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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도 데모합시다 [세상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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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도 데모합시다 [세상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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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에서 노숙농성을 하고 있는 김영훈 한전케이피에스(KPS) 비정규직 하청지회장이 2025년 12월31일 마이크를 잡고 2차 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직접고용 촉구를 외치고 있다. 영하 6도의 사정없이 부는 바람에 그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류석우 기자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에서 노숙농성을 하고 있는 김영훈 한전케이피에스(KPS) 비정규직 하청지회장이 2025년 12월31일 마이크를 잡고 2차 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직접고용 촉구를 외치고 있다. 영하 6도의 사정없이 부는 바람에 그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류석우 기자




전수경 |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대통령이 청와대로 이사를 했다. 용산 대통령실 앞 인도에서 저마다의 ‘외침’을 적어서 들고 있거나 깃발 아래 있던 사람들은 흩어지거나 청와대 앞으로 따라갔다. 대통령의 청와대행을 전하는 언론들은 청와대 앞 집회·시위를 걱정하는 인근 주민들의 불안도 함께 전했다. 청와대 이사 때만이 아니라 어떤 언론들은 늘 노동자, 장애인, 빈민, 성소수자들의 데모가 없는 사회를 바라는 것처럼 말한다. 약자들이 시위할 일이 적어지는 사회를 만들자는 마음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냥 눈에 띄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라면, 물어야 한다. 노동조합 조끼가 눈에 거슬리고, 마이크를 잡은 이들의 성난 목소리가 듣기 싫다고 해서 치우길 바라는가. 시위하고 집회하고 농성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손팻말을 버리고, 천막을 접어 떠나기를 바라는가. 그러나 데모가 없는 사회는 죽은 사회다. 정해진 방식대로 살다가, 소비하다가, 자르면 잘리고, 나가라면 나가고, 혹은 나오지 말라면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 다수인 사회라면 살아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저항하지 않는 사람들로 조용한 사회라면 거리가 아무리 쾌적한들 희망이 있을까.



지난 연말 나는 ‘2025 덜 알려진 데모들’을 모아 데모하는 사람들의 소중함에 대해서 쓰고 싶었지만 내 연대와 실천의 무게가 너무 가벼워서 펜을 내려놓은 적이 있다. 그러나 해가 바뀌고 보니 연말의 분위기에 편승할 필요가 없었다. 시간이 지났다 해서 오늘의 문제가 아니라고 할 수도 없었다. 세입자를 밀어내고 빌딩을 올리려는 정치인과 기업의 탐욕 속에 5명의 임차상인 시민들과 1명의 경찰이 사망한 2009년 1월20일의 용산 참사로부터 17년이 지난 2026년의 1월, 여전히 문을 닫지 못하고 있는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용산 다크투어 프로그램을 열었다. 당일 참석하지 못한 난 유튜브 정의당티브이(TV)에 올라온 영상으로 2시간의 용산 투어를 함께했다. 도시개발로 밀려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빈곤사회연대 이원호 활동가의 가이드를 따라가다 보니 주택을, 땅을 상품으로 사고파는 체제에서 살아가는 쪼그라든 우리들의 존재에 대해 슬픔이 일었다. 용산역을 오르는 웅장한 계단에 비해 역 안은 왜 그리 엉성한지, 기차역인지 상가인지 헷갈릴 만큼 가게들로 둘러싸인 대합실과 너무도 적은 의자 수에 대한 의구심의 이유도 알았다. 민간자본에 공공부지를 넘기면서 정부는 시설의 10% 이상을 공공 용도로 쓰라고 했는데 용산 아이파크몰을 개발한 재벌기업은 딱 10%를 용산역에 할당했다는 것이다. 용산역 맞은편, 기차를 정비하던 용산정비창이 아직 빈 땅으로 남아 있는데 지금 서울시장은 이 땅을 팔아 100층짜리 빌딩을 짓고 ‘글로벌 비즈니스 중심지’로 만들겠다고 한단다. 17년 전 용산참사가 일어날 때의 서울시장도 그였다. 지난 연말 ‘덜 알려진 데모’에 관해서 물었더니 이원호 활동가가 ‘공공의 땅에는 공공주택을 지으라’는 기자회견 사진을 보내주었는데 용산정비창 부지를 기업에 팔지 말라는 데모였다. 거대 쇼핑몰 속에 파묻힌 초라한 기차역의 신세를 반복할 것인가. 쳐다볼 수도 없는 수십억 아파트 말고 공공주택에 살자고 데모합시다!



1월의 청와대 앞에는 ‘태안화력 고 김충현 비정규직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를 꾸린 지 반년이 넘어간 한전케이피에스(KPS)비정규직노동조합 김영훈 지회장과 조합원들이 용산에서 시작한 농성을 옮겨와 1월22일 현재, 65일째 이어오고 있다. 산재 사망을 줄이려면 공공부문이 잘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재명 대통령의 정부인데 한파 속 노동자들의 노숙에 이렇게 뒷짐을 지고 있다. 세종호텔의 고진수 해고노동자는 지난 14일, 336일을 살아낸 도로 위 10m 고공에서 내려와 호텔 로비로 거처를 옮겼다. 호텔 로비는 세종호텔 실소유주와 교섭하기 위한 땅 위의 농성장이 되었다. 그리고 쿠팡!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은 1월30일, ‘쿠팡 규탄 시민대행진’을 연다고 한다. 서울 잠실의 쿠팡 본사 앞에 모여서 쿠팡의 택배 물류회사인 쿠팡씨엘에스(CLS)와 쿠팡 노동자 퇴직금 사건에 대한 상설특검이 차려진 사무실을 거쳐 청와대 앞에서 행진을 마무리할 거라고 한다. 함께 걸을 여건은 되지 않지만 일상을 옭아매는 쿠팡의 거대 독점 플랫폼에 저항하고 싶은 분들은 쿠팡물류센터지회 후원계좌(국민은행 802001-04-304200, 전국물류센터지부)를 통해 쿠팡과 싸우는 노동자들을 응원하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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