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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기린-코끼리는 없어요…‘사람에게 불친절한 동물원’의 수의사

동아일보 청주=김소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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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기린-코끼리는 없어요…‘사람에게 불친절한 동물원’의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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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충북 청주시 청주동물원 동물병원에서 만난 김정호 수의사가 평소 병원에 전시하는 사자 인형을 수술대 옆에서 어루만지고 있다. 그는 이 수술대에서 ‘갈비 사자’로 유명한 바람이의 딸 구름이를 수술하기도 했다. 청주=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19일 충북 청주시 청주동물원 동물병원에서 만난 김정호 수의사가 평소 병원에 전시하는 사자 인형을 수술대 옆에서 어루만지고 있다. 그는 이 수술대에서 ‘갈비 사자’로 유명한 바람이의 딸 구름이를 수술하기도 했다. 청주=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충북 청주시에 있는 청주동물원엔 동물원 하면 떠오르는 기린이나 코끼리가 없다. 대신 부리 휜 독수리와 노쇠한 사자, 웅담 채취 농장에서 구조된 곰이 있다. 내실로 향하는 문이 늘 열려있어, 동물은 원할 때만 방사장에 나가는 점도 다르다. 관람객은 보고 싶던 동물을 못 보고 갈 수도 있다. 사람에겐 다소 불친절하지만, 동물에겐 가장 친절한 동물원 아닐까.

이 동물원의 진료사육팀장이자 25년 차 수의사인 김정호 씨(52)를 19일 동물원에서 만났다. 그는 8일 자신의 경험을 담은 에세이 ‘아프다고 말해주면 좋겠어’(어크로스)를 펴냈다. 책의 부제는 ‘상처 입은 동물들을 구조하며 써내려간 간절함의 기록’이다.

작은 시립동물원인 이곳이 전국에 알려진 건 ‘갈비 사자’ 바람이가 계기였다. 바람이는 경남 김해의 한 개인동물원에서 ‘먹이 주기 체험용’으로 기르던 노령의 수사자. 7년 동안 시멘트 바닥의 공간에 갇혀 지내며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모습이 알려져 공분이 일었다. 2023년 김 수의사가 구조한 뒤 청주동물원에서 평온한 여생을 보내고 있다.

“경상도에서 가족과 함께 올라온 할머니 한 분이 계셨어요. 바람이를 보며 마치 거울 속 자신을 대하듯 말을 거시더라고요. 요즘은 그렇게 연세 드신 분들이 일부러 찾아오시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동물과 사람의 노년이 겹쳐 보이는 순간이죠.”

에세이 ‘아프다고 말해주면 좋겠어’ 낸 청주동물원 김정호 수의사.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에세이 ‘아프다고 말해주면 좋겠어’ 낸 청주동물원 김정호 수의사.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일반적인 동물원에선 동물이 늙거나 장애가 생기면 관람객의 시선에서 벗어난 뒤편으로 옮겨져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청주동물원은 이런 관행에서 벗어났다. 동물의 생로병사, 특히 삶의 후반부를 숨기지 않는다. 김 수의자는 “동물원 안에 세상을 떠난 동물들의 이름을 새긴 추모관도 있다”며 “사육사는 ‘동물복지사’로 불린다”고 했다.

방사 훈련장도 있다. 독수리 방사 훈련장은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 활공이 가능한 거의 유일한 공간이기도 하다. 동물원이 동물을 ‘볼거리’로 전시하는 공간이 아니라, 갈 곳 없는 동물의 보호소이자 야생동물 재활치료소로 정체성을 바꾼 것. 이에 국내 최초로 2024년 동물 종 보전·증식 과정 운영 등의 역할을 수행하는 ‘거점동물원’으로 지정됐다.


웅담 채취용 곰부터 야생성을 잃은 산양까지. 김 수의사가 구조에 관여한 동물들은 모두 ‘식구’로 지낸다. “아픈 동물들의 ‘노아의 방주’ 같다”고 하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제가 먼저 나선 건 아니에요. 주변에서 알려주셔서 알게 됐고, 제가 마음이 안 불편하려고 하는 일이에요. 그냥 수의학이 좋았던 사람인데, 하다 보니 생각이 바뀐 거죠.”

동물원 한편에는 ‘사람사’란 공간도 있다. 2년 전까지 스라소니가 살던 우리인데, 관람객이 직접 들어가 볼 수 있다. 안내판엔 ‘호모 사피엔스’란 학명이 적혀있다. 김 수의사는 “동물원 한 바퀴 도는 데 1시간 남짓 걸린다”며 “그 잠깐을 위해 동물들은 저런 공간에서 평생 살아야 한다는 걸, 몸으로 한번 느껴보셨으면 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인기 동물도 없고, 동물을 맘대로 볼 수도 없는 동물원. 하지만 최근 관람객은 오히려 늘었다고 한다. 동물복지 우선 원칙이 알려지며 “동물은 좋아하지만 동물‘원’은 불편했던” 이들이 전국에서 찾아온다. 동물원은 충북 지역 교사들을 대상으로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선생님 한 분이 동물을 제대로 이해하면, 그 영향이 수많은 학생들에게 전해져요. 동물을 대하는 태도와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약자를 대하는 마음 같은 게 자연스럽게 길러지지 않을까요?”

청주=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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