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사 쿡 연준 이사. 사진=연합뉴스 |
【파이낸셜뉴스 뉴욕=이병철 특파원】 미 연방대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연준 흔들기’에 일단 제동을 걸 태세다. 트럼프 대통령이 리사 쿡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이사를 즉각 해임하려는 시도에 대해 대법관들이 “연준 독립성을 흔들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대법원이 쿡 이사의 직을 당분간 유지하도록 결정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해온 연준 재편 작업은 사실상 ‘일시 정지’될 전망이다.
대법원은 21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제기한 쿡 이사 해임 사유의 적절성과 절차적 정당성을 집중적으로 따졌다. 대법관들은 쿡 이사가 연준에 합류하기 전 주택담보대출(모기지) 관련 사기 의혹에 연루됐다는 트럼프 대통령 측 주장에 대해 “해임을 정당화할 만큼 중대한 사안이냐”는 질문을 던졌다. 특히 해당 의혹이 아직 입증되지 않았고 사실관계 다툼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대법원이 지금 결론을 내리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분위기가 강했다고 미 언론은 전했다.
‘절차’도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대법관들은 쿡 이사가 트럼프 대통령의 의혹 제기에 대해 충분한 통지를 받았는지, 반박할 기회를 제대로 보장받았는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약 2시간에 걸친 변론 이후, 대법관 다수는 추가 절차를 진행하도록 사건을 하급심으로 돌려보낼 가능성이 큰 것으로 관측된다. 이 경우 이번 대법원 판단이 최종 결론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대법원이 그동안 쿡 이사의 직을 유지하도록 판단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연준 이사회 구성을 바꿔 금리 인하 압박을 강화하려는 시도는 당분간 멈춰 설 수밖에 없다. 법조계에서는 “임시 조치만으로도 트럼프 행정부가 원하는 연준 재편 속도는 크게 늦춰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사건은 트럼프 대통령이 다른 독립기관 수장들을 잇따라 교체해온 흐름 속에서 ‘연준만큼은 다르다’는 신호가 나온 사례로도 평가된다. 보수 성향이 다수인 대법원은 그동안 대통령 권한 확대 기조 속에서 독립기관 수장 해임을 허용해왔지만, 연준은 구조와 역사적 맥락상 행정부 영향력으로부터 더 강하게 보호돼야 할 수 있다는 기류가 법정에서 노출됐다.
특히 브렛 캐버노,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이 트럼프 행정부 논리를 정면으로 파고들었다. 두 사람은 전직 연준 의장과 재무장관들이 “쿡 이사 즉각 해임은 연준 독립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경고해왔다는 점을 언급했다. 캐버노 대법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을 받아들이면 연준의 독립성이 “약화되거나 산산이 깨질” 수 있다며, 향후 대통령들이 연준 인사를 사실상 ‘임의 해임’하려는 길을 열어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말 소셜미디어를 통해 쿡 이사를 해임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는 쿡 이사가 2022년 연준 합류 전 서명한 대출 서류와 관련해 모기지 사기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쿡 이사는 기소나 유죄 판결을 받은 적이 없고, 의혹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913년 제정된 연준 설립법에 규정된 ‘사유에 의한 해임’ 조항을 근거로 들고 있다. 연준 이사(총재)들은 14년 임기를 보장받고, 대통령이 ‘사유’가 있을 때만 해임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정치적 압력에서 자유롭게 물가 안정과 고용 목표에 맞춰 통화정책을 운용하라는 취지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 사건에서 연준 설립법 자체의 위헌을 다투지는 않고 있다. 다만 법무부는 “법원이 대통령의 해임 사유를 사후적으로 따져선 안 되며, 해임된 인사를 복직시킬 수도 없다”는 입장을 내세운다. 법무부는 법원 제출 서면에서 “금융 사안에서의 명백한 사기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연준 업무 수행에 심각한 부적절성의 외관을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쿡 이사 측은 트럼프 대통령의 해임 사유가 ‘정책적 이견’을 감추기 위한 구실이라고 반박한다. 쿡 이사의 변호인은 “사기도, 기만 의도도, 범죄도 없다”며 모기지 사기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그는 다만 쿡 이사가 2021년 모기지 신청서에 조지아주 아파트를 ‘주 거주지’로 부적절하게 기재한 부분은 인정했지만, 별장 사용 사실을 다른 문서에서 충분히 공개했다며 “명백히 무해한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하급심은 이미 쿡 이사의 손을 들어준 상태다. 워싱턴 연방지방법원은 쿡 이사의 연준 합류 전 행위나 직무 수행과 무관한 주장만으로는 해임이 어렵다고 판단했다.
pride@fnnews.com 이병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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