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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시평]불펜 속 에이스 깨울 전력망 혁신

머니투데이 김희성브라이트에너지파트너스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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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시평]불펜 속 에이스 깨울 전력망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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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성 브라이트에너지파트너스 의장

김희성 브라이트에너지파트너스 의장



대한민국 에너지 시장이라는 불펜엔 시속 100마일의 강속구를 뿌릴 준비를 마친 에이스가 넘쳐난다. 정부와 업계 자료를 종합하면 2026년 현재 계통접속을 기다리는 재생에너지 프로젝트는 전국적으로 수십 기가와트(GW) 규모에 달한다. 이는 원자력발전소 수십 기에 해당하는 잠재력이자 국가 탄소중립의 명운을 짊어진 핵심자산이다. 그러나 이들은 마운드에 서기도 전에 동력을 잃어간다. 마운드로 향하는 유일한 통로인 전력망이 운영의 경직성이라는 구조적 병목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본질적인 한계는 최근 '에너지 고속도로' 이니셔티브로 촉발된 선로의 물리적 부족에만 있지 않다. 기구축된 전력망 자산운영의 유연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에 대한 시스템 철학의 부재가 더 뼈아프다. 실시간 기상데이터에 기반해 특정 구간의 선로용량을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동적 송전용량'(DLR) 기술은 국내에서도 10여년 전에 검토와 실증을 마쳤다. 문제는 기술의 부재가 아니라 운영의 관성이다. 우리는 여전히 1년 내내 최악의 기상조건을 상정해 선로 수용치를 보수적으로 제한하는 '정적 송전용량'(SLR) 방식과 계통 운영자의 과거 경험에 크게 의존한다.

해외 전력시장은 데이터 기반 '지능형 전력망'으로 빠르게 체질을 개선하고 있다. 미국 최대 계통 운영기관인 PJM은 인공지능과 머신러닝을 활용한 '퍼펙트 디스패치'(Perfect Dispatch) 체계를 구축해 지난해 1월 기록적인 한파 속에서도 실시간 예측으로 계통을 안정시켰다. 텍사스주 계통 운영기관인 ERCOT(전력신뢰성위원회) 역시 2025년 말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도입해 발전기뿐 아니라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모든 유연성 자원을 동시에 최적화하기 시작했다. 하드웨어 확충에만 매몰되지 않고 소프트웨어 중심의 유연성을 강화하는 '소프트웨어 정의 전력망'(Software-Defined Grid)의 실체를 보여주는 행보다. 연간 수조 원의 비용절감도 기대할 수 있다.

물론 호남과 충청의 재생에너지를 수도권으로 수송할 765㎸ 선로나 초고압직류송전(HVDC) 건설은 꼭 필요하다. 하지만 혈관을 만드는 일 이상으로 혈액의 흐름을 지능적으로 제어하는 신경망인 운영 소프트웨어도 중요하다.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관리하는 그리드포밍(Grid-forming) 기술과 가상발전소(VPP) 시스템이 제 기능을 하려면 보상체계와 제도가 기술진보를 온전히 담아내도록 전향적으로 변해야 한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가장 큰 위험은 인공지능 데이터센터와 모빌리티 전기화가 불러올 '전력수요의 빅뱅'이다. 전기는 국가산업의 혈액이며 이를 유기적으로 배분·조절하는 전력망은 우리 경제의 신경망이다. 유연성이 담보되지 않은 신경망 위에서 산업경쟁력 강화는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민간의 창의성과 자본은 무한히 기다려주지 않는다. 자본의 인내심이 임계치에 도달하기 전 전력당국은 기술혁신과 제도적 유연성을 결합한 입체적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불펜의 문을 열고 에이스들이 제 기량을 펼치게 하는 것이 대한민국 에너지리그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골든타임은 길지 않다.

김희성 브라이트에너지파트너스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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