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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이란 벼랑 끝에서 무대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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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이란 벼랑 끝에서 무대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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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서울문화재단, 전국 첫 ‘졸업예정자 지원사업’으로 뜻깊은 도전

지난 16일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 서울연극창작센터 1층에 모인 부엉왈츠팀. 왼쪽부터 이효제, 김세린, 황인석, 안유리, 곽유신씨. 서울문화재단 제공

지난 16일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 서울연극창작센터 1층에 모인 부엉왈츠팀. 왼쪽부터 이효제, 김세린, 황인석, 안유리, 곽유신씨. 서울문화재단 제공


오는 2월에도 여느 해처럼 예술대학 졸업자 7만3천여 명이 사회로 쏟아져 나온다. 이들 중 연극, 영화, 무용 등 공연예술 전공자들은 2만5천 명 전후에 이르지만, 전공 특성상 이들 대부분은 빈손이다. 4년간 쏟아부은 등록금과 수많은 연습 시간은 희망과 불안의 교차점 위에서 흩어지고, 졸업과 동시에 학생이라는 울타리는 사라져 이들은 ‘백수 예술가’가 되어 광활한 현실의 바다에 던져진다.

악기를 전공했든, 춤을 추든, 무대 위에서 연기하든 이들에게 사회는 ‘경력직’만 찾는 냉정한 오디션장이다. 이제 막 알을 깨고 나오려는 이들에게 “어떤 경험을 갖췄나”라고 묻는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청년 공모전이 없지 않지만, 자격 요건이 만 39살까지 열려 있어 졸업을 앞둔 이들보다 훨씬 많은 경력을 갖춘 선배들이 기회를 채어가기 십상이다.

이런 막막함을 잘 알던 연극연출가 출신으로 대학 강단에도 섰던 송형종 서울문화재단 대표는 지난해 1월 취임하자 완전히 새로운 제안을 내놨다. “졸업 예정자들의 첫 무대를 위해 우리가 판을 만들어주면 어떨까.”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지난해 11월 공모를 시작한 ‘2026 서울 커넥트 스테이지’ 사업이다. 그리고 27개 팀이 선정됐다. 서울&은 그중 한 팀이자 오는 29일부터 30일까지 공연을 앞둔 ‘부엉왈츠’ 팀을 지난 16일 연습 현장에서 만났다.

병원 직원, 식당 서빙 등 ‘투잡’으로 지키는 배우의 꿈

청년들은 한겨울의 기온만큼이나 차가운 현실 속에 있지만 미래의 꿈을 키우며 공연 준비로 열정만큼은 뜨거웠다. 한양대 연극영화학과 졸업 및 예정자들로 구성된 극단 부엉왈츠의 팀원 19명은 이번 ‘2026 서울 커넥트 스테이지’의 마무리 작인 ‘현실도피자’를 준비하고 있다.

연기를 전공한 졸업생으로 이번 공연에 참여하는 황인석씨는 이른바 ‘경력 단절’의 공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졸업 뒤 1년 동안은 아무것도 못했습니다. 오디션 기회조차 없었죠. 집에서 영화를 보는데 ‘내가 연기하는 법을 잊어버리면 어떡하지’라는 공포가 밀려오더군요. 정신을 차리고 당장 생계를 위해 병원 원무과 직원으로 취업해 일하며 연기자 길을 모색했습니다. 공연이 생기면 원장님께 사정해서 근무 시간을 조정하고 달려갔죠. 제 동기들 절반은 이미 연기를 아예 그만두고 전공과 완전히 다른 길로 갔죠.”


황씨의 말처럼 예술 전공자들에게 ‘전업 예술가’의 길은 좁은 문이다. 팀원 김세린씨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다. 그는 대학 재학 시절부터 해오던 식당 서빙 아르바이트를 졸업하고서도 지금까지 6년째 이어오고 있다.

“오전에 식당에서 서빙하고, 오후에는 학교 선배를 따라다니며 음향 일을 돕고, 저녁에는 연습실로 옵니다. 몸은 부서질 것 같지만, 무대에 서는 순간만큼은 ‘진심’이 되니까요. 식당에서 짓는 ‘서비스용 미소’와 제가 좋아서 연기하는 순간의 미소는 다르더라고요.” 다른 팀원들도 종류만 다를 뿐이지 온갖 종류의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이 준비 중인 작품 ‘현실도피자’는 서울 지하철 2호선을 배경으로 한 창작극이다. 지하철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해 피자 상자를 갑옷 삼아 현실과 싸우는 알바생 ‘기호태(돈키호테)’와 기관사 ‘최산(산초)’의 이야기를 담았다. 작품 속 주인공들이 피자 상자로 세상과 맞서듯 이 청년들은 ‘아르바이트’와 ‘열정’을 갑옷 삼아 예술계라는 거친 전장에 뛰어든 셈이다.


“40대 선배와 경쟁”…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다

예술 분야에 이토록 치열하게 사는 청년들을 위한 지원 제도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기존 예술 지원 제도에는 너무나 높은 벽이 있다. 대부분의 청년 예술 지원 사업은 ‘만 39살 이하’를 대상으로 한다.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20대 초반의 사회초년생들이 현장에서 10년 넘게 잔뼈가 굵은 마흔 살 전후의 베테랑들과 경쟁해야 하는 구조다. 이번 공연의 연출을 맡은 안유리씨는 현장 상황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청년 지원 공모전에 지원서를 내려면 경력란부터 막힙니다. 저희는 기껏 학교 공연 몇 개가 전부인데 경쟁자들은 프로 무대 경험이 수두룩하니까요. 경험 많은 선배들과 경쟁해야 하는 셈이죠. 청년 지원 사업이라지만, 갓 졸업한 저희 같은 ‘찐’ 청년들로서는 문턱을 넘기 쉽지 않습니다.”

서울문화재단의 ‘2026 서울 커넥트 스테이지’가 주목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사업은 지원 자격을 ‘대학 졸업 예정자’ 혹은 ‘갓 졸업한 예비 예술가’로 한정했다. 졸업 예정자가 전체 팀원의 3분의 2를 넘어야 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고 비슷한 출발선에 선 동료들과 경쟁할 수 있는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기 시작한 것이다.


안유리씨는 “지난해 졸업 뒤 학생 동료들과 헤어지기 싫어 9월에 극단까지 만들었지만 막막해서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이었다”며 “11월 이 지원 사업 공고를 보고 ‘우리 같은 초짜들도 지원해볼 유일한 기회’라는 생각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지원했다”고 털어놓았다.

공연장에다 비용 지원까지…“그 정도면 큰 지원”

이번 지원 사업에서 선정된 27개 팀은 공연장 제공은 물론 최대 500만원의 비용도 받는다. 나아가 공연에 필요한 전문 인력도 포함했다. 부엉왈츠 팀의 대표이자 주연 배우인 곽유신씨는 지원 내용을 처음 접했을 때 뜻밖이라 놀랐다고 했다.

지난 12일 서울 서대문구 청년예술청에서 열린 ‘2026 서울 커넥트 스테이지’ 사전 워크숍 ‘떨림, 이음’ 행사에서 송형종 서울문화재단 대표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서울문화재단 제공

지난 12일 서울 서대문구 청년예술청에서 열린 ‘2026 서울 커넥트 스테이지’ 사전 워크숍 ‘떨림, 이음’ 행사에서 송형종 서울문화재단 대표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서울문화재단 제공


“재단이 우리를 예술가로 대우해주니 인정받는 느낌”

27개 팀 선정 장르별 공연무대 올라
무대는 물론 홍보 마케팅까지 지원


“공연장만 빌려줘도 감지덕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재단에서 홍보 마케팅을 대신 해주고 조명과 무대 셋업을 도와줄 전문감독들까지 붙여주시더군요. 우리끼리 돈을 모아서 했다면 알바 시간을 두 배로 늘려야 하고 연습은 반으로 줄었을 겁니다. 무엇보다 ‘재단이 우리를 학생이 아닌 예술가로 대우해주는구나’라는 인정받은 느낌이 들어 포기하지 않을 힘을 얻었습니다.”

서울문화재단은 선정된 예비 문화예술인들이 서로 장르를 초월해 시너지를 모색하도록 하기 위해 네트워킹 기회를 만들었다. 지난 12일 서대문구 충정로에 자리 잡은 청년예술청에서 열린 워크숍 ‘떨림, 이음’이 그 행사다. 사회 진출을 앞두고 두려움에 떨릴테지만 서로 소통하며 함께 문화예술의 길을 걷자는 뜻이다. 이날 워크숍에서는 장르가 다른 청년 예술가들이 모여 서로를 ‘학생’이 아닌 ‘동료 예술가’로 호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강훈구 연출가와 이루다 안무가 등 선배 예술가들도 참석해 후배들의 첫걸음을 응원했다.

‘넥스트 아티스트 27’…청년 손을 잡고 동행

서울문화재단은 이번에 선정된 27개 팀 169명의 청년을 ‘넥스트 아티스트 27’(Next Artist 27)로 명명했다. 매년 배출되는 4만여 명의 예술 전공자 중 80%가 현장을 떠나는 현실 속에서, 공공이 나서서 이들의 ‘첫 무대’를 책임지고 현장으로 연착륙시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재단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문화재단 사업이 시작되는 3월이 아닌, 졸업 시즌인 1~2월을 사업 기간으로 잡은 것도 청년들의 공백기를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이라며 “단순한 지원을 넘어, 예술가로서의 성장을 공공이 함께 책임지는 ‘동행’의 모델을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공연을 앞두고 오는 26일 열리는 개막식에서는 아주 특별한 ‘입단식’이 열린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박상원 서울문화재단 이사장이 참석해 청년 예술가들에게 서울의 아침을 상징하는 노란색 유니폼을 입혀줄 예정이다. 프로 스포츠 선수가 구단에 입단하듯, 서울시가 이들을 ‘서울의 예술가’로 영입한다는 상징적인 의식이다.

송형종 서울문화재단 대표는 “우리는 누가 뽑혔는가보다 이들이 누구와 함께 무엇을 만들기 시작했는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서울문화재단이 예비 예술가들의 가장 든든한 첫 관객이자 동료가 되겠다”고 밝혔다.

졸업이라는 벼랑 끝에서 만난 소중한 첫 무대. ‘부엉왈츠’를 비롯한 27개 팀의 공연은 오는 29일부터 2월13일까지 장르별로 다른 공연장에서 첫 공연을 펼친다. 이제 막 피어나는 이 청년들의 열정에 서울 시민들이 박수로 화답할 차례다.

하변길 기자 seoul0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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