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노동 l 모이라 와이글 지음, 김현지 옮김, 아르테(2024) |
연말에 데이팅 앱을 깔았다. 살짝 가린 얼굴, 좋아하는 책과 영화 포스터로 프로필을 꾸미고, 찾는 관계는 ‘잘 모르겠다’고 설정했다. 어떤 감정이 생기고, 어떤 노력을 해갈지는 관계를 겪고 합의하기 전엔 알 수 없으니까.
곧 피드에 여러 이미지와 키워드가 뜬다. 벗은 몸, 입은 옷, 취향 진열, 재력 과시. 그중 거리가 가깝고,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은 이를 택했다. 조금 대화하면 상대가 어떤 관계를 찾는지 알게 된다. 가벼운 관계가 뭔가요? 내 물음에 당신은 답한다. 그냥, 가벼운 관계요. 규범을 벗어난 관계일수록 더 부지런하고 투명한 소통이 필요하다고 믿는 나와 달리, 관계 노동의 최소화를 바라는 상대 앞에서 욕망은 쪼그라든다. 게으른 관계에서는 어떤 만족감도 느낄 수 없는 나는, 몇 번 방황하다 앱을 삭제했다.
내가 너무 진심이었나? 내가 많은 걸 바라는 걸까? 애초에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게 아닌가 싶다가도, 만나는 장소에 따라 달라질 사람이라면 진작 거르는 게 맞다는 판단이 든다. 온·오프라인의 경계가 흐려진 시대에 더 올바른 만남의 방식을 재단할 수 있나? 누구의 기준으로? 비장애, 이성애 중심 연애 문화가 만든 편견이 어떻게 관계마다 위계를 세웠는지 노려본다. 끌림을 정확한 책임과 합의의 언어로 진솔하게 협상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환상만 남은 세계에서 사랑과 섹스는 실체 없이 원해지는 상품이 된다.
“내가 이해하지도 못하는 규칙에 따라 살아가려 애쓰고, 그와 같은 과정에서 나 자신의 욕망은 보지 못하게 됨을 알아차렸을 때, 이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데이트를 사회문화적으로 파고든 ‘사랑은 노동’의 저자 모이라 와이글도 비슷한 고백을 한다. 그는 데이트가 채 200년도 되지 않은 개념이라는 사실을 짚으며, 자본주의의 영향 아래에서 사랑과 거래가 긴밀하게 연결된 역사를 소개한다.
상대의 취향으로 계급을 엿본다는 문장과 무게를 덜어내는 법을 연습하다가 욕망을 잃게 된다는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불안정한 일자리와 주거로 혼란해지며 사랑은 노동과 더욱 분리되어 유흥으로 소비된다. 관계 내 여성의 감정 노동과 노동 불균형에 대한 토로는 ‘과하고 끈적하고 부담스러운 요구’로 치부한다. 그렇다고 ‘사랑에 낭비하지 말고 일에 집중하라’는 백인 중산층 중심의 페미니즘 구호로 해방되는 이는 자본가뿐이라는 점 또한 꼬집는다.
이토록 정치적인 사랑과 섹스의 혼돈에서도 저자는 가능성 찾기를 멈추지 않는다. 데이트를 통해 다양한 몸들, 다양한 관계들이 거리로 나설 자유가 확장됐으므로…. 데이팅 앱의 기원은 성소수자의 사랑과 긴밀하다. 장애 등 다양한 몸의 역사와도 연결되어 있다. 타자를 그리워하는 일은 내 존재의 취약성을 인정하는 선언과도 같다. 우리는 자유만큼 친밀감을 배울 기회를, ‘여러’ 사랑을 발견하며, 사랑이라는 노동을 발명하는 데 애써 나가야 한다.
당신의 세계에 휘말리기 위해, 서로의 취약성을 핥아주기 위해, 당신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용기는 ‘거래’의 역사로 점철된 사랑을 혁명으로 바꾼다. 나는 당신으로 인해 버거워지고 싶다.
홍승은 집필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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