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트 램프 바누 무슈타크 지음 | 김석희 옮김
열림원 | 316쪽 | 1만9000원
열림원 | 316쪽 | 1만9000원
바누 무슈타크는 <하트 램프>에서 종교적 이유로 차별의 대상이 되는 남인도 여성들의 일상을 ‘할머니-엄마-딸’로 이어지는 관계 속에서 포착해 그려낸다. 열림원 제공 |
“나는 당신 영혼의 작디작은 한 조각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그런 나도 당신에게 요구할 권리가 있지 않나요?” 한 여성이 신을 부르며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시작한다. 결혼을 앞두고 집을 떠나기 전, 엄마는 여성에게 말했다. “그는 너에게 신이야.” 여성은 받아들인다. “나의 새 이름이 뭔지 아세요? 그의 아내예요.” 불행히도 남편의 소유물 혹은 하녀처럼 기능하던 여성은 끝내 버려진다. 엄마는 불행한 딸을 집으로 데려오기 위해 먼 길을 떠났다 사고로 죽는다. 병든 여성은 어머니의 죽음도 지키지 못한 채 남편이 새 부인을 데려오던 날, 아이들과 함께 남편의 집에서 내쫓긴다. 여성은 말한다. “오 주여, 한번 여자가 되어 보세요!”
2025 인터내셔널 부커상 수상작인 바누 무슈타크의 <하트 램프> 수록작 ‘오 주여, 한번 여자가 되어 보세요’의 이야기다. 단편집으로는 사상 첫 인터내셔널 부커상 수상작품이 된 이 책에는 남인도의 가부장적인 이슬람 문화를 배경으로 한 소설 열두 편이 담겼다. 특히 종교적 이유로 차별의 대상이 되는 여성들의 일상을 ‘할머니-엄마-딸’로 이어지는 관계 속에서 포착해 그려낸다.
단편집으론 첫 인터내셔널 부커상
남인도 가부장적 이슬람 문화 배경
종교적 이유로 차별받는 여성 일상
할머니·엄마·딸 관계 속에 그려내
어머니 세대가 사회와 신에게 분노조차 표출하지 못하고 그저 인내했다면, 소설 속 여성들은 세상이 무언가 잘못돼 있음을 깨닫고 신에게 항변한다. “단순한 인간을, 당신은 가래를 뱉는 것처럼 쉽게, 압박감을 덜기 위해 오줌을 누는 것만큼 쉽게 창조해 놓고, 지금은 아예 관심도 없네요.” “나는 당신의 불완전한 창조물이기 때문에 그가 당신의 이름으로 이런 짓을 한다는 거예요.”(‘오 주여, 한번 여자가 되어 보세요’ 중) 하지만 항변이 닿는 곳은 아직 허공의 어딘가일 뿐이다.
표제작 ‘하트 램프’ 속 여성은 대학에 합격했지만, 오빠들을 비롯한 가족들의 반대로 어린 나이에 남편과 결혼한다. 자녀를 낳고 십수 년 함께했지만 남편은 외도로 가정을 떠났다. 다시 친정으로 돌아간 날, 여성의 오빠들은 말한다. “너한테 우리 집안의 명예를 떠받칠 정도의 분별이 있다면, 분신자살을 했겠지. 넌 여기 오지 말았어야 해.” 고립감에 사무친 채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는 여성을 만류하는 것은 여성이 죽고 나면 엄마에 이어 가정 내 어른 여성의 의무를 감당해야만 하는 어린 딸뿐이다.
이야기들은 극적인 사건에 의해 진행되기보다 일상을 따라 진행되는데, 이 일상의 분위기 자체가 억압적이고 불평등한 구조 위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자체적인 긴장감이 형성되는 것이 특징이다. 인도 무슬림 가정에서 자란 저자가 일상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것들이 소설에 현실감 있게 녹아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작가는 1943년 인도 남서부 카르나타카주에서 태어났다. 부유하고 진보적인 가정에서 자란 덕분에 계급과 종교로부터 파생된 차별적 사회 분위기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성장했다. 1970년대 인도 남서부 지역에서 시작된 저항문학 운동 ‘반다야 사히티야’의 영향을 받았다. 문학을 통한 사회 변화를 꿈꿨던 반다야 사히티야 운동은 카스트 제도를 비판하고 가부장제와 여성 차별에 반대하는 실천적 글쓰기 운동이었다. 작가는 이후 자신의 고향인 카르나타카에서 주로 글을 쓰며 사회운동가이자 변호사로도 활동했다. 글은 주로 카르나타카 지역어인 칸나다어로 썼는데 <하트 램프> 원작에 실린 열두 편의 글 역시 칸나다어로 쓰였다.
지금도 세계 몇몇 국가는 특별한 조건을 두고 무슬림들에게 일부다처제를 허용한다. 이슬람 율법에 나온 약식 이혼법인 일명 ‘트리플 탈라크’(Triple Talaq), 즉 남편이 ‘이혼’이라는 말을 세 번 외치면 여성의 의사와 상관없이 약식으로 이혼이 성립되는 사례도 허다하다. 부르카를 쓰지 않았다고 가족 내 여성을 죽이는 ‘명예 살인’ 사건은 잊을 만하면 가벼운 ‘해외 토픽’성 뉴스로 등장한다. 소설은 우리는 그저 한 번 보고 혀를 차며 잊을지도 모르는 이 같은 ‘뉴스’를 삶에서 온 평생 보고 들었을 이들의 이야기다.
다만 단순한 비극은 아니다. 이야기들은 오로지 무겁지만은 않다. 원가족과 어머니에 대한 향수, 사회상을 비튼 유머, 간단한 소등극 등이 풍부함을 더한다. 인물들이 종국에 맞이하는 지점이 비록 고통에 가깝기는 하지만, 이 고통이 완전한 파국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시작의 의지를 보여주는 듯도 하다.
고희진 기자 go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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