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찬의 새 음반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리뷰
오는 2월 발매 예정인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새 음반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미리 들을 기회가 있었다. 첫 아리아가 울려 퍼지는 순간부터 이 연주가 어디로 향하는지 분명했다. 굴드의 명징함을 따르기보다 냉철한 질서와 뜨거운 서정을 같은 호흡에 담아내는 해석이었다.
1741년에 출간된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한 곡의 아리아에서 출발해 30개의 변주를 거친 뒤 다시 아리아로 돌아오는 순환 구조로 이뤄져 있다.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표면에 드러나는 선율만이 아니다. 32마디 베이스라인과 화성적 골격이야말로 각 변주를 관통하는 공통의 뼈대다. 특히 3변주부터 세 변주마다 등장하는 카논(3·6·9…27변주)은 모방 간격을 1도에서 9도까지 점진적으로 확장하며 작품 전체에 치밀한 논리적 건축미를 부여한다.
본래 이단 건반 하프시코드를 위해 쓰인 이 대작은 오랫동안 문헌 속에 잠들어 있었다. 20세기 초 완다 란도프스카가 하프시코드로 그 생명력을 복원했다면, 글렌 굴드는 피아노 특유의 타건으로 하프시코드의 명징한 아티큘레이션을 번역해 내며 현대적 해석의 전형을 세웠다. 굴드가 설정한 이 혁명적 좌표는 이후 모든 피아니스트에게 거부할 수 없는 중력장이자 반드시 넘어서야 할 거대한 벽이 되었다.
1741년에 출간된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한 곡의 아리아에서 출발해 30개의 변주를 거친 뒤 다시 아리아로 돌아오는 순환 구조로 이뤄져 있다.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표면에 드러나는 선율만이 아니다. 32마디 베이스라인과 화성적 골격이야말로 각 변주를 관통하는 공통의 뼈대다. 특히 3변주부터 세 변주마다 등장하는 카논(3·6·9…27변주)은 모방 간격을 1도에서 9도까지 점진적으로 확장하며 작품 전체에 치밀한 논리적 건축미를 부여한다.
2월 6일 발매 예정인 임윤찬의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앨범 |
본래 이단 건반 하프시코드를 위해 쓰인 이 대작은 오랫동안 문헌 속에 잠들어 있었다. 20세기 초 완다 란도프스카가 하프시코드로 그 생명력을 복원했다면, 글렌 굴드는 피아노 특유의 타건으로 하프시코드의 명징한 아티큘레이션을 번역해 내며 현대적 해석의 전형을 세웠다. 굴드가 설정한 이 혁명적 좌표는 이후 모든 피아니스트에게 거부할 수 없는 중력장이자 반드시 넘어서야 할 거대한 벽이 되었다.
이후 굴드의 그늘에서 벗어나려는 수많은 시도가 이어졌다. 유연한 템포와 낭만적인 음색, 깊은 페달링과 과감한 루바토가 동원되었으나 작품 고유의 엄격한 구조는 해석자의 과도한 개입을 쉽게 허용하지 않았다. 자칫 정서적 색채를 강조하다 보면 구조적 균형이 무너지고 개별 변주의 표정에 함몰되다 보면 전체를 관통하는 유기적 흐름을 놓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임윤찬의 해석은 바로 이 지점에서 독창적인 선택을 감행한다. 그는 작품에 선명한 낭만성을 부여하면서도, 그 뜨거운 정서가 어떤 질서 속에서 발현되는지를 치밀하게 추적한다. 예를 들어 13변주에서 그는 명징하고 건조한 타건에서 벗어나 악기의 공명을 유연하게 다루며 성악적 ‘칸타빌레’의 본질을 들려준다. 선율의 모서리를 부드럽게 감싸는 미묘한 음영의 변화는 첫 아리아의 잔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처럼 그의 연주에서 상이한 성격의 변주들은 결코 파편화되어 흩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앞선 변주가 던진 질문에 뒤따르는 응답이 정교하게 맞물리듯, 곡과 곡 사이에는 긴밀한 유기적 서사가 흐른다. 청중은 다음 변주가 ‘어떻게 달라질지’를 예측하기보다, 지금 흐르는 문장이 ‘어떻게 이어질지’를 그저 숨죽여 따라가게 된다. 이러한 선형적 연속성은 악보를 고정된 규범이 아닌, 매 순간 연주자의 숨결로 다시 써 내려가야 할 생동하는 대본으로 대하는 그의 태도에서 비롯된다.
이상권 음악평론가 |
어쩌면 이 음반이 정식 공개된 후에 바흐의 엄격한 구조를 신성시하는 일부 전통주의자들은 이번 해석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런 논쟁 자체가 임윤찬이 이 작품의 지평을 넓혔다는 증거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살아 있는 고전은 늘 새로운 언어를 요구하고 그 언어가 도착하는 순간 잠들었던 질문들이 비로소 다시 깨어난다.
“그의 손끝이 오래된 악보를 더듬고 나면, 음악은 처음 숨을 쉬듯 조심스레 우리를 향해 눈을 뜬다.”
이상권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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