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전면 시행…1년 계도·과태료 유예로 연착륙 시도
스타트업 규제 불확실성·글로벌 AI 역차별 우려 남아
스타트업 규제 불확실성·글로벌 AI 역차별 우려 남아
초거대 AI |
(서울=연합뉴스) 심재훈 기자 = 국내 인공지능(AI) 산업의 룰을 규정한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AI 기본법)이 22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유럽연합(EU) 식의 강력한 규제보다는 '산업 진흥'에 무게를 둔 한국형 모델이다.
정부는 법 시행과 동시에 "규제의 칼을 거두고 마중물을 붓겠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했다.
시장 안착을 위해 초기 '계도'와 '지원'을 우선하겠다는 취지다.
다만, 현장 스타트업들이 느끼는 '규제 불확실성'과 글로벌 빅테크와의 '역차별 우려'는 앞으로 해소해야 할 과제로 남았다.
◇ "사실조사 최소화"…1년간 과태료 대신 '컨설팅'
법 시행 첫날, 정부가 꺼내 든 카드는 '최소 1년의 계도 기간'이다.
AI 기본법상 고영향(고위험) AI의 안전 조치 미흡이나 생성형 AI의 투명성 의무(워터마크 등) 위반 시 최대 3천만 원의 과태료 부과가 가능하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즉각 적용하지 않고 유예하기로 했다.
배경훈 부총리 |
행정 조치의 기조도 대폭 수정됐다.
통상적인 '사실조사' 관행을 깨고, 명백한 증거가 있거나 악의적 민원이 제기된 예외적 경우를 제외하면 조사를 최소화한다. 대신 기업 현장 컨설팅과 지원에 행정력을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과기정통부가 가동한 'AI 기본법 통합안내지원센터'도 같은 맥락이다. 자금과 인력이 부족한 스타트업이 혹시 모를 신고나 조사 가능성 때문에 기술 개발을 주저하는 '위축 효과'를 차단하겠다는 의도다.
정부 측은 "경쟁사의 신고 등으로 조사가 불가피한 상황이라도 징벌보다는 역량 강화를 위한 컨설팅 기회로 삼을 것"이라며 "인명·인권 피해 등 사회적 파장이 큰 사안이 아니라면 1년 이상 규제를 유예해 연착륙을 돕겠다"고 설명했다.
◇ "규제 꼬리표 떼자"…정부, '자율 규제' 강조
정부는 이번 법안이 '규제법'으로 프레임화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는 분위기다.
조문의 90% 이상이 인력 양성, 인프라 지원 등 '진흥'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규제 요소는 고영향 AI와 투명성 확보 등 최소한의 안전장치뿐이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쟁점이던 '고영향 AI' 지정 방식도 정부 승인제가 아닌 기업의 '자율 규제' 방식을 택했다.
그록 AI |
정부는 규제 대상을 '사람의 개입 없는 레벨 4 자율주행' 수준이나 초거대 AI로 한정하며 "현재 기준에 도달한 모델은 사실상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에 따라 생명·신체·기본권에 영향을 미치는 10여 개 분야에 대해 기업 스스로 고영향 여부를 판단하고 기록을 보관하도록 했다. 기업의 자율성을 보장하되, 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를 따질 근거만 남겨두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법조계 일각에서는 분쟁 발생 시 최종 판단 권한이 결국 법원과 규제 당국에 있어 기업의 자율 판단이 무력화될 소지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정부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5대 분야 가이드라인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며 유연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 스타트업 "취지 공감하나 불안"…역차별 우려
현장의 표정은 복합적이다.
정부의 유연한 법 적용 의지에는 안도하면서도, 법적 테두리 안으로 들어온 이상 잠재적 리스크는 기업의 몫이라는 반응이다.
특히 자체 법무팀이 없는 스타트업들은 '자율 판단'이라는 과제 자체가 부담이다.
업계 관계자는 "스스로 고영향 AI가 아니라고 판단했다가 추후 당국 해석과 엇갈릴 경우 그 리스크를 기업이 온전히 떠안아야 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시행령에서 타 법령의 안전 의무 이행 시 중복 규제를 면제하는 조항을 뒀음에도 현장에서는 여전히 '고영향의 범위'를 묻는 질의가 이어지고 있다.
초거대 AI |
'기울어진 운동장' 논란도 현재진행형이다.
정부는 일정 규모 이상의 글로벌 빅테크에 국내 대리인 지정 의무를 부과해 동일 규제를 적용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서버를 해외에 둔 불법 서비스나 텔레그램 기반 봇(Bot) 등을 국내법으로 실효성 있게 제재할 수 있을지 의문부호가 붙는다.
법을 준수하는 국내 기업만 비용이 증가하고, 규제 사각지대의 해외 서비스가 반사이익을 얻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 결국 '가이드라인' 디테일이 승부처
업계 전문가들은 법 안착의 성패가 향후 1년 계도 기간의 '운용의 묘'에 달렸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워터마크 표시 방식 등 세부 가이드라인이 기술적 현실을 얼마나 반영하느냐가 관건이다.
딥페이크 (PG) |
현재 시행령과 가이드라인 초안은 기술적으로 완벽하지 않은 워터마크의 한계를 감안해 비가시적 워터마크를 허용하되 문구·음성 등으로 'AI 생성물'임을 알리도록 하는 절충안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비스별로 상이한 UI(사용자 환경)와 기술 수준을 얼마나 유연하게 수용할지가 첫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AI 기본법은 닻을 올렸다.
이 법이 기업의 발목을 잡는 '모래주머니'가 될지, 글로벌 도약을 위한 '안전 발판'이 될지는 정부의 세심한 소통과 현장 중심의 법 집행에 달렸다.
president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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