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냥이로 사회학 하기
권무순 지음
오월의봄 | 316쪽 | 2만4800원
권무순 지음
오월의봄 | 316쪽 | 2만4800원
<길냥이로 사회학 하기>는 길고양이를 둘러싼 과학적 논쟁, 행정 정책, 시민 갈등, 활동가의 실천을 하나의 연결망으로 그리며, 사회가 인간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을 제시한다.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길고양이들은 때로 인간과 협력하고 기대를 배신하며 도시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간다. 오월의봄 제공 |
“고양이는 모든 정치가 인간에 의한 인간의 정치라는 교리를 깨뜨리러 이 세상에 왔다.” <길냥이로 사회학 하기>는 이러한 선언적 문장으로 끝맺는다. 제목부터 아리송한 이 책은 “고양이를 소재로 과학 이야기를 매우 재밌게 풀어낸 학술 에세이다.”
과학기술학 연구자인 저자의 석사 논문을 바탕으로 자유분방하게 사유를 엮어낸 이 책은 형식부터 남다르다. 글쓴이의 회고가 담긴 에세이면서 사회의 작동 방식을 들여다보는 학술서로도 읽히고, 80여장의 고양이 도판이 들어 있는 사진집이기도 하다. 학술적 글쓰기가 대개 이론적 논의로부터 시작하는 것과 반대로 고양이를 둘러싼 여러 논의를 거쳐 이론적 함의를 도출하는 전개 방식도 독특하다. 저자는 고양이와의 첫 만남, 연구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와 같은 사적인 이야기들로부터 출발해 ‘과학의 불확실성’을 드러내는 데 이어 길고양이를 정치적 협상 능력을 갖춘 능동적 주체로 재정의하는 데 이른다. 이게 뭔 소리인가 싶은데, 읽다보면 나름 흥미로운 독서 경험을 준다.
저자는 ‘길고양이 중성화사업(TNR)’을 집중적으로 파헤치며 논지를 전개해간다. TNR은 ‘Trap(포획)-Neuter(중성화)-Return(돌려놓기)’의 약자로, 길고양이를 포획해 중성화한 후 귀 끝을 살짝 잘라 표시해 포획한 장소에 다시 풀어주는 개체 수 관리 프로그램이다. 최근 길고양이를 둘러싼 갈등이 잔혹한 학대와 법적 다툼으로까지 이어지면서 개체 수 관리가 필요하다는 주장 자체는 지지를 얻고 있다.
TNR 찬성 측에선 살처분은 비인도적인 데다 길고양이를 모두 잡아 죽이면 다른 지역의 길고양이가 빈 영역을 차지하기 위해 다시 유입되어 개체 수 조절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하지만 고양이는 야생동물을 공격해 생태계를 위협하고, 정책을 10년 넘게 펼쳤는데도 효과가 없다는 반대 주장도 있다.
여기서 저자의 시선은 TNR의 효과성이 아니라 그 너머 TNR을 둘러싼 행위자들의 상호작용에 가 있다. 이를테면 TNR 효과에 대한 과학 논문을 검토한 끝에 “찬/반 두 집단은 결국 다소 폐쇄적인 그들만의 인용 네트워크 속에서 연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춘다. 또한 TNR 사업을 가장 적극적으로 시행하는 지자체인 서울시의 ‘길고양이 서식현황 모니터’가 실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도 꼼꼼하게 짚어낸다. 발표만 보면 최대 개체 수가 2015년 20만3615마리에서 2023년 10만982마리로 줄었다고 한다. 조사 방법을 살펴보니 관찰 대상 지역을 아파트/비아파트, 용도지역(주거, 상업, 녹지 등)으로 분류했는데, 당장 현장에서 세어본 개체 수와도 큰 괴리가 있었다. 어떤 가정을 택하느냐에 따라 계산법이 달라질 뿐 아니라 결과도 달라진 것이다.
고양이 소재의 과학 학술 에세이
중성화 사업 중심으로 논지 전개
‘그들만의 인용 네트워크’ 속에서
논쟁 중인 찬·반 두 집단 보여줘
인간 중심적 사회학 해체 시도
‘수동적 대상’ 길냥이 인식 거부
활동가 통한 간접 민주주의 상상
저자가 TNR에 대한 분석을 통해 드러내는 것은 ‘과학이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앞선 검토에서 보듯 과학(TNR)이라는 것은 논쟁을 통해 만들어져가는 것이고, 활동가·연구자만이 아니라 지역주민, 심지어 고양이까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사회적 맥락을 구성해간다. 결국 ‘과학적으로 불확실’한 TNR은 관련한 사람들의 실천에 크게 의존하게 된다. 저자는 서울의 한 ‘고양이마을’에서 현장 연구에 나서 활동가와 전문가, 비전문가 등의 TNR에 대한 인식·대응을 지식의 생산 방식 그리고 과학적 사실의 구성에 관한 통찰과 엮어간다.
이를 꿰어내는 이론적 토대는 최근 기후위기, 팬데믹, 인공지능(AI) 등 사회 현실과 맞물려 지식 논의의 최전선에 있는 프랑스 학자 브뤼노 라투르(1947~2022)의 ‘행위자-연결망 이론(ANT)’이다. ANT는 사회·과학·기술·정치가 사람만이 아니라 비인간 존재까지 아우르는 연결망 속에서 함께 만들어진다고 보는 관점이다. 과학기술학을 토대로 저자는 길고양이를 수동적 대상이 아니라 인간과의 외교적 협상 능력을 갖춘 ‘정치적’ 주체로 재정의한다. 사람이 집 안에서 ‘고양이 집사’를 자처하고, 마을에서 TNR을 위해 회유에 나서는 데서 보듯, 고양이는 인간의 행동을 변화시키고 관계를 재조정하는 정치적 행위를 한다고 볼 수 있다. 저자는 인간들이 대표자를 선출해 민의를 반영하듯이, 고양이들도 활동가들을 통해 간접민주주의를 할 수 있다는 공존을 위한 상상력을 펼친다.
사회학은 인간과 그 집단을 탐구하는 학문인데, 이 책은 ‘길냥이’를 통해 인간중심적 사회학을 해체하고 새로운 정치사회학을 탐구한다. 때로 난삽할 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인간과 비인간의 공존을 고민하는 독자들에게 폭넓은 사유를 제공할 수 있는 책이다. 무엇보다 고양이 사진들이 무척 귀엽다.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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