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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 넘나들며 총리만 2번… 계엄 후에도 ‘별의 순간’ 노리다 몰락 [한덕수 1심 징역 2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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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 넘나들며 총리만 2번… 계엄 후에도 ‘별의 순간’ 노리다 몰락 [한덕수 1심 징역 2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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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적 실망, 인텔 낙폭 8%로 늘려
韓 ‘공직 신화’ 불명예로 마무리

YS정부부터 5대 정권서 승승장구
盧정부때 한·미 FTA 협상 이끈 뒤
총리 맡아… MB땐 주미대사 발탁
최장 총리 기록 불구 첫 탄핵 오명
“무색 무취” “눈치 9단” 평가 받아
진보·보수 정권을 넘나들며 ‘국정 2인자’인 국무총리를 두 차례나 지낸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21일 내란 중요임무종사 등 혐의로 1심에서 중형을 선고받으며 그의 정치 행보도 사실상 종지부를 찍게 됐다.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대선후보에도 도전하며 ‘별의 순간’까지 노렸으나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에 가담했다는 사실이 판결로 드러나면서 이른바 ‘관운의 사나이’의 공직 신화는 불명예로 마무리됐다.

내란 우두머리 방조 혐의를 받는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2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내란 우두머리 방조 혐의를 받는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2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통 엘리트 관료 출신인 한 전 총리는 1970년 제8회 행정고시로 공직 사회에 입문한 뒤 정권을 가리지 않고 고위 공직을 두루 거치며 승승장구한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다. 김영삼정부 시절 차관에 오른 뒤 김대중·노무현·이명박·윤석열정부까지 5개 정권에서 장차관급 이상 고위 공직을 지냈다. 김영삼정부에서 특허청장, 통상산업부 차관을 지냈고, 김대중정부에선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 대통령 정책기획수석비서관, 경제수석비서관을 역임했다.

2002년 7월 ‘한·중 마늘 협상’ 파동으로 잠시 공직생활을 접기도 했으나 노무현정부 제2대 국무조정실장으로 화려하게 컴백했다. 이후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을 지낸 뒤 참여정부 마지막 국무총리를 맡았다. 진보 정부에서 그의 첫 ‘국정 2인자’ 타이틀을 얻은 것이다.

정권 교체와 함께 끝날 줄 알았던 그의 고위 공직생활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노무현정부 시절이던 2006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을 지낸 그는 이후 대통령 직속 한·미 FTA 체결지원위원회 위원장 겸 한·미 FTA 특보를 맡아 막판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때 한·미 FTA 협상을 성공적으로 주도한 공을 인정받아 보수 정권인 이명박정부에서도 주미 대사로 발탁됐고 3년간 재임했다. 이 당시 관료 출신으로 ‘무색무취’하다는 평가와 함께 ‘눈치 9단’이라는 별칭도 붙었다. 문재인정부 첫해였던 2017년에는 대법원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공직 사회를 떠난 후 김앤장법률사무소 고문, 에쓰오일(S-OIL) 사외이사 등을 지낸 그가 다시 한번 빛을 발한 건 윤석열정부 들어 초대 국무총리 후보자로 발탁되면서다. 진보와 보수 정권을 넘나들며 중용됐던 백전노장의 귀환이자 이미 총리를 지낸 인사가 또다시 총리로 기용되는 파격인사로 관가에서는 놀랍다는 평가가 우세했다.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여소야대 정국에서 진보 정권 총리를 지낸 한 전 총리 카드를 꺼내 들었고, 한 전 총리는 우여곡절 끝에 인사청문회를 통과했다. 이후 여야 대립이 극심한 가운데 1987년 민주화 이후 ‘역대 최장수 총리’라는 기록도 세웠다.

승승장구하던 한 전 총리는 윤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사태’와 함께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2024년 12월14일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후로는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국정 운영을 맡았으나,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같은 달 27일 국회에서 한 전 총리 탄핵소추안도 통과되면서 직무가 정지됐다. 대통령이 탄핵된 뒤 권한대행을 맡은 총리까지 탄핵소추돼 직무가 정지된 건 헌정사상 처음이다.


윤 전 대통령이 탄핵된 후에는 총리직을 사퇴하고 본격적으로 대선에 뛰어들었으나 국민의힘과의 단일화 과정 중 당원 투표에서 고배를 마시면서 국민의힘 대선후보 자리를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넘겨야 했다. 대선을 공정하게 관리해야 할 권한대행이 직접 대선에 나간 것을 두고 ‘심판이 선수로 뛰었다’는 비판과 더불어 국민의힘 안팎에서 ‘무임승차’ 논란까지 벌어지며 그의 반백년 관직생활을 불명예스럽게 마무리했다.

이강진 기자 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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