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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삶과 경제를 바꾼 표준]⑤ 휴대폰 수출 시대 연 ‘CDMA’

조선비즈 세종=이현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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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삶과 경제를 바꾼 표준]⑤ 휴대폰 수출 시대 연 ‘CD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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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기준을 이야기할 때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표현을 쓴다. 스탠더드는 ‘표준’을 말한다. 표준은 경제, 산업, 기술을 아우르는 약속이다. 기술 발전으로 ‘표준’이 필요해지기도 하지만, 하나의 표준이 혁명 수준의 도약을 견인하기도 한다. 국가기술표준원과 조선비즈는 산·학·연·언 전문가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세상을 바꾼 10대 표준’과 ‘한국인의 삶과 경제를 바꾼 10대 표준’을 선정하고, 표준의 역할을 재조명한다. [편집자주]



우리나라 이동통신 발전사를 ‘도로’에 비유한다면, 1996년은 비포장도로에 아스팔트가 깔린 해로 평가된다. ‘CDMA(코드분할다중접속)’ 서비스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CDMA는 같은 주파수를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이동 통신 기술이다. 기존 아날로그 방식은 한 주파수를 한 사람만 쓸 수 있어 통화 음질이 나쁘고 끊기기 일쑤였다. 국내 1호 CDMA 가입자였던 인천의 자영업자 정은섭(36)씨는 “유선 전화와 통화 음질이 별 차이가 없다”고 했다.

우리나라에 휴대전화가 도입된 것은 1988년 7월 1일이다.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이 미국 모토로라 제품을 판매했다. 이 휴대폰은 ‘벽돌폰’으로 불렸다. 무게가 771g으로 지금 삼성 갤럭시 S25(162g)의 4배가 넘어 들고 있기도 힘들다는 평가가 많았다. 가격은 400만 원, 설치비는 60만원에 달했다. 무엇보다 휴대전화의 핵심 기능인 통화 음질이 좋지 않고 끊겼다.

이에 정부는 1989년 ‘디지털 이동통신 개발사업’을 국책 과제로 선정하고 차세대 이동 통신 기술 개발에 들어갔다. 당시 개발돼 있던 여러 이동 통신 기술 가운데 정부가 주목한 것은 미국 퀄컴의 CDMA다. 지금이야 퀄컴이 세계적인 기업이지만 당시는 인지도가 낮았던 벤처기업 중 하나다. CDMA는 당초 군사용으로 개발됐는데, 적은 기지국 수로도 가입자 수용 용량이 아날로그 방식의 10배에 달한다는 장점이 있었다. 다만 기술을 구현하기가 어렵고 상용화된 적이 없다는 한계도 명확했다.

1996년 4월1일 대전 대덕연구단지 내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열린 CDMA 상용화 기념행사에서 이수성 당시 국무총리가 CDMA 이동전화 시험통화를 하는 모습. /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제공

1996년 4월1일 대전 대덕연구단지 내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열린 CDMA 상용화 기념행사에서 이수성 당시 국무총리가 CDMA 이동전화 시험통화를 하는 모습. /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제공



정부는 퀄컴과 제휴를 맺고 CDMA 상용화에 착수했다. 1996년 1월 3일, 세계 최초로 CDMA 방식의 이동전화 서비스가 한국에서 시작됐다. CDMA는 한국 휴대전화 보급을 폭발적으로 늘렸다. 이동통신 가입자 수는 1995년 150만명에 불과했는데 2000년 2700만명으로 18배가량 폭증했다. 또 우리나라가 이동통신 기술 및 단말기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 국내 이동전화 단말기 수출액은 1996년 47만달러에서 연평균 40% 이상 성장해 2003년에는 134억달러에 달했다.

한국은 해외 기업으로부터 로열티도 받게 됐다. CDMA 상용화 과정에서 확보한 핵심 기술이 표준특허(SEP)로 등록된 덕분이다. 한국은 2019년에는 세계 최초로 5세대 이동통신 기술(5G)을 상용화하는 데 성공했다. 오는 2030년에는 6세대 이동통신 시대를 열 전망이다.

세종=이현승 기자(nalhs@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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