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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키맨] 구광모의 ‘뉴LG’ 선발투수 류재철… 가전 명가 넘어 AI 시대 돌파구 마련 특명

조선비즈 황민규 기자;최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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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키맨] 구광모의 ‘뉴LG’ 선발투수 류재철… 가전 명가 넘어 AI 시대 돌파구 마련 특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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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한국의 대다수 기업은 창업자의 강력한 리더십과 결단력에 의존해 움직였다. 이병철 회장이 이끈 삼성과 정주영 회장이 이끈 현대가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글로벌 시장에서 최고의 자리를 두고 다투는 지금 이들 기업은 총수 혼자 경영을 책임지기 어려울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총수의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각 분야를 관리하고 미래를 위한 최종 의사 결정에 핵심적 역할을 하는 이른바 ‘키맨(keyman)’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한국 경제를 이끄는 주요 기업들의 키맨을 소개하고 이들에게 주어진 역할과 과제가 무엇인지 짚어본다. [편집자주]

한국을 대표하는 전자기업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총수 이재용 회장과 구광모 회장은 공통점이 있다. 한국 기업사에 족적을 남긴 아버지의 그늘이 짙게 남아 있다는 점이다. 이건희 선대 회장이 타계한 이후 이재용 회장은 미래전략실 출신인 ‘아버지의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있었고, 구광모 회장 역시 구본무 선대 회장을 보좌하던 LG그룹 부회장 5명이 건재한 상황에서 자리를 물려받았다.

두 총수는 새로운 리더십 체제를 출범시키는 과정에서 차이를 드러냈다. 이 회장이 재무통으로 불리는 정현호 전 부회장을 멘토이자 오른팔 격으로 중용한 것과 달리, 구 회장은 LG전자에서 34년간 TV와 모바일 등의 사업을 진두지휘한 권봉석 부회장을 파트너로 낙점했다는 것이다. 녹록지 않은 글로벌 시장 상황에서 LG의 기업 정체성을 기술 중심주의로 이끌겠다는 구 회장의 의중이 드러난다.

그래픽=정서희

그래픽=정서희



올해는 LG그룹의 슬로건으로 ‘선택과 집중’을 내건 구 회장의 색깔이 뚜렷해질 전망이다. 재계에선 LG그룹을 대표하는 계열사인 LG전자의 새로운 수장으로 지난해 말 선임된 류재철 사장이 구광모 체제의 철학을 명확히 보여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현장형 리더이자 ‘뼛속까지 엔지니어’라는 평가를 받는 류 사장은 LG전자가 지난 수년간 펼쳐놓은 포트폴리오를 재정리하고 확실한 사업을 강한 실행력으로 밀어붙인다는 의지를 수차례 피력했다.

과거 부회장단에 무게가 쏠려 있던 LG그룹의 리더십이 각 분야의 전문가로 선정된 최고경영자(CEO) 중심으로 재편된 가운데 류 사장을 앞세워 그룹 전반의 변화와 혁신을 가속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최근 류 사장은 수십 년간 누적된 LG전자의 부품 기술력과 생산 역량, 비용 절감 노하우 등을 로보틱스, 인공지능(AI)과 접목하고 이 과정에서 LG이노텍, LG디스플레이, LG에너지솔루션 등 계열사와 더 밀접하게 협업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삼성이나 SK에 비해 그룹 차원의 결속력과 협업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LG그룹의 응집력을 강화하겠다는 얘기다.

◇ “현장 지식, 시장 상황 잘 아는 CEO”

류재철 사장과 함께 일한 임직원들은 그의 경영 스타일을 두고 강력한 ‘실행력’을 꼽는다. LG그룹 고위 관계자는 “류 사장이 임직원과 연구·개발, 사업 추진 등을 논의할 때 끊임없이 되묻는 질문은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이냐’”라며 “구체적인 실행 능력과 철저한 비용 계산, 지속가능성 등을 고려한 사업이 아니면 애초에 보고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현장 지식과 시장 상황을 잘 아는 CEO”라고 평가했다.

1967년생인 류 사장은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받았다. 1989년 금성사(현 LG전자) 가전연구소에 입사해 세탁기·냉장고·에어컨 등 생활가전 분야에서 커리어를 쌓아온 현장형 엔지니어 출신이다. 세탁기와 냉장고 생산, 제조 핵심 보직을 거치며 창원사업장을 중심으로 현장을 두루 경험했고, 2013~2014년 구광모 회장이 창원에서 경영 수업을 받던 시기에도 생활가전 조직을 이끌었다. 입사 36년 만에 LG전자 CEO 자리에 오른 것은 실행을 중시하는 현장형 리더십을 높게 평가받았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전임 CEO인 조주완 사장의 리더십과는 명확한 대비를 보인다. LG전자 내 ‘영업통’으로 알려진 조 전 사장이 해외 법인을 중심으로 커리어를 쌓았다면, 류 사장은 사업장과 연구·개발 분야에서 대부분의 경력을 보낸 기술통이다. 세계적인 경기 불황과 미국발 관세로 인한 불확실성 등으로 주력 사업인 TV·가전의 수익성이 악화할 무렵 이전 경영진이 다른 분야에서 탈출구를 마련하려고 한 것과 달리 류 사장은 TV·가전의 본원적 경쟁력 회복을 외치며 문제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이달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 전시회 ‘CES 2026’에서도 이 같은 류 사장의 색깔이 여실히 드러났다. 류 사장은 CES 2026에서 CEO로서 첫 기자간담회를 열고 ‘근원적인 경쟁력 확보’ ‘고성과 포트폴리오 전환’ ‘수익성 기반의 성장 구조 구축’을 주요 키워드로 내세웠다. 특히 생산 비용에 대한 경쟁력 제고 방안을 언급했다는 것이 특징이다. 중국산 저가 가전 공세로 위협받는 가전 사업의 근본적 문제를 회피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것이 LG 안팎의 중론이다.

그래픽=손민균

그래픽=손민균



◇ 북미 생활가전 1위 성과… 실행력 탁월

류 사장이 구광모 회장의 신임을 얻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척박한 글로벌 가전 시장 상황에서도 생활가전 사업의 지속가능성을 숫자로 증명해냈다는 점이다. 코로나19 이후 수요가 급격히 꺾인 데다 중국의 저가 공세가 거세진 상황에서, 류 사장은 HS(홈 어플라이언스 솔루션)사업본부를 이끌며 포트폴리오 재편과 원가·생산 경쟁력 강화에 드라이브를 걸어 수익성 방어에 성공했다.


이는 경쟁사인 삼성전자와 비교하면 더 도드라진다. LG전자 HS사업본부의 영업이익률은 2023년 6.6%, 2024년 5.2%를 기록했고 지난해에도 5% 안팎을 지킨 것으로 추산된다. 반면 삼성전자 생활가전(DA) 사업부의 수익성은 최근 몇 년간 손익분기점 기준에 그친 것으로 분석된다. 증권가에서는 LG전자가 생산 효율성을 높이고 제품 포트폴리오를 최적화해 삼성전자보다 적은 마케팅 비용으로 더 높은 수익을 낸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특히 류 사장은 삼성전자, LG전자의 가전 사업 수장들이 정복하지 못했던 북미 프리미엄 시장에서 성공적인 실적을 낸 경영자로 꼽힌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모두 2010년대부터 중국 가전 기업의 추격을 의식하며 북미·유럽 등 프리미엄 가전 점유율 확대를 외쳐왔지만, 투자 대비 성과가 뚜렷하지 않다는 평가가 많았다. LG전자는 지난해 3분기 북미 생활가전 시장에서 누적 점유율 21.8%로 1위를 기록했다.

류 사장이 LG전자 가전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끈 리더십의 특징으로는 빠른 의사결정을 꼽는다. 그와 함께 근무한 임직원들은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 바로 실행하는 사람”이라고 입을 모은다. LG전자에서 20년 이상 근무한 한 임원은 “데이터 검증을 최우선시하고, 인공지능(AI)처럼 디테일한 부분까지 모두 철저하게 확인한 뒤 확신이 서면 놀라운 속도로 일을 추진하는 유형의 CEO”라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류 사장의 ‘실행 속도’가 구광모 회장이 추구하는 실용주의 경영과 맞닿아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는 “구광모 회장 체제에서는 과거 부회장단을 중심으로 한 ‘가신 경영’ 시대가 저물고, 기술·실무 중심의 전문가 집단으로 구성된 CEO 중심 경영이 자리를 잡고 있다”며 “류 사장 같은 엔지니어형 CEO를 핵심 계열사 수장으로 올린 선택은 ‘기술 중심의 구광모 체제’가 더 또렷해졌다는 신호”라고 말했다.

류재철 LG전자 사장이 지난 5일(현지시각)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베이 호텔에서 열린 CES 2026 'LG전자 미디어컨퍼런스'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뉴스1

류재철 LG전자 사장이 지난 5일(현지시각)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베이 호텔에서 열린 CES 2026 'LG전자 미디어컨퍼런스'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뉴스1



◇ AI발 지각변동 속 돌파구 마련 절실

류 사장 앞에 놓인 시장 상황은 그야말로 ‘산 넘어 산’이다. 세계 TV·가전 시장 불황은 장기화하고 있으며, 중국 기업들은 저가를 넘어 프리미엄 시장에서도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TV·가전 사업에서의 수익성 방어뿐만 아니라 AI 데이터센터를 비롯해 자동차용 전장 사업, 기업용 솔루션 사업 확대 등 류 사장이 짊어진 과제는 산적하다. LG가 그룹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있는 AI 기술을 바탕으로 전반적인 제품 가치를 높이는 것도 시급한 과제 중 하나다.

재계 한 인사는 “류재철 사장의 경력 대부분이 가전 분야인데 TV나 전장, AI 데이터센터 등은 새롭게 배우고 경험해야 하는 영역”이라며 “AI 광풍으로 세계 전자·IT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고 있는 가운데 LG전자가 AI에서 파생되는 거대한 시장에 올라타지 못한다면, 한때 세계 시장을 주름잡았다가 급격히 몰락한 일본 전자 기업들의 전철을 밟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황민규 기자(durchman@chosunbiz.com);최지희 기자(he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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