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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의 귀환]①트럼프, 반도체 겨눈 '진짜 계산'

비즈워치 [비즈니스워치 강민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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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의 귀환]①트럼프, 반도체 겨눈 '진짜 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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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칩에서 전면 압박으로…반도체 협상 국면
관세는 수단, 목표는 투자…'미국 기여도'가 잣대
선거 앞둔 관세 카드…성과는 '투자 약속'으로 연출
"대만 합의가 기준점…한국 향한 추가 압박 여지도"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 이후 1년. 미국의 관세와 통상 정책은 예상보다 집요하고 강하게 작동해 왔다. 원칙·제도·규범보다 힘의 우위를 앞세운 압박이 반복됐고 반도체를 비롯한 핵심 산업은 여전히 협상 테이블 위에 놓여 있다. 이미 타결된 합의조차 종착점이라기보다 언제든 다시 흔들릴 수 있는 출발점에 가깝다. 트럼프식 관세 정책의 성격과 그 이면의 협상 방식, 한국 정부와 기업이 마주한 구조적 불확실성을 짚어본다.[편집자]

트럼프 행정부가 반도체를 다시 협상 무대 한가운데로 끌어냈다. 특정 품목에 대한 관세 부과를 계기로 반도체 전반을 겨냥한 압박이 재개됐고 관세는 투자 유치와 정치적 성과를 동시에 과시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미·중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반도체는 안보와 선거 전략이 맞물리는 핵심 변수로 부상했다. 그 여파로 한국이 마주한 통상 불확실성도 한층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4일(현지시각) '반도체·반도체 제조 장비 및 파생 상품 수입에 따른 국가 안보 위협 대응' 포고문에 서명했다. 미국의 기술 공급망과 반도체 제조 역량 강화에 기여하지 않는 첨단 반도체 수입품에 25%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이다. 백악관은 팩트시트를 통해 엔비디아의 H200과 AMD의 MI325X 등 일부 AI 가속기를 관세 대상에 포함했다고 밝혔다.

'H200'은 중국을 포함한 일부 국가에 대해 미국 정부의 수출 통제를 받아온 칩이다. 최첨단 블랙웰 계열처럼 전면 차단된 칩과 달리 성능과 용도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수출이 관리돼 왔다. 이번 관세 조치는 이런 관리 체계 위에 추가 비용을 얹는 구조다. 중국 판매를 완전히 막기보다는 허용하되,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익 일부를 미국 정부가 회수하겠다는 설계로 읽힌다.

현재로서는 관세 대상이 일부 AI 반도체에 한정돼 있다. 다만 백악관은 "이른 시일 내 반도체 및 그 파생 상품 수입에 대해 더 광범위한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예고했다. 특정 제품에 대한 조치로 출발했지만 향후 반도체 전반을 협상 대상으로 삼겠다는 신호로 읽히는 대목이다. 법적 근거로 제시된 '무역확장법 232조' 역시 관세 적용 범위를 탄력적으로 확대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결국 관세율 자체보다 활용 방식에 무게가 실려 있다는 진단이 제기된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엔비디아 H200에 붙은 25%는 전통적인 수입 관세라기보다 수출에 부과되는 성격에 가깝다"며 "미국이 중국 수출을 허용하는 대신 엔비디아가 얻는 수익 일부를 국가가 가져가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미국 기업의 반도체 비용을 직접적으로 키우는 조치를 장기간 유지할 유인은 크지 않다"며 "관세율 그 자체보다 이후 협상 국면에서 반도체가 어떻게 활용되느냐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 수출 통제 완화 △세수 확보 △협상력 제고가 맞물린 조치라는 해석이다.


이러한 흐름 속 지난 15일(현지시각) 마무리된 미국과 대만의 반도체 합의는 상징성이 크다. 미국은 대만에 대한 상호관세율을 낮추는 대신 반도체·AI·에너지 분야 전반에 걸친 대규모 대미 투자를 확보했다. 투자 규모에 따라 무관세 물량과 우대 관세를 차등 적용하는 방식이다.

김 교수는 "대만과의 합의는 미국이 반도체 협상에서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하는지를 분명히 보여준 사례"라며 "관세가 아니라 생산 설비와 일자리, 즉 미국 내 기여도가 협상의 잣대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및 대만 대미 무역 합의 내용 비교./그래픽=비즈워치

한국 및 대만 대미 무역 합의 내용 비교./그래픽=비즈워치


"투자 아니면 관세"

실제 트럼프 행정부는 반도체 투자를 사실상 '의무 선택지'처럼 제시하고 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하려는 기업에는 두 가지 선택지만 있다"며 "100% 관세를 내거나 미국에 공장을 짓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관세가 목적이 아니라 투자 유치를 위한 압박 수단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발언이다.


대만과의 합의가 향후 협상의 기준으로 작동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한국은 지난해 한미 관세 협상에서 반도체 부문에 대해 '주요국 대비 불리하지 않은 대우'를 명시했다. 당시 미·대만 협상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불확실성을 차단하기 위한 조항이었다.

다만 김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는 이 조항을 관세율이 아니라 투자 규모의 문제로 재해석할 여지가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이 반도체 관세를 '세율'이 아닌 '미국 내 생산 기여도' 문제로 접근할 경우, 투자 총액 격차가 협상력의 차이로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TSMC가 미국 내 추가 투자를 약속한 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국내 대규모 투자 계획을 병행하고 있어 미국 입장에선 '압박 여지가 있는 대상'으로 비칠 가능성도 있다.

메모리 반도체에 고율 관세가 실제로 부과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 교수는 "메모리는 미국 내 대체 생산이 거의 없는 품목"이라며 "반도체 관세가 부과될 경우 부담은 미국 산업과 소비자에게 돌아간다"고 말했다. 관세 논리로만 보면 메모리 반도체를 직접 겨냥하는 선택은 미국에도 득이 크지 않다는 얘기다.


이러한 기조의 배경에는 반도체를 '안보 자산'으로 인식하는 미국의 시각이 깔려 있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미국은 첨단 공정 기준으로 보면 자국 내 반도체 생산 라인이 매우 부족한 상황"이라며 "AI 반도체는 경제적 가치뿐 아니라 군사적 활용도가 큰 기술인데 이를 뒷받침할 생산 인프라는 거의 없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빠른 추격 역시 미국의 위기의식을 키우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은 반도체 제조 장비부터 메모리 생산까지 전방위적인 자립 전략을 밀어붙이며 공급망 내재화 속도를 높이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중국 웨이퍼 팹에서 국산 반도체 장비 채택률은 이미 35% 안팎으로 정부가 설정한 목표치를 웃돌았다. 식각·박막 증착 등 핵심 공정에서는 국산 장비 비중이 40%를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과 동맹국의 수출 통제 속에서도 중국이 '장비-공정-양산'으로 이어지는 독자 생태계를 빠르게 구축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메모리 분야에서도 중국의 존재감은 빠르게 커지고 있다. 중국 최대 D램 업체 창신메모리(CXMT)는 대규모 기업공개(IPO)를 통해 생산 능력 확대와 글로벌 시장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다. 업계는 CXMT의 글로벌 D램 시장 점유율이 이미 5% 수준에 근접했다고 평가한다. 중장기적으로 두 자릿수 점유율까지 확대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미국의 강도 높은 반도체 규제에도 불구하고 중국 기업들이 기술 축적과 자본 투입을 통해 추격 속도를 높이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경계심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

이 교수는 "중국은 공격적으로 반도체 투자를 늘리며 패권 경쟁에 나섰고 미국은 이를 억제해야 하는 입장"이라며 "최신 공정의 반도체 생산 라인이 미국 본토에 있느냐 없느냐는 전략적으로 큰 차이를 만든다"고 말했다.

트럼프 관세정책 타임라인./그래픽=비즈워치

트럼프 관세정책 타임라인./그래픽=비즈워치


FTA도 뒤집는 트럼프…'끝난 협상'은 없다

미·중 패권 경쟁이 격화되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 협상 방식도 한층 거칠어지고 있다. 제도와 합의보다 힘의 우위를 앞세우는 접근이 반복, 이미 체결된 정부 간 합의조차 정치적 판단에 따라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환경에선 정부와 기업 모두 지난해 합의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공식 협상이 일단락됐다고 해서 불확실성이 해소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처럼 이미 체결된 협정이 존재함에도 트럼프 행정부가 이를 사실상 협상 카드로 꺼내 들고 있다는 점은 통상 질서 전반의 신뢰를 흔들고 있다는 평가다.

정치 일정도 주요 변수다. 트럼프 행정부 2기는 출범 1년을 넘겼고 올해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다. 관세 정책이 정치적 메시지와 성과 연출에 활용되는 이유다. 특히 반도체는 설비 투자부터 생산, 고용 등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산업이다. 지금 투자를 결정하더라도 실제 성과는 임기 말에야 가시화된다. 그럼에도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 압박을 통해 '투자 약속'을 끌어내고 그 약속 자체를 즉각적인 성과로 제시할 수 있다. 단기 성과를 만들기 어려운 산업 구조 속에서 반도체가 관세 카드의 주요 대상으로 다시 떠오른 배경이다.

트럼프의 1주년 '관세 쇼'

집권 2기 1주년을 맞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0일(현지시각) 백악관 기자회견에 예고 없이 등장해 1시간 넘게 지난 1년간의 성과를 설명했다. 그는 한국과 일본을 상대로 한 무역 합의를 주요 치적으로 꼽으며 "전례 없는 수준의 자금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알래스카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사업을 언급한 직후 '한·일 대미 투자 합의'를 거론했다. 실제 생산이나 고용 효과가 가시화되기 전 단계임에도 투자 약속 자체를 성과로 제시한 것이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업적'이라고 적힌 자료집을 들고 "관세 덕분에 미국에 공장이 들어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선거를 앞둔 정치 일정 속에서 관세와 투자 약속을 성과로 전면에 내세우는 트럼프식 통상 전략이 다시 한 번 확인된 장면이었다.

미 연방대법원의 상호관세 적법성 판단 역시 통상 리스크를 정리해 줄 '결정타'로 보기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설령 위법 판단이 내려지더라도 관세가 곧바로 철회되거나 기업에 환급으로 연결될 가능성은 낮다. 환급이 이뤄진다 해도 수혜 대상은 한국 기업이 아니라 미국 내 수입업체가 될 공산이 크다. 사법적 판단과 무관하게 통상 불확실성은 상당 기간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김 교수는 "트럼프발 통상 변수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며 "과거 합의에 기대는 접근 자체가 위험해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는 대미 투자 이행 과정에서 속도와 범위를 조절할 여지를 남기고 세부 조건을 끝까지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 전략 역시 차별화가 필요하다고 봤다. 대기업은 불가피하게 미국 투자 논의의 중심에 설 수밖에 없지만, 중소기업은 가격 경쟁보다 기술력과 신뢰를 앞세운 전략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대량 수출 중심의 접근보다는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미국 외 시장을 병행해 불확실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조언이다.[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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