담이 진행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B보육원은 학대 문제가 불거져 익산시청의 조사가 시작된 지난해 11월 이후에는 A양을 비롯한 약물 복용 아동·청소년들을 상대로 상담 치료 등을 진행했다. 그간의 ‘상담 공백’이 사실상 보육원 측의 의지였음이 드러난 셈이다. 그나마 ADHD 약물을 복용해온 아동 3명은 이조차 받지 못했다. 보육원 측은 “ADHD는 심한 증상이 아니면 심리 상담을 진행하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상담 치료를 받지 못한 아동 중엔 8세부터 8년 간 약물을 복용해온 아동도 포함돼 있었다.
일부 보육원 출신 청년들은 약물 복용 과정에서 부작용을 겪었다고 증언했다. 이들은 보육원 측이 아동 통제를 위해 약물을 강제로 먹였다고도 주장했다. 보육원 측은 ‘약물 처방·유지 과정에서 아동의 의사가 어떻게 반영되었나’는 기자의 질문에 “친권자 및 미성년후견인의 동의를 받아 매뉴얼에 따라 복용 중”이라면서도 “약물 복용관리 동의서는 관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3년 전 경고’ 알면서도 손 놓은 지자체
B보육원을 관리감독해야 할 익산시는 ‘의료 방임’ 문제를 인지하고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경향신문 취재 결과 B보육원은 2021년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행정처분을 받았다. 당시 자료를 보면 익산시청은 B보육원에 대해 “현장에 노출된 아동들을 조사한 결과 의료적 방임, 같은 숙소 아동들에 대한 정서적 학대가 있다”고 판단하며 개선명령을 내렸다. 개선명령은 지자체가 아동학대 등 위법·부당한 사항을 적발했을 때 내릴 수 있는 행정 처분으로 상대적으로 낮은 조치다. 개선명령 이후 B보육원에서 일어나는 아동 자해와 약물 복용 실태에 대한 추가 점검이나 실질적인 조치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런 지자체의 미온적 태도는 B보육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 5년간 아동복지법·사회복지사업법 위반으로 행정처분을 받은 아동복지시설 235곳 가운데 가장 강한 처벌인 ‘시설 폐쇄’ 처분을 받은 곳은 8곳(3.4%)에 불과했다. 보호 아동을 대상으로 신체적·정서적 학대나 성폭력이 발생한 시설 77곳 중에서도 시설 폐쇄 처분은 3곳(3.9%)뿐이었다. 시설장 교체는 7곳(9.1%), 일시적 사업정지는 11곳(14.3%)이었고, 개선명령이 56곳(72.7%)으로 가장 많았다.
시설 학대에 대한 처분이 미미한 배경에는 한 법인이 지역 내 여러 시설을 운영한다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 B보육원을 운영하는 D법인은 아동보호시설을 포함해 총 80여개의 시설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처럼 한 법인이 여러 시설을 운영하는 구조에선 지자체가 아동의 안전보다 시설 존치를 우선시할 가능성이 크다. 조소연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시설에서의 학대는 엄중하게 봐야 할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폐쇄된 경우가 드물다”며 “이러한 구조에서 아동들은 ‘시설을 벗어나도 갈 곳이 없다’는 생각에 입을 다물게 된다”고 말했다.
현재 B보육원은 학대 혐의로 수사받고 있다. 지난해 보육원에서 자란 청년들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학대를 고발하면서 수사가 시작됐다. 전북경찰청은 B보육원 전·현직 직원 4명을 입건했다. 경찰은 학대를 비롯해 약물 강제 복용 의혹 등에 대해서도 수사할 예정이다. 서미화 의원은 “의학적·인권적 관점에서 아동에 대한 정확한 투약을 하는지 다시 점검하고, 지자체는 조사과정에서 아동들이 2차 피해나 낙인을 받지 않도록 책임있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익산시와 B보육원은 “전문가 의견을 토대로 시설 운영 전반에 대한 점검 및 개선을 지속해서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우혜림 기자 sa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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