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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까지 노렸던 처세왕… 55년 ‘Mr. 공무원’의 끝은 구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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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까지 노렸던 처세왕… 55년 ‘Mr. 공무원’의 끝은 구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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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성장률 1.0%…4분기 GDP -0.3% '깜짝 역성장'
김영삼 정부부터 윤석열 정부까지
보수·진보 넘나들며 총리 2번 역임
비상계엄 이후엔 대통령 권한대행
보수진영 대선 후보 올랐다가 하차


윤석열(오른쪽) 전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1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한덕수(위쪽) 전 국무총리의 내란 중요임무 종사 등 혐의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앉아 있다. 벽면 모니터에는 12·3 비상계엄 전 국무회의 당시의 회의실 폐쇄회로(CC)TV 영상이 띄워져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공

윤석열(오른쪽) 전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1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한덕수(위쪽) 전 국무총리의 내란 중요임무 종사 등 혐의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앉아 있다. 벽면 모니터에는 12·3 비상계엄 전 국무회의 당시의 회의실 폐쇄회로(CC)TV 영상이 띄워져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공


윤석열 정부의 ‘2인자’이자 차기 대권까지 노렸던 한덕수(76) 전 국무총리가 21일 법원에서 12·3 비상계엄에 가담·방조한 혐의로 징역 23년을 받으며 ‘내란 주요임무 종사자’로 추락했다. 50여년의 공직 생활 동안 총리를 두 번이나 지내며 대한민국 대표 엘리트 관료로 이름을 날렸던 그는 한순간에 몰락의 길을 걷게 됐다.

1949년생 한 전 총리는 55년간 공직에 몸담는 동안 보수와 진보의 경계를 넘나들며 요직을 지내 ‘처신의 달인’으로 평가받았다. 경제·외교·통상 등 각 분야에서 고위직을 두루 거치며 ‘대통령을 빼고 대한민국에서 누릴 수 있는 권력을 다 누렸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Mr. 공무원’이라는 별칭답게 ‘무색무취’의 한 전 총리는 윤석열 정부 초대 총리로, 두 번째 총리직에 임명되면서 주목받았다. ‘연륜’의 한 전 총리는 ‘정치 초보’ 윤 전 대통령을 도와 여야 대립이 극심한 상황 속에서 1077일간 총리로 재임하며 1987년 민주화 이후 역대 최장수 총리 기록을 세웠다.

비상계엄 이후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한 전 총리는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올랐다. 그러나 한 전 총리는 ‘쌍특검법’(김건희·채해병 특검법) 재의요구권 행사로 당시 더불어민주당과 충돌했고, 헌법재판관 후보 임명 거부 등 5개 이유로 탄핵 소추된 뒤 헌재의 기각 결정으로 87일 만에 직무에 복귀했다.

다만 정치권에서는 당시부터 이미 한 전 총리가 내란 수사 등에 연루될 것을 우려해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했다는 얘기가 돌았다. 윤 전 대통령의 파면 이후 조기 대선 국면에서 한 전 총리는 5월 초 보수 진영 유력 대선 후보로 떠오르며 레이스에 뛰어들었다. 그때도 수사 회피 목적이 아니냐는 얘기가 돌았지만 여론의 지지율은 상당했다. 그러나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이 약속했던 단일화에 응하지 않았고 ‘후보 교체’ 파동이 일며 한 전 총리는 여론의 뭇매를 맞고 출마 선언 9일 만에 하차했다.

한 전 총리는 전북 전주 출신으로 서울대 경제학과 재학 중 제8회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김영삼 정부에선 통상산업부 차관을, 김대중 정부에서는 외교통상부 초대 통상교섭본부장을 3년간 지냈다. 노무현 정부에선 국무조정실장과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을 거쳐 국무총리에 임명됐다. 이후 이명박 정부에서는 주미 대사로 발탁돼 3년간 외교 통상 전문가로 활약하기도 했다.

곽진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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