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용 선릉아트홀 무대감독]
필자가 진정한 쉼과 여유가 필요할 때 찾게 되는 국악곡이 있다. 바로 가곡이다. 노랫말을 알고는 있지만, 단순히 선율만을 흥얼대며 복잡한 생각을 멈출 수 있게 하는 묘한 힘을 지니고 있다.
흔히 가곡이라 하면 서양의 성악곡(Lied)을 떠올리지만, 우리 전통 가곡은 한국의 시조시를 가사로 삼아 거문고, 가야금, 대금, 피리 등 관현악 반주에 맞춰 부르는 성악곡을 말한다. 2010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가곡은 선비들의 풍류 문화의 정수로 꼽힌다.
본래 상류 사회에서 향유하던 예술이었던가곡은 민속악과 달리 감정을 쏟아내기보다 차분히 앉아 이를 다스리고 정제하여 표현한다. 시조, 가사와 함께 '정가'로 분류되지만, 다른 정가와 달리 반드시 관악기, 현악기, 장구가 하나씩은 포함되는 관현악 반주를 갖추어야 하는 것이 특징이다. 수성가락(노래 선율을 그대로 따라가는 방식)으로 반주하는 시조, 가사와 달리 각 악기별 반주 악보가 갖추어져 있다는 점도 글이나 악보를 쓰는 이들이 즐겼을 것이라는, 가곡만의 격조를 보여준다. 노래와 악기가 어느 하나 도드라지지 않고 유기적인 조화를 이루는 것, 이것이 가곡이 지닌 최고의 미덕이다.
※ 정진용은 대금연주자이자 선릉아트홀의 무대감독이다. ER 이코노믹리뷰 연재 칼럼 ‘우리 음악 쉽게 듣기’에서는 현장에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초심자가 국악을 더 쉽게 즐기는 방법을 소개하고 감상할만한 곡을 추천한다. |
필자가 진정한 쉼과 여유가 필요할 때 찾게 되는 국악곡이 있다. 바로 가곡이다. 노랫말을 알고는 있지만, 단순히 선율만을 흥얼대며 복잡한 생각을 멈출 수 있게 하는 묘한 힘을 지니고 있다.
흔히 가곡이라 하면 서양의 성악곡(Lied)을 떠올리지만, 우리 전통 가곡은 한국의 시조시를 가사로 삼아 거문고, 가야금, 대금, 피리 등 관현악 반주에 맞춰 부르는 성악곡을 말한다. 2010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가곡은 선비들의 풍류 문화의 정수로 꼽힌다.
본래 상류 사회에서 향유하던 예술이었던가곡은 민속악과 달리 감정을 쏟아내기보다 차분히 앉아 이를 다스리고 정제하여 표현한다. 시조, 가사와 함께 '정가'로 분류되지만, 다른 정가와 달리 반드시 관악기, 현악기, 장구가 하나씩은 포함되는 관현악 반주를 갖추어야 하는 것이 특징이다. 수성가락(노래 선율을 그대로 따라가는 방식)으로 반주하는 시조, 가사와 달리 각 악기별 반주 악보가 갖추어져 있다는 점도 글이나 악보를 쓰는 이들이 즐겼을 것이라는, 가곡만의 격조를 보여준다. 노래와 악기가 어느 하나 도드라지지 않고 유기적인 조화를 이루는 것, 이것이 가곡이 지닌 최고의 미덕이다.
역사적으로 가곡은 조선 전기부터 지식층의 심신 수양과 더불어 유희를 위해 애호되었다. 조선 초기의 아주 느린 <만대엽>으로 시작하여 당시의 중간 속도인 <중대엽>은 시간이 흐르며 사라졌고, 현재는 빠른 속도의 <삭대엽>에서 파생된 곡들이 남아 한 바탕을 이룬다. 빠른 속도라고는 하지만 현대에 듣기엔 충분히 여유롭다. 이러한 <삭대엽>이 오늘날 남창 26곡, 여창 15곡으로 구성된 총 41곡의 가곡으로 전해졌으며, 16박 또는 10박의 장단과 우조, 계면조에 따라 남녀가 노래를 한 곡씩 주고받으며 스물일곱 곡의 연곡으로 연행되기도 한다.
가곡은 어떻게 감상하면 좋을까?
가곡은 시조시를 노랫말로 쓰지만, '태산'이라는 단어를 '타으이/산'과 같이 한 글자를 수십 초 동안 길게 늘이거나 분절하여 부르기 때문에 노랫말인 시조를 알고 있지 않는 이상 지금 노래하고 있는 것이 어떤 노랫말인지 곧바로 알아듣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는 언어의 전달보다 소리 자체가 그리는 유려한 곡선에 집중하게 하려는 의도라고 본다. 기존 시조가 가졌던 언어적 구조를 가락으로 해체하여 마치 추상적인 풍경화처럼 재구성하는 과정을 따라가 보길 권한다. 노랫말의 의미가 사라진 자리에 남는 순수한 음율의 높낮이로 표현하는 가락의 질감과 흐름을 만끽하는 것이 가곡 감상의 큰 즐거움이다.
가곡은 느린 호흡을 지니고 있지만 결코 느슨하게 들리지는 않다. 느린 장단 안에는 무너지지 않는 단단한 구조가 있기 때문이다. 화려한 기교나 장식보다는 단정하고 깊이 있는 성음을 지향하며, 소리꾼이 긴 호흡을 유지하며 음을 밀고 당기는 힘과 고수가 장단을 맺고 푸는 순간의 일치감은 치열한 에너지를 응축하고 있다. 이러한 내면의 긴장을 포착하는 순간 가곡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오늘 추천하는 작품은 김호성 명인의 <남창가곡 우조 초수대엽 '동창이'> 이다. 남자가 부르는(남창) 가곡이고, 우조이며 처음 부르는 자진한잎(초수대엽) 이라는 뜻이다. 여유로운 장단의 가곡 첫 곡을 명인의 구성진 시김새로 가만히 듣고 있다보면 소치는 아희놈이 된듯한, 여유로운 기분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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