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나바머로 알려진 폭탄 테러범 테드 카진스키의 머그샷. 1996년 검거 당시의 모습/로이터=뉴스1 |
1998년 1월 22일 . IQ 167의 수학 천재에서 연쇄 폭탄 테러범으로 전락한 테드 카진스키가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이른바 '유나바머'(Unabomber)로 불리며 세상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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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포 열자 '펑'…17년 동안 16번 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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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5월 미국 노스 웨스턴대학 버클리 크리스트 교수는 발신인에 자신의 이름이 적힌 소포를 받았다. 수상함을 느낀 크리스트 교수는 경찰을 불렀다. 이후 소포를 조사해 달라고 요청한 순간 엄청난 굉음과 함께 소포가 폭발했다. 소포 속에 들어있던 건 다름 아닌 폭탄으로 유나바머의 시작이었다.
약 1년 뒤인 1979년 5월에는 노스 웨스턴 대학교 대학원생 존 해리스가 소포를 개봉하다 부상을 당했고, 같은해 11월에는 시카고를 출발해 워싱턴DC로 향하는 아메리칸 에어라인 보잉444기 우편물 보관실에서 다량의 연기가 발생해 항공기가 비상착륙했다.
그 이듬해에는 아메리칸 에어라인 사장에 4번째 소포 폭탄이 배달됐고 얼굴과 몸에 수많은 파편이 박히는 중상을 입었다.
약 1년 뒤인 1979년 5월에는 노스 웨스턴 대학교 대학원생 존 해리스가 소포를 개봉하다 부상을 당했고, 같은해 11월에는 시카고를 출발해 워싱턴DC로 향하는 아메리칸 에어라인 보잉444기 우편물 보관실에서 다량의 연기가 발생해 항공기가 비상착륙했다.
그 이듬해에는 아메리칸 에어라인 사장에 4번째 소포 폭탄이 배달됐고 얼굴과 몸에 수많은 파편이 박히는 중상을 입었다.
FBI 특별수사팀은 신원 미상의 폭탄 테러범이 대학교와 항공사를 테러 대상으로 삼았다고 해서 대학(university)에서의 앞의 두 철자 'un', 항공사(airline)에서 앞 철자 'a'를 따고 폭탄 테러범(bomber)이라는 단어를 합쳐 '유나바머(Unabomber)'라 불렀다.
1985년 12월에는 유나바머에 의한 첫번째 사망자가 발생했다. 컴퓨터 가게를 운영하던 38살 휴 스크러턴이었다. 1993년에는 광고 회사 버슨&마스텔라 중역 토마스 모서, 1995년에는 길버트 머레이 목재산업 로비협회 회장이 소포 속 폭탄이 터지면서 사망했다.
유나바머는 1978년부터 1995년까지 17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16번의 폭탄 테러를 저질렀고 이로 인해 3명이 사망하고 23명이 다쳤다. 그의 존재는 일상적인 택배 상자가 살상 무기로 변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심어주며 미국 사회를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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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BI 비웃던 유나바머…친동생 제보로 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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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BI의 수사는 17년간 제자리걸음이었다. FBI는 역사상 최다 수사관이 투입하고 책 5만9000권 분량의 정보를 수집했지만 유나바머는 수사에 도움이 될만한 증거를 전혀 남기지 않았다.
터진 폭탄 잔해에서 폭탄 부품 판매처를 발견할 수 있다면 판매처를 추적해 수사를 할 수 있었지만 유나바머는 쓰레기를 재활용해 폭탄을 직접 제조했기 때문에 판매처랄 게 없었다. 유나바머도 폭탄 제조 필수품인 배터리는 구매했는데, 이 배터리도 표면을 다 벗겨내서 제조사를 알 수 없게 만들었다. 전선은 생산이 중단될 걸 사용했고 소포에 붙이는 우표조차 추적이 불가능하도록 아주 오래된 것들만 골라 사용했다.
한 번은 폭탄에서 머리카락 한 올이 발견된 적이 있었다. FBI는 머리카락에 대한 DNA 검사를 실시했고, 체모 주인을 찾았지만 이 사람은 범인이 아니었다. 이는 유나바머가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 공중화장실에서 수집해 넣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나바머 몽타주/사진=FBI |
수사 시작 9년 만에 목격자가 나타났다. 컴퓨터 판매업자 게리 라이트를 노린 12번째 테러 때 근처 가게 안에 있던 직원과 손님이 유나바버를 목격한 것이다.
이들은 유나바머를 키 180㎝ 정도에 붉은 기가 도는 금발을 가진 백인 남성이라고 묘사했다. 이를 바탕으로 만든 몽타주에서 유나바머는 선글라스에 후드티를 눌러쓰고 있었다.
1995년에는 유나바머가 직접 접촉을 해왔다. 그는 뉴욕타임즈, 워싱턴 포스트 등 미국 주요 신문에 자신의 논문을 게재하지 않으면 테러를 계속하겠다고 협박했다. FBI는 회의를 거쳐 그의 논문 '산업사회와 미래'를 신문에 게재했다. 유나바머는 논문에서 기술 발전은 필연적으로 인류 재앙이 될 것이라면서 혁명을 통해 산업사회를 전복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논문이 게재되고 1년 뒤 유나바머는 붙잡혔다. 결정적 전화 한 통 결정적 제보는 한통의 전화였다. 데이비드 카진스키로 당시 그는 수사기관에 "유나바머가 친형인 것 같다"고 했다.
데이비드는 평소에 형이 자주 쓰던 특징적인 표현들을 선언문에서 다수 발견했다면서 "선언문에서 형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고 했다.
FBI는 동생의 신고를 받고 1996년 몬태나주 강가에서 사냥과 채집으로 자급자족 생활을 하던 유나바머를 체포했다. 무려 17년간 베일에 싸여 있던 유나바머 실체는 54세의 천재 수학자 테드 카진스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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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Q 167' 망가진 천재 테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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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카진스키의 모습/사진=SNS 갈무리 |
테드 카진스키는 1942년 시카고의 한 폴란드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테드는 초등학교 때 IQ 167을 기록했고 16세 때는 하버드대 수학과에 입학해 수학 천재로 불렸다. 24세 때인 1967년에는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사상 최연소 수학교수가 됐다. 집안의 자랑이었다. 그런데 돌연 교수직을 사퇴하고 은둔생활을 시작했다. 산속에 은신처를 마련하고 가족이 보내주는 돈에 의지해 삶을 꾸려나갔다.
천재 수학자가 어쩌다 잔혹한 테러범으로 타락했는지를 두고 다양한 분석과 가설이 쏟아졌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력한 가설은 하버드 재학 시절 그가 참여했던 잔혹한 심리 실험이 결정적 계기였다는 것이다.
심리학자 헨리 머레이 주도 하에 이뤄진 이 실험은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 속 실험자 행동을 관찰하는 것을 주된 목표로 3년 동안 이뤄졌다. CIA 취조 방식을 그대로 사용해 실험자들에게 "소신대로 할 용기도 없어 보인다", "본인이 부족한 걸 알고 그걸 감추는데 급급하다" 등 말을 쏟아내는 방식이었다.
동생 데이비드는 "테드는 기만 당했다. 실험자에게는 이미 주어진 대본이 있었고, 자기를 모욕하고 상처주는 것이 그들의 목표라는 걸 몰랐다"며 "형이 당했던 실험을 오늘날 기준으로 본다면 완전히 비윤리적이었다"고 비판했다.
이밖에 뛰어난 지적 능력에 비해 사회성을 기르는 과정이 부족했다는 점, 다양한 삶의 행복을 경험하지 못했다는 점, 어린 나이에 엘리트 학자 사회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을 거란 점 등이 테드를 성공적인 삶이 아닌 은둔생활로 이끌었을 거란 해석이 나왔다.
붙잡힌 테드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테드가 머물던 오두막에서는 폭탄을 제조한 기록, 논문 '산업사회와 미래' 원본, 피해자 선별 목록, 선언문 공개 이후 다음 테러를 계획했던 흔적까지 다수의 증거가 발견됐다. 이후 스스로도 혐의를 인정한 테드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았고 세계 최고 수준 보안이 작동하는 플로렌스 교도소에 수감됐다. 그러다 2023년 6월 감방에서 의식이 없는 채로 발견됐다. 현지 매체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데이비드는 포상금으로 받은 100만달러를 테러 희생자 가족에게 전달하며 형을 대신해 사죄했다.
윤혜주 기자 heyjud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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